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시 반 #나의 유일한 # 오직 하나밖에 없는 너의 시간
지금 몇 시야?
테시 반
언제 가야 하지?
테시 반
뭉툭한 네 인생의 유일한 시간
너의 테시 반은 그리움일까 기다림일까 미안함일까 후련함일까 구속일까 원망일까
나는 너의 테시 반에 나를 주고 싶다
나는 너의 모든 시간에 나를 주고 싶다
너의 테시 반은 다정함일까 달콤함일까 따뜻함일까 반가움일까 자유일까 설렘일까
나는 너의 테시 반이 온 것으로 가득 찼으면 싶다
나는 너의 유일무이한 전부가 되고 싶다
언젠가 너의 테시 반을 놓아주어야 할 때
나는 유일한 내 전부를 세차게 끌어안을 것이다
너의 모든 시간이 세상을 샅샅이 담을 수 있게
대차게 너를 놓아줄 것이다
아기 두 돌(24개월)이 지나고 복직을 했다. 짧은 혓소리로 하나의 단어만 어설프게 말하던 네가 어느 날 "테시 반"이라 했다. 우리 몇 시에 밥 먹을까? 지금 몇 시야? 몇 시에 가야 하지? 모든 시간에 너는 "테시 반"이라 답했다. 네가 알고 있는, 네 인생의 유일한 시간이었다. 세시 반은 어린이집에서 네가 외할아버지와 하원하는 시간이다. 할아버지는 어린이집 앞을 서성이다 꼭 세시 반이 되면 어린이집 벨을 누른다.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1~2분의 지각 없이 세시 반을 지킨다.
너의 테시 반은 몹시 귀여웠지만, 그 의미를 헤아리고 보면 또 몹시 마음이 아팠다. 도대체 너에게 세시 반은 무엇인 걸까? 누군가를 향한 그리움일까, 기다림일까. 혹시 나를 원망하지는 않을까. 나의 미안함이 만들어 낸 허상인 걸까. 세시 반이 되면 나는 아기가 그리워졌고, 미안해졌고, 간절해졌다. 너의 세시 반에 함께 하고 싶은 건 어쩌면 네가 아니라 나일지도 모른다. 나는 세시 반에, 아니 너의 모든 시간에 나를 주고 싶었다. 그 시간을 같이 하지 못해, 더 간절해졌다.
그러다 문득 너의 세시 반에 담긴 감정이 나와 같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됐다. 아기의 세시 반은 엄마와 있을 때보다 더 다양해졌고, 더 재밌어졌다. 할아버지와 매일 바깥놀이를 하고, 열매를 따고, 나뭇잎을 줍고, 때로는 할머니들과 아기자기한 시간들을 보내며 아이의 시간은 세상으로 가득 차졌다. "테시 반"은 다정함일 수도 있겠다.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할 수 있는 달콤함과 자유일 수 있겠다. 설렘을 기다리는 것일 수도 있다. 내가 만들어 낸 부정의 감정이 아이에게 닿지 않도록, 아기가 그 시간을 따뜻하게 기억할 수 있도록 온 가족이 세시 반을 풍성하게 채워주고 있었다.
이제는 안다. 너의 시간을 놓아주어야 한다는 것을. 육아의 종착은 "독립"이라고 한다. 탯줄을 끊어내 듯 때가 되면 품 안의 자식을 보내야 하는 그 첫 번째 독립의 때가 "테시 반"이었던 것이다. 아기는 이미 세시 반에 엄마로부터 첫 번째 독립을 시작했다. 이제 나도 아기의 첫 독립을 인정하고 그 시간을 존중해 줘야겠지. 너의 세시 반이, 너의 모든 시간이 더 넓은 세상을 담을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