독한 술
확실하지도 않지만 딱히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구강 내의 문제나 통증은 입 안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일어나는 민감한 일이다. 혀가 있고 치아가 있고 입술이 막고 있으며 타액이 좁은 범위에서 함께 조화를 이뤄야 하는 부위다. 아주 작은 불편함 조차 신경 쓰이고, 놀리는 혀에 예민함이 지속되기 때문이다.
처음 턱관절의 통증으로 입을 벌리기가 힘들다며 왔을 때 치과에 가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더니 이미 치과를 거치고 이비인후과를 들러 치료를 했는데 낫질 않는다는 것이다. 통증으로 입을 마음대로 벌리지 못할 뿐 아니라 어금니를 꽉 다물어 약간만 힘을 줘도 턱으로 통증이 퍼진다. 악관절통. 치과에서는 치아엔 이상이 없다고 하면서 처방해 준 진통제를 복용해도 통증은 가시질 않는다. 재차 들른 치과에 증상이 여전하다고 했더니 고개만 갸우뚱이다. 답답한 마음에 이비인후과에 가서 진료를 해보니 염증이라며 소염제를 처방한다. 여전히 통증은 지속된다.
수면 중 아파서 자다 깬다. 알게 모르게 꿈을 꾸면서 턱에 힘을 주는가 보다. 한의원을 찾은 이유는 답 없는 통증의 해법이 있을까 해서다. 개구開口의 범위와 촉진으로 악관절 주변 근긴장이 심하다. 교근이 긴장되어 있고 더불어 측두근과 예풍혈 주변에 압통이 나타난다. 흉쇄유돌근 주변의 근육들도 긴장되어 있다. 자세 불량이나 저작의 편측 과용 또는 평소의 긴장 과다로 꿈속에 시달리며 이 악물고 용을 쓰는 등의 이유다.
갑자기 나타나는 증상은 대부분 일상의 문제다. 평소 누워 폰이나 티브이 보는지, 한쪽으로만 씹는지, 긴장 완화를 위한 운동 여부 등을 언급한다. 그래도 당장의 급한 통증에 대한 문제를 풀어야 한다. 구순과 치은은 위와 대장경락을 먼저 다스리고, 소양경락도 연관이 있어 같이 보기도 한다. 개구시 통증이 줄고 저작이 쉬워져 해결됐을 무렵 또 다른 증상이 그녀를 괴롭힌다.
치아를 부딪는 동작에 치아 끝이 시리고, 날카로운 통증이 잇몸과 어금니로 전달된다. 저린 느낌이 온몸으로 퍼지는 느낌이라며 얼굴을 찡그린다. 저리고 시려 밤새 자다 깨다를 반복하니 낮이 피로가 밤에도 해소되지 않고 몸이 무겁다. 삶의 질이 떨어진다. 본인만 느끼는 자각적 증상의 어려움은 객관화가 쉽지 않음에 있다. 자기만 느끼고 아는 괴로움이다. 그 섬세한 결을 타인은 알기가 힘들다. 어떻게 할 때 얼마나 불편한지 파악하는 유일한 방법이 그녀의 표현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접근법을 바꿔본다. 치아는 인체에 유일하게 밖으로 드러난 뼈조직이다. 노골露骨. 뼈는 우리 몸의 기둥이요 조직체의 가장 깊은 곳이다. 음식으로 체내 에너지와 영양과 혈액을 만들고, 그중 가장 정수인 골수를 신腎이 주관하여 뼈의 강약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 그녀의 일상을 다시 묻는다. 일을 할 때 너무 진 빼듯이 열심이지 않은지? 일 끝나고 귀가하면 몸이 물먹은 솜처럼 축 쳐지고 무겁지 않은지? 매일이 그렇단다. 일이라는 게 일단 하면 끝장을 보듯 해야 성에 찬다고 한다. 그런 애씀이 오랫동안 신정腎精을 고갈시켜 지금에 이른 것이리라.
말을 하는데도 기분 나쁘게 시린 기운이 있어 대화도 쉽지 않다. 혀끝에 어금니가 살짝 닿거나 치아를 약하게 탁탁 부딪쳐도 시큰하고 찌릿하다. 자다가 잠꼬대를 하는 중에도 통증이 느껴진다. 밤새 시달리니 너무 힘들다고.
본本을 달래어 기운을 돌리기까지 회복할 기다림의 시간이 더디다. 응급조치를 하지 않을 수도 없지만 급조된 처치의 한계를 언급한다. 장담할 순 없지만 해볼 만은 해요. 다만 좀 낫더라도 몸의 기운을 너무 소모하지 않길 부탁한다. 일단 해볼 만한 뭐든 일러달란다. 음주할 줄 아세요? 원래 술 못 마셔요. 맥주 한잔 정도. 그럼, 집에 있는 도수 높은 술로 입에 잠시 머금었다 뱉어내세요. 양주든 중국술이든 뭐든 좋습니다. 다만 도수가 높은 게 좋습니다. 먹는 게 아니니 해볼게요.
남편도 본인도 못 마시는 술이 집에 있을 리 없었다. 먹을 사람도 없는 술이라 여겨 버려 왔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래도 집안 어딘가에 남아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던 차에 조그만 병에 담긴 개봉 안된 어떤 술을 찾았고, 그날 밤에 그녀는 가글 딱 한 번하고 정말 뻗었다. 술을 잘 못 먹기도 하지만, 그냥 조그만 잔에 입을 헹구는 정도인데도 독한 술이 입안 곳곳에 퍼져 얼얼하다 못해 확 하는 느낌과 화끈거림에 정신을 못 차렸다. 알코올의 향에 취해 그대로 잠 속에 빠져들어서 술 때문인지 어쨌든 통증을 못 느끼고 깊이 잤다고.
술은 그 속성이 뜨거워 속을 데우기도 하지만 술의 진짜 힘은 멀리까지 퍼지는 주찬력走竄力에 있다. 약한 술은 은은하여 힘이 약하고, 독주는 그 향과 발화성이 강하다. 주통혈맥酒通血脈이라고 하여 모세혈관까지 소통하고 흩는 힘이 있다. 잇몸이나 치통에 구급으로 쓸만하다는 선생님의 말씀이 생각났던 거다.
숙면 덕분인지 술 때문인지 치아 통증이 줄었다. 한 잔이긴 했는데 입 안에서 폭탄이 터진 듯 고생스러웠다는 말에 술의 도수를 물었다. 그런 술이 있는 줄도 몰랐다. 자그마치 70%. 거의 주정에 가까운 술이 어떻게 집에 있는지 본인도 몰랐지만 다음부터는 술에 물을 타서 알코올 도수를 낮춰 입을 헹구길 권했다.
술은 입에도 못 대던 사람이 요새 종류별로 술을 찾는다는 남편의 전언이다. 은근 나를 탓하는 말이 그러다 중독이 되는 건 아닐지 걱정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