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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월 Nov 29. 2022

외로운 술잔

도저히 채워지지 않는 공허

이건 소설이다.


학창 시절. 주변에 이런 친구는 한둘 있지 않았을까? 공부도 잘하고 집도 잘 살고, 유머감각도 있고 친구들 사이에 인기도 많은 친구. 끼리끼리 이긴 하지만 어울려 다니며 같이 놀던 친구. 그런 친구가 있었다.


학교 다닐 땐 그렇게 친해도 졸업하고 성인이 되면 각자의 삶을 살면서 서로 연락이 드물어지고, 이사를 가거나 다른 변수로 인해 소식이 끊기게 되기도 한다. 그러다 누군가의 결혼이나 혹 부모의 부고 소식을 접하고 나서야 다시 만나게 된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이지만 어릴 때의 추억으로 금세 친해지고, 그렇게 한 둘을 만나다 보면 그로 인해 다른 이들의 안부를 듣게 되면서 다시 끈이 닿는 친구들이 는다.


그의 모친 사망 소식에 나도 퇴근하여 상가로 향했다. 간간이 친구의 친구를 통해 해외 파견 근무를 하고 있다는 얘기를 건너 듣다가 거의 20여 년 만에 연락이 닿아 장례식장에 갔다. 그의 모친이 갑자기 쓰러져 투병 중일 때도 그는 타국에 있어 오질 못했다고 한다. 그러다 차일피일 미루던 귀국이 결국 소천하고 나서야 그는 부랴부랴 국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 줄로만 알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좋은 일이든 슬픈 일이든 어떤 계기가 마련되어야 우린 다시 만난다. 재밌는 건, 어렸을 때 같이 놀던 감정이 사라진 줄 알았는데 그를 보자마자 바로 되살아나고, 반가운 마음이 더해져 서로 떨어져 지낸 세월은 술로 금방 메워진다. 결혼은 했는지 어떻게 살았는지 등등을 물으며 할 얘기가 많았다. 해외 근무도 끝나서 이젠 자주 보자는 말로 우린 헤어졌다.


차츰 만나는 횟수가 늘면서 어렸을 땐 몰랐던 모습도 보게 된다. 그에게 주사酒邪가 있는 건 아니었지만, 1차 2차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3차 4차로 옮겨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모습이 자주 보였다. 그것도 한두 번은 그럴 수 있겠으나, 매 번이라고 할 만큼 술자리를 이어갔다. 그래도 여전한 말주변과 매력으로 그의 주변엔 친구들이 모였다.


잦은 술자리와 늦은 귀가는 다음날의 근무시간에 대한 부담으로 작용했고, 정말 술을 좋아하는 이들 외엔 차츰 그의 연락을 부담스러워했다. 내게도 그렇게 연락이 왔지만, 매번 만날 상황은 아니었다. 만남을 가진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또 보자는 연락이 온 적 있다.  급히 서울 갈 일이 있어 다음으로 미루자고 했는데 생뚱맞게도 그는 같이 가면 안 되냐며 동행하길 원다. 네가 가도 모르는 사람들뿐인데 어떻게 같이 가냐고 해도, 시간이 난다며 같이 가자고 매달리는 통에, 갔다 와서 보자는 말로 간신히 끊었다.  


처자식 있는 놈이 너무 술이 잦다는 말들이 서서히 오가고, 그가 낀 술자리에서는 이곳저곳 연락 닿는 다른 이들을 같이 동석시켜 술판이 커지는 상황이 자주 만들어졌다. 심지어 그는 같이 술을 먹고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거는 경우도 있었다. 아니 바로 앞에 있는데 왜 전화하냐고 해서 당황한 적도 있었다는 후문이다. 야 인마, 같이 있어도 그립냐는 핀잔과 함께.


그렇게 주변에서 그의 연락을 조금씩 부담스러워하고 피하기도 하는 어느 날 한 밤중. 그는 내게 연락을 했다. 요즘 좀 외롭다면서 한 번 보자라며 장소로 부른다. 무슨 일이 있나 걱정도 되고 해서 급히 택시를 타고 약속 장소로 가보니 술자리엔 나 외에 몇 명이 더 있었다. 안면이 있는 이도 있었고, 초면의 동석객도 있었다.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다. 그의 대답이 밋밋했다. 우린 친구 아이가, 술 한잔 하자 친구야. 벌써 몇 차인지 모를 그의 모습에 잠시 앉았다가 혼자 나왔다.


그게 그의 마지막 일주일 전의 모습이었다.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에 놀라 병원 장례식장으로 다른 친구들과 같이 갔다. 사고사라고 들었는데, 그의 부친은 어제 같이 술자리 한 놈들이 인이라며 얼굴이 붉다.


그렇게 자주 보고, 같이 만나 술 마시면서도 우린 그를 너무 몰랐다. 그는 어려서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셔서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삼촌에 의해 돌봐졌다. 그 삼촌을 아버지로 알았는데 학생이었을 무렵 예민한 시기에 그만 입양된 것을 알게 되었고, 그 후 많은 방황을 했었던가 보다. 아무리 숙모가 엄마처럼 키웠어도 그에겐 깊은 외로움이 있었는가 보다.


그런 외로움으로 일찍 결혼해서 애 낳고 살아도 막상 외로움이 채워지지 않았는지 가정을 꾸렸어도 집에 머무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다. 해외 파견도 도피처를 찾아서 한 탈출 시도의 일환이었다. 그의 모친상에서 그가 보인 담담한 모습을 우린 치병으로 고생한 엄마에 대한 체념으로만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 외로움도 유전이 되는지 그의 둘째 아들이 자살을 한 사실은 가히 충격적이었고, 그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홀로 그 세상 무너짐을 삭이고, 고독을 견뎌냈을 생각을 하니 너무나 막막한 연민으로 다가왔다. 그런 상에서 그는 오히려 웃고 떠들며 술로 회피하고 잊으려고 그렇게 주변을 헤집고 다녔던가 보다.


그의 마지막이 된 날. 그날도 같이 모인 친구들은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각자의 집으로 흩어질 시간에 그놈은 마지막 입가심으로 한 잔 더 하지며 친구들을 붙들었지만 다들 외면했고, 버릇처럼 이곳저곳 전화를 돌리며 친구들을 불렀으나 아무도 그에 응하지 않았다. 심지어 어떤 이는 그게 그와의 마지막 통화가 될 줄은 정말 몰랐다며 눈물을 흘린다. 또 다른 이는 '야, 너 이제 전화하지 마'라고까지 했는데 어떡하냐며 멍한 눈이다.


그는 다들 떠난 술집을 나와 택시를 타고 어디론가 향했다. 경찰 조서를 마친 택시기사는 목적지 가는 길에 갑자기 세워달라고 해서 세워준 죄밖에 없다며 호소했고, 그가 내린 장소는 다리 근처였음을 기억할 뿐이었다.


이건 소설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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