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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월 Nov 30. 2022

동상

뼈마디에 맺힌 얼음

홍시를 사들고 엄마 집으로 향했다. 밖에서 볼 때와 달리 집에서 틀니를 빼고 있는 엄마의 얼굴은 윗잇몸의 치아가 없어 입술이 쑥 함몰되어 한층 더 쭈글 하다. 약한 잇몸과 치아로 젊어서부터 고생하더니, 발치하고 틀니를 해도 입 안에서는 제 치아가 아닌 이상 틀니가 헛돌기도 하고 혀에 걸리기도 한단다. 이 없으면 잇몸이란 말은 음식에만 국한된 얘기인가 보다. 남은 잇몸으로는 입술을 받쳐주지 못하니 윗입술이 푹 꺼져있다. 물렁한 홍시는 틀니 없이도 넘어가지만, 쭈글한 입으로 오물거리는 모습은 전형적인 할머니 상이다. 부실한 치아는 발음까지 부실하게 한다. 


찬바람만 불면 엄마의 왼손 중지 손가락은 여지없이 냉기에 반응을 한다. 손가락 마디가 빠질 듯이 아프다가 뼛속까지 가렵지만 속을 주무를 수는 없으니 관절만 만지작한다. 이미 빠져버린 검지 손가락은 보기에 좀 그래서 그렇지 오히려 아무 통증이 없단다.


일본에서 태어나 해방되고 밟은 조선땅도 살기는 힘들었다. 외할아버지는 3남 3녀의 자식들을 이끌고 만주로 향했다. 소달구지에 세간살이를 싣고, 남은 자리에 외할머니는 갓 태어난 막내딸을 안아 타고, 대여섯 살의 엄마는 오른손으로는 어린 여동생을 부둥키고, 왼 손으로는 달구지의 쇠기둥을 붙잡고 갔다. 


추운 겨울이라 벙어리장갑을 끼고 있어도 그 먼길을 가는 내내 달구지 쇠기둥을 잡고 있기엔 버거웠나 보다. 눈길에 얼음길에 비포장길에 덜컹거리는 달구지에서 행여 떨어질까 혹여 동생을 놓칠까 봐 정신을 바짝 차려도 난리통은 난리통이었다. 장거리 이동은 이것저것 돌 볼 시간을 주지 않았다. 끊임없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달구지의 기둥을 쥔 손에서 벙어리장갑이 벗겨져 떨어져도 다시 장갑을 주워 낄 상황도 시간도 주어지지 않았다. 살아남아야 했다. 


어쩔 수 없이 맨손으로 차가운 쇠기둥을 잡고 도착한 만주에서는 쇠붙이에 달라붙은 손도 얼어버렸다. 아파서 우는 큰 딸의 손을 본 외할아버지는 동상冬傷에는 곰 기름이 좋다는 소릴 듣고 어찌 곰 기름을 구해와서 끓였다. 아직 열기 가득한 곰 기름에 딸의 왼손을 잡아넣었다. 더 아프다고 울어대는 소리에 오빠들을 시끄럽다며 팔을 잡고 눌러 뜨거운 곰 기름에서 손을 못 빼게 했다. 빨리 나으려면 참아야지.


얼어붙은 손은 차가운 냉수로 천천히 냉기를 빼내야 한다. 조심스럽게 동상 걸린 손을 살살 문지르면서 냉기를 달래야 한다. 상태를 봐가면서 서서히 물 온도를 상온으로 미온수로 온수로 높여 손을 적응시켜야 했다. 피난으로 고생스럽고 모두가 허기지고 피곤한 상태에서는 그런 완화요법의 시간이 부족했으니 다분히 강압이 흔했으리라.


십여분 후. 쇠기둥을 꽉 움켜쥐어 제일 동상이 심했던 검지의 손가락 뼈마디가 시커멓게 떨어져 나가고, 중지의 손가락 마디는 빠지다 말았다. 그날 밤. 그렇게 떨어져 나간 검지는 보기 흉해서 그렇지 아프진 않았는데, 빠지다 만 중지가 밤새 아팠단다. 그렇게 장애 아닌 장애로 세월이 지났다.


엄마는 항상 오른손으로 왼손을 감싼 자세로 길을 걷는다. 어찌 보면 무척 공손한 모습이다. 일본에서 태어나서 그렇게 예의 바른가 보네. 그 손으로 처음 혼사를 치를 무렵. 흠 있는 여자라는 생각에 마음 한구석은 항시 부끄러움이 있었단다. 그런 사실을 나는 몰랐지만, 커서 엄마손을 보고서도 그게 뭐 어떼서라고 생각했다. 내가 태어나서부터 그랬기에 그런 줄로만 알았다. 


결혼해서 애들 키우고 장사하느라 정신없이 살았기도 했고, 그땐 젊기도 해서 그런지 동상 후유증도 몰랐다. 대충 애들 크고 아버지 돌아가시고 나서는 찬바람 불 때마다 왼 손의 동상 흔적과 후유증이 심했다. 병원 가도 별 치료법이 없다고 해서 그냥 참고 지냈단다. 


뜸으로 해보자고 했다. 한두 번 치료를 해보니 좀 수월한 느낌이 든단다. 이왕 뜸이 효과가 있으려면 매일 뜸을 떠보라며 아예 쑥봉을 사줬다. 요즘은 집에서도 할 수 있는 자가치료가 가능한 형태의 다양한 뜸 재료들이 있다. 뜸의 혈자리 위치를 정해주고 방법을 일렀다.


뜸의 뜨거운 열기가 손가락에 전해지면 시원하면서도 지글거린단다. 그러길 10년이 넘었다. 빠지다 만 손가락 관절은 관절염처럼 관절 마디가 맺혀 툭 불거진 모습은 그대로인데 지금은 그 심한 통증은 많이 줄었단다. 그래도 잊을만하면 한 번씩 아린 통증 있어 한두 차례 뜸을 뜬다.


홍시가 맛있단다. 요즘 감나무엔 감이 그대로 달려있어 관상용 같단다. 까치밥으로 둬서 그런가 보네라며 새는 발음으로 말하면서 연신 왼손 중지를 문지른다. 이젠 나이도 많은데 아직도 어렸을 때의 만주에서 일어난 일은 생생하단다. 동상 참 무섭다면서.


동상으로 조직이 괴사 되거나 빠지지 않고 남았으니 남 보기엔 다행일지 몰라도, 후유증처럼 남은 상흔은 지속적으로 괴롭고 힘들다. 방법은 그 얼음 같은 냉기가 모두 빠져나가게 하는 수밖에 없다. 냉기가 남은 정도에 따라 그만큼 아프고 가렵다. 


엄마 손을 잡고 어루만지다 쓸데없는 생각이 든다. 삶의 중요한 분기점에서도 그렇다. 자기 삶인데 스스로 판단을 미룬 채 결론을 내리지 않고 어정쩡하게 뒷맛을 남기는 결정엔 그 가부可否의 틈새로 얼음 알갱이가 박힌다. 그럴리야 없겠지만, 누군가의 손익 계산이 깔려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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