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견카페를 시작하기 전 우리 가족은 여행을 무척이나 좋아했었다. 쉬는 날이면 갈까? 한마디에 모두들 일사불란하게 짐을 싸서 펜션이든 캠핑이든 떠나기를 좋아했다. 남동생과 당시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조카 그리고 회사원이었던 여동생과 주말마다 떠났던 것 같다. 당일치기던 1박 2일이던 가난했던 어린 시절 여행이라고는 꿈도 못 꿨던 우리는 성인이 된 후 눈뜨게 된 가족여행에 행복했었다. 비록 비싼 리조트나 콘도 같은 곳은 못 가더라도 비수기 때 한적한 펜션이나 캠핑장에서 가족끼리 먹는 바비큐에 와인만 있으면 천하를 다 얻은 기분이었다. 2012년 애견카페 개업을 앞두고 떠난 파도리 캠핑장 여행을 마지막으로 우리들의 진정한 자유는 끝이 났다.
코코와의 첫 캠핑. 여름 캠핑은 개고생이다.
애견카페를 시작하기 전 마지막 여행지였던 안면도 여행.
애견카페를 운영하면서도 여행은 계속되긴 했다. 하지만 자영업을 하는 상황에서 며칠 동안 가게 문을 닫고 가야 하는 여행은 1년에 한 번 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이전 여행은 작은 푸들 강아지인 코코만 케어하면 되는 인간들의 힐링을 위한 여행이었다면 애견카페를 시작한 후 가게 된 여행은 오로지 강아지들의 힐링을 위한 여행이 되어버렸다. 물론 강아지들의 힐링과 행복은 곧 우리의 힐링이자 행복인 것을 반려견을 데리고 여행을 다녀본 사람들은 공감할 것이다. 지금의 여행은 바다를 너무 좋아하는 아이들 때문에 안면도로 가지만 첫 애견 펜션 여행지는 평창의 그랑샤리오 애견 펜션이었다. 요새는 전국 방방 곡곡에 시설 좋은 애견 펜션이 많지만 8년 전만 해도 그리 많지 않았고 특히나 대형견을 받아주는 애견 펜션도 많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찾은 그랑샤리오 애견 펜션으로 간 아이들과의 첫 여행은 그야말로 꿈같았다. 그 당시 휴무도 없이 365일 일했던 우리는 1년이 넘게 지하 애견카페와 집만 오가는 일상에 점차 지쳤고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됐다. 고심 끝에 우리는 과감하게 카페 휴무 공지를 올리고 9인승 카니발을 랜트해서 강원도 평창으로 향했다. 나와 여동생 그리고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조카, 지금은 인연을 끊은 남동생과 다섯 마리 강아지들과의 여행은 이렇게 시작됐다. 두 번째 여행 때까지 봉구는 우리 가족이 아니었다. 당시 손님 강아지였던 봉구는 두 번째 여행이 끝나고 카페에 버려지면서 봉구 역시 우리의 다음 여행에 합류하게 된다.
첫 여행, 첫 애견 펜션, 첫 수영에 신난 달봉이.
하루 종일 수영장에서 나오질 않았던 물트리버 삼식이.
가뜩이나 여행 좋아하고 술 좋아하고 노는 거 좋아하는 우리였다. 그랬던 우리가 1년이 넘도록 휴무도 없이 하루에도 수십 마리 강아지들의 똥오줌을 치우며 일에 치여 살지 누가 알았겠는가? 번아웃이 올 정도로 지쳤을 때 강아지들과의 여행 결정이 되고 여행 한 달 전부터 설레기 시작했다. 지금도 여행이 결정되고 펜션을 예약하면 그때부터 설레기 시작한다. 애견카페를 하면서 우리는 1년에 한 번뿐인 강아지들과의 여행을 기다리면서 버티고 여행 후에는 그 추억으로 버틴다. 강원도 평창 애견 펜션에서의 아이들과의 첫 여행. 그동안 지하 애견카페와 집 그리고 카페 앞 도림천 산책이 전부였던 아이들에게 목줄 없이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는 애견 펜션의 넓은 잔디운동장과 수영장은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여행지에서도 똥 줍은 계속 된다.
