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엄마, 치매 그리고 사랑에 대하여(부각)

#부각 #외할머니 #치매

by 세시반

부각


배가 고파

바다를 씹는다

"엄마 부각 먹고 싶다"

엄마는 엄마의 엄마를 떠올린다


엄마의 엄마는 아기가 되었다

엄마는 엄마의 엄마의 엄마가 되었다

엄마를 떠났다

어디로 갔지

보고 싶어

바다를 씹는다


엄마는 엄마의

부각을 바르던 손에 부각을 얹어주며

바쁘다는 핑계로 당연시했던 엄마의 노고를 쓰다듬으며

일평생 받기만 한 사랑을 비로소 온 마음으로 내어주며

진짜 바다가 되었다


끝없이 뜨거운 시간이었다

발라지고 튀겨지고 찢기고 추락하는 서글픈 병고

그 사이 고귀하게 피어나는 진실한 부각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다시없을 부각


바다를 씹는다

바다가 차오른다

온몸 깊숙이 들러붙은 부각을 바다와 함께 삼킨다

바다와 함께 잠긴다

켜켜이 쌓인다

다시 차오른다

입 안 가득 텁텁한 짠맛이

비릿한 바다내음이


채워지지 않을 허기

엄마에게도 엄마가 있었지





외할머니는 치매였다. 할머니는 아기가 되었다. 자식들이 먹고, 자고, 씻는 모든 일거수일투족을 살뜰히 보살펴야 했다. 안 그래도 말씀이 적어 “왔냐~” “가라~”만 하시던 할머니였는데, 치매를 앓으실 때는 세상만사 아무것도 모르는 진짜 아기처럼 싱긋싱긋 웃기만 하셨다. 엄마는 할머니의 딸이 아니라, 할머니의 엄마가 되었다. 그마저 시간과 여건이 허락되지 않아 아주 짧은 몇 개월만 우리 집에 머무실 뿐이었지만. 세 남매를 키우기도 벅찼던 엄마는 아기가 된 자신의 엄마를 모시며 비로소 할머니의 지난 사랑에 보답할 수 있게 되었다.


할머니는 종종 모두가 잠든 늦은 밤 홀로 일어나 집 안을 고요히 돌아다니곤 하셨는데 어느 날 밤에는 바지에 오줌을 누고 혼자 멀뚱히 서계시기도 하시고(낯선 딸의 집에서 화장실을 찾고 계셨던 걸까...), 어떤 날에는 혼자 문을 열고 나가셔서 밖을 배회하다 가족들이 겨우 찾아내 온 가족이 애가 탄 적도 있었다. 그때 나는 할머니가 아기처럼 귀엽기도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는 매 순간 얼마나 아찔하고 속이 상했을까 싶다.

평생 꼿꼿하셨던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 ‘엄마의 아기’가 되었던 할머니와 달리 할아버지는 온전히 ‘엄마의 아버지’로 남았다. 이를 보며 어쩌면 치매는 자식들에게 ‘부모의 부모’가 될 수 있도록 허용된 시간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자식이 부모에게 진 빚을 갚는 시간. 세월에 대한 부채감을 조금이라도 덜어낼 수 있도록 고귀하게 주어진 시간. 오랜 세월 자식을 위해 기꺼이 살아온 부모의 지난 사랑에 보답하기까지 자식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턱없이 짧지만 그래도 소중한 시간.

엄마는 할머니가 보고 싶을 때마다 “엄마가 해주는 김부각이 먹고 싶어”라고 한다. 그럴 때면 ‘아, 엄마에게도 엄마가 있었지’ 싶다. 엄마는 김부각을 잘근잘근 씹으며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곱씹는다. 하지만 두 번 다시 할머니의 부각은 먹을 수 없어 평생 그 허기를 채울 수는 없을 것이다.(엄마의 지인도 우리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하신 말씀이 "다시는 OO할머니 부각을 먹지 못하겠구나"라고 했다.)


사는 게 바빴던 엄마에게는 당시 아주 힘들고 벅찬 시간이었을 수도 있지만, 그 시간이 없었더라면 평생 부모가 아쉽고 더 그리웠을지도 모르겠다. 할머니의 엄마가 되었을 때 비로소 사랑의 모자람을 경험한 엄마. 할머니가 마지막으로 엄마에게 알려주는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치매는 아주 슬프고 무서운 병이지만, 그만큼 더 아름답고 고귀한 병일지도. 나도 할머니의 부각이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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