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극적 개인화
바닷가 얕은 물속 바위틈에 붙은 말미잘이 파도의 흐름에 따라 슬렁슬렁 흔들린다. 물속에 손을 넣고 손가락으로 말미잘의 촉수를 살짝 건드리면 펼치고 있던 모든 촉수를 거둬들이고 고개를 숙여 머리를 감싸고 문을 닫아걸듯이 웅크린다. 손 끝에 닿은 촉수만 반응하는 게 아니라 온몸을 숨긴다. 물속 손가락 끝에 촉수가 닿은 느낌이 거의 가물한데도 말미잘은 순식간에 쏙 오므린다.
말미잘의 촉수 반응처럼 감각은 예민하지만 그녀는 그저 응시하는 눈빛이다. 아무 일 없는 듯이 고개 숙여 폰 보고 있지만 어둔하지는 않다. 다만 반응이 즉각적이진 않다. 평소와 다른 냄새가 날 경우에 본인의 코를 막을 뿐이지 냄새의 출처를 굳이 찾아보려 않는다. 물건이 쿵 떨어지는 소리에 놀라 눈이 커지지만 주변의 변화를 찾아내거나 살피진 않는다.
동료가 사과를 사 와서 깎아 같이 먹자고 부르면 말없이 먹는다. 괜찮아? 맛있어? 대답은 예. 이쑤시개가 꽂힌 몇 개를 먹고는 본인 자리고 간다. 한 번은 바쁜 일들로 점심을 대충 때웠을까 싶어 롤케이크를 사 오면서 같이 먹자는 말로 린넨실에 빵을 뒀는데 그녀는 포장을 뜯어 접시에 담을 생각이 없다. 내가 사 온 음식이 아닌 것을 손댈 이유가 있을까. 먹어도 되는데 그냥 뒀네하고 잘라서 같이 먹자고 하면 한두 조각 말없이 오물거린다.
날씨가 추워져 사온 무릎담요나 건조한 겨울에 쓰라고 하나씩 나눠준 핸드로션도 건네받으면서 아무런 멘트가 없다. 오히려 준 사람이 무안하다. 그녀는 본인이 요청하지 않은 것에 일방적 건넴이라고 생각할까.
선뜻 말문을 열기가 어색하여 날씨 얘기나 휴일에 있었던 일을 얘기하면 그게 본인과 무슨 관련이 있느냐는 반응이다. 그래도 소소한 대화를 하면 상대를 좀 이해하고 서로 맞춰가기 쉽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인간적 교류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개인적 바람이다. 같이 밥 먹을 일이 있어 앞에 앉아도 말이 없다. 불편한지 싫어하는지 좋아하는지 대화가 없으니 뭘 물으면 뭘 묻는지 몰라 고개를 들어 멍하니 뜬금없다는 표정이다.
일상적 얘기나 대화로 서로에 대한 친밀감을 높이는 게 왜 필요한가. 말 좀 해요 우리. 무슨 말을 해야 하는 건가요. 왜요. 말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모습이다. 예? 예! 그녀의 대답은 단답. 확인을 위해 재차 물어도 답은 예. 자신이 이해한 부분이 뭔지 알 수 없다. 어디까지 얼마만큼에 대한 가늠은 추측의 범위다. 관심도 호기심도 없는 것인가.
무슨 대화가 필요한 지 모르겠어요. 말로 해야 되는 건가요. 편의점에 1+1 음료를 사서 하나 건네어도 그녀는 네. 괜한 짓했나 싶다. 그녀가 내게 전해주는 것들은 거래내역서와 계산서뿐인데.
같은 사물을 보고 여기선 말의 항문을 닮아 말미잘이라 하고, 저기선 바다에 핀 꽃이라 하여 바다 아네모네라고 한다. 말미잘이란 이름이 고약하다고만 생각했다. 좋은 이름도 많은데 영어처럼 예쁘게 지었으면 하고. 그런데 보이는 그대로를 보고 기존의 사물에서 빗댄 이름보다 대상의 속성면에서 이름에 대한 고민이 있지 않았을까. 자극에 즉각 반응하며 모으고 조여진 모습, 입이 곧 항문인 생명체임 등을 고려하면 말미잘도 괜찮은 명명이겠다.
내 틀이 아닌 그녀의 입장을 이해해보려 한다. 바닷물 속에 문을 닫은 말미잘을 한 참 보고 있으면 다시 조심스럽게 촉수를 내밀어 꽃을 피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