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볕 추억

긴 인생에 남겨질

by 노월

한여름의 땡볕엔 학교 운동장의 모래마저 바싹 말라 서걱거린다. 귀에 쟁쟁거리는 매미소리. 칠월말 팔월초에 몰린 휴가철. 모기업의 하계휴가는 연관 협력업체들도 일이 없으니 업무를 중단하고 같은 휴가기간을 정한다. 회사 직원들이 모여사는 동네가 한적하고, 연달아 식당들도 문을 닫고 휴업이다. 마을 전체가 공동화 현상이 일어나 거리엔 사람들이 보이지 않고 종이 조각만 길거리에 날린다. 피서를 갔겠지만 피난을 떠난 듯이 한산하고, 낮 태양만 아스팔트에 뜨겁게 눅진하다.


여름방학기간이라 학생들도 학교엔 없다. 가만 서 있어도 등에 땀이 흐르는 날씨다. 다들 떠난 동네에 갈 데 없는 아이 넷이 학교 운동장의 농구대 밑에서 놀고 있다. 똥칠, 미친갱, 또깝, 깨굴. 같은 중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고등학교로 진학한 친구들. 고등학생이 되어도 동네친구요 동기생들인 그들이 공부한답시고 어슬렁 학교에 왔다가 농구를 한다. 가족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집들이 아니다.


공 하나만 들고도 정신없이 떠들고 신나게 농구를 한다. 야, 여기, 패스, 슛. 땀이 뚝뚝 떨어지게 몸이 젖어도 뜨거운 운동장엔 흙먼지가 날린다. 흥건한 땀에 옷이 걸리적거린다. 윗도리를 벗고 뛴다. 한두 시간 흘렀을까. 목마르고 힘들고 지친다. 어지간히 뛰었던가 보다. 야, 이제 그만하자.


두리번거리던 또깝이는 천천히 그늘로 걷더니 학교 한편의 개수대로 가서 세수를 하다 아예 수돗물을 틀어놓고 머리를 숙여 적신다. 그걸로 더위가 가지질 않는다. 등목을 하자며 또깝이 먼저 엎드리고 달려온 미친갱이 수도꼭지에 이어진 호스로 또깝의 등에 뿌린다. 지하수를 끌어올린 물이어서 수돗물이 차다. 서로 등을 밀어주다 똥칠이가 주변을 살피더니 아무도 없으니 다 벗고 씻자고 속옷을 내린다. 깨굴과 미친갱도 따라 벗는다.


먼저 등을 씻은 또깝이가 일어나 친구들 옷이 젖는다며 주섬주섬. 나는 이만하면 됐다며 친구들의 옷을 한 데 모아 들고 가며 운동장의 스탠드에 말린다며 가져간다. 아무도 없는 학교 운동장에서 그렇게 벗은 몸들은 서로 물을 끼얹으며 웃고 떠들고 이제 살 것 같다고 등으로 볕을 쬐어 말린다. 매미 소리가 따갑다.


이제 갈까? 대충 몸에 물기가 마르고 슬슬 배도 고프다. 근데 또깝이가 보이지 않는다. 또깝이 안 보이는 것보다 말린다고 가져간 친구들의 옷도 보이지 않는다. 당황한 친구들은 알몸으로 텅 빈 운동장의 또깝이가 서있던 스탠드 계단으로 간다. 돌로 눌린 종이 한 장. 펜으로 휘갈긴 글씨. 슈퍼에 간다. 천천히 와.


아, 또깝이 또라이 새끼. 미치겠다. 깨굴 미친갱 똥칠은 두 손으로 아래를 가리고 엉덩이를 뺀 체 교문을 살핀다. 다행히 학교밖엔 아무도 없다. 서로 고개를 푹 숙이고 주변을 살피며 천천히 담을 따라 동네로 내려간다. 슈퍼마켓까지는 오백미터는 걸어야 한다. 이 무슨 쪽팔림인가. 어려서부터 살아온 동네의 익숙함보다 집집마다 아는 어른들을 마주치게 될 까봐 눈치를 보며 잰걸음으로 게걸음이다. 알몸에 운동화만 신고.


평소에는 말도 없던 아주머니가 그들을 보고 한마디 흘린다. 너들 뭐 하니? 대답을 구하는 물음이 아님을 알아도 좀 못 본 척해줄 순 없을까. 동철이 네 엄마는 네가 이러는지 아시나? 똥칠은 얼굴을 가리고 싶지만 손은 다른 곳을 엄호하고 있으니 인상만 찡그린다. 서둘러 지나치는데 멀리 동네 다른 어른들이 이 쪽을 쳐다본다. 야 저기 사람들이 또 있다야. 고개를 서로 맞대고 꽁무니를 빼면서 걸으니 더디고 무릎도 펴지지 않아 빨리 갈 수가 없다. 또깝이 이 새끼 만나기만 해 봐라.


또깝은 가게 앞 파라솔 탁자에 앉아 혼자 콜라 마시다 친구들을 향해 손을 들고 부른다. 야, 여기. 한 잔씩 해라. 옷도 여기 잘 말려뒀다. 미친갱이 먼저 달려간다. 가릴 데를 가리는 동작보다 필요한 건 빨리 옷을 입는 게 급하다. 미친갱이 달리니 똥칠과 깨굴도 같이 달린다.


실실 웃는 또깝에게 할 말을 잃는다. 고생했다. 이것도 나중 추억이 되지 않겠냐. 야이 죽일 놈 미친놈 소리를 들어도 또깝은 목마를 텐데 콜라 마시라고 내민다. 네 갠 추억이겠지만 내겐 모욕이다 이 새끼야. 순간의 일들이다. 다 지나간 일이다. 그래도 한 번씩은 생각난다. 또깝이의 미끼는 보기 좋게 추억을 낚아챈다.


오래 못 보면 궁금하고 보고 싶고 그리워하다 마침내 만나면 즐거움은 잠시 머물다 사라지고 그만 헤어지고 싶은 친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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