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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순내기툰 Jan 21. 2021

개똥 치우는 여자의 전쟁 같은 하루

할리우드 영화광에서 애견카페 사장이자 여섯 마리 강아지들의 엄마가 되다.




10년이다. 강아지란 이 작고 신묘한 생명체와 아니 생명체들과 동거 동락하며 살아온 지 벌써 10년이 흘렀다.

강아지를 키우기 전 나는 강아지란 존재에 대해 그다지 관심도 없을뿐더러 심지어 무서워할 정도로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인간이었다. 길거리를 지나가다 예쁜 옷을 입은 강아지를 안고 우쭈쭈 하며 물고 빨고 하는 사람들을 한심하게 쳐다보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다고 동물을 싫어하는 건 아니었다. 일요일 아침 늘어지게 늦잠을 자고 아침 겸 점심을 먹으면서 즐겨보던 프로가 TV 동물농장이었으니 단언컨대 동물을 싫어하는 건 아니었다고 나 자신을 합리화하고 싶다. 하지만 TV에서 동물을 보는 것은 좋지만 그들이 내 삶에 침범하는 것은 별로 달갑지 않았다. 결벽증까지는 아니더라도 깔끔한 걸 좋아하는 성격이라 개털 날리는 것을 감당해야 하고 수시로 개똥 치워야 하는 견주의 삶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삶이었다. 같이 살던 여동생은 나와는 달리 강아지를 무척이나 좋아했던 터라 틈만 나면 강아지를 키워보는 게 어때? 하며 나를 호시탐탐 유혹했다. 그럴 때마다 내가 그녀에 들려준 답변은 여지없는 NO! 였다.


나는 한때 시나리오를 작가를 꿈꾸는 할리우드 키드였다. 어릴 때부터 영화를 좋아했으며 지하단칸방에서 온 식구가 옹기종기 모여 앉아 주말의 명화나 토요명화를 보는 게 나의 유일한 낙이었다. 그 흔한 비디오 플레이도

지금은 추억이 된 토요명화 시그널.



없어 소꿉친구 영숙이의 집에 툭하면 밀고 들어가 새벽까지 함께 영화를 보며 시간 가는 줄 모르던 때도 있었다. 배한성 씨나 양지운 씨의 더빙 목소리로 보는 할리우드 영화의 남자 주인공들은 사춘기 시절 나한텐 우상 같은 존재였다. 자연스럽게 나의 꿈은 영화 관련 쪽으로 향했고 어렸을 때부터 글 쓰는 것을 좋아한 편이었던 나는 시나리오 작가교육원에 등록을 했다. 기초반, 전문반, 연구반을 거쳐 시나리오 작법에 대해 공부하면서 시나리오와 드라마 대본을 쓰기 시작했다. 전공이었던 디자인과는 전혀 다른 분야라 두렵고 망설였었지만 1년 6개월 동안의 그때의 시간은 지금도 바꾸고 싶지 않은 꿈같은 시절이었다. 교육이 끝나고 동기들과 선생님들과 밤새 충무로 허름한 선술집에서 진탕 술을 퍼마시며 영화에 대해 글에 대해 음악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날새는 줄 몰랐다. 막차가 끊기면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았던 우리는 근처 슈퍼에서 번데기 통조림 한통과 소주 두어 병으로 파란색 비치 테이블에 앉아 미처 쏟아내지 못한 이야기들을 탈탈 털어냈다.


세월이 지나고 그때 그 시절 누구는 영화의 대한 꿈을 접고 직장을 다니고, 누구는 사랑하는 연인과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평범한 삶을 살고 있으며, 누구는 아직도 영화판에서 일하며 전쟁 같은 삶을 살고 있고, 누구는 누구나 알아주는 영화들의 제작자가 되어 영화제의 레드카펫을 밟고 있다. 가난했고 고단했던 내 삶에서 고마웠고 그리웠던 그들이었다. 그러나 영화판으로 뛰어들면서 점차 꿈은 현실이 되기 힘듦을 깨닫게 되었다. 공모전은 수시로 탈락했고 그나마 영화사를 만나 진행되던 시나리오는 촬영 도중에 엎어지기도 하고 4고 5고를 진행하다가 엎어지기도 했다. 당연히 그에 따른 생활고는 영화에 대한 글에 대한 나의 열정마저도 점차 지치게 만들었다.


그러던 중 연애도 실패하고 나 자신의 꿈에 대한 실패도 인정하고 있던 시기에 여동생과 독산동에 있는 홈플러스에 가게 되었다. 이미 좌절했고 무기력해졌고 무엇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했던 시기였다. 문득 한 동물병원 분양장 앞에 걸음이 멈춰 섰다. 꼬물거리는 2,3개월 정도 되는 요크셔테리어 , 몰티즈, 푸들 강아지들이 작은 앞발로 차가운 유리벽을 긁어대며 세상 밖으로의 탈출을 갈망하고 있었다. 여동생과 나는 이 꼬물대는 생명체들을 한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아이들의 반짝이는 눈동자들과 마주치며 내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뭐지? 이 느낌은? 인간이 아닌 지구의 다른 생명체들한테 처음 느껴보는 생소한 감정이었다. 나를 보는 여동생과 눈이 마주쳤다. 흔들리는 나의 표정에서 동요하는 기색을 눈치챈 동생은 씩 웃고 있었다


" 한번 들어가 볼까?"


뭔가에 홀린 듯 나와 여동생은 홈플러스 동물병원 안으로 들어갔다. 개엄마 10년 차 지금은 비윤리적인 펫 샵 행태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지만 그때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고 무지했다. 얼떨결에 들어간 우리에게 선택된 아이 아니 우리를 선택한 아이는 2개월령 갈색 푸들이었고 그 아이는 이후 우리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첫 만남 첫 강아지 첫사랑 


코코 이놈의 지지배. 할리우드 키드였으며 영화 시나리오 작가를 꿈꾸던 나를 그리고 평범한 직장인이었으며 사업가를 꿈꾸던 내 여동생을 애견카페 사장이자 총 여섯 마리 강아지들의 엄마로 만든 녀석이다.  2010년 12월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이 녀석으로 인해 우리들의 파란만장하고 다이내믹한 또 다른 인생 서막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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