암이 발병하기 전 건강했던 달봉이.
수영장 안에 있던 초등학생이었던 조카는 올해 수능을 본다.
애견 펜션에 들어서자마자 인간들이 짐을 풀고 점심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강아지들은 잔디운동장을 미친 듯이 뛰어다니며 맘껏 마킹을 하고 자유를 만끽했다. 그리고 강원도 계곡물을 받아 놓은 차디찬 수영장에 뛰어들어 생애 첫 수영을 즐겼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우리는 너무 행복했다. 강아지가 너무 좋아서 애견카페를 시작했지만 막상 이 일이 내 아이들을 힘들게 하는 게 아닌지 항상 고민하고 걱정했던 우리는 애견 펜션에서 너무 좋아하는 아이들을 지켜보며 오길 잘했다는 생각 하며 우리 역시 행복했다. 신나게 뛰어놀고 수영장에서의 한바탕 물놀이가 끝나고 물기를 대충 말린 아이들과 우리는 즐거운 저녁 파티를 열었다. 아이들에게 먼저 갓 삶은 닭가슴살로 맛있는 저녁밥을 먹인 뒤 우리도 와인과 바비큐로 여행의 여유로움을 만끽했다. 숯불에 소고기와 목살이 먹기 좋게 익어갈 즈음 아이들이 한 마리씩 다가와 무릎에 턱을 괸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알맞게 익은 소고기 한입 한입 아이들 입에 넣어주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여행지에서 바비큐 파티는 새벽까지 이어지고 흥이 오른 인간들의 수다가 이어지는 동안 다섯 마리 강아지는 옆에서 곤히 잠이 든다.
강아지들과의 첫 여행을 시작으로 우리는 매년 무슨 일이 있어도 여행을 추진한다. 삼식이가 양쪽 십자인대 수술을 해서 재활하는 그 해에는 안타깝게도 여행을 가지 못했다. 그 해를 제외하고는 매년 아이들과의 여행은 무슨 일이 있어도 떠났다. 여행을 함께 했던 멤버는 바뀌었다. 같이 동업했던 남동생은 힘든 애견카페 일에 싫증을 느끼고 밖으로만 나돌다 우리에게 폭력을 쓰고 갈라섰고 두 번째 여행에 동참했던 번*엄마는 일주일 동안의 강아지 세 마리 호텔비와 사료값을 지불하지 않고 잠적했다. 두 번째 여행을 함께 간 당시 8마리 강아지를 키우던 직원 커플은 갑자기 급격한 월급 인상을 요구했다. 대형견 두 마리를 포함 총 8마리 강아지의 출퇴근을 매일 차로 태워주고 그 아이들이 먹는 사료까지 아침저녁으로 제공했음에도 감당하기 힘든 월급 인상을 요구해 거절하자 그만두고 바로 옆동네에 애견카페를 차리고 우리와 멀어졌다. 초창기 여행에서 함께 했던 사람들과의 인연은 이렇게 안 좋게 끝이 났지만 우리들 옆에는 봉구를 포함 6마리 강아지들이 남아있있다. 애견카페 일을 하면서 사람들한테 뒤통수도 수도 없이 맞고 상처도 받았지만 또 다른 좋은 인연들이 나타나 우리와 우리 아이들을 지켜줬고 그 인연들은 아직까지 현재 진행 중이다. 그리고 그 좋은 인연들과의 여행도 이어졌다. 애견카페를 하기 전 코코는 우리와 참 많은 곳을 여행했었다. 동해바다에서 일출도 보고 부산 해운대에서 세찬 파도를 경험했고 서해바다의 고운 백사장에서 맘껏 달려본 코코. 어느 날 문득 코코 외에 다른 강아지들에게 바다를 보여준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우리는 세 번째 여행부터 바다로 떠났다. 안면도 바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