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다리 너머 처음 떠난 나의 강아지.
2024년, 여섯 마리 강아지들을 돌보면서 12년간 애견카페를 운영하던 우리에게 인생 최악의 시련과 고난이 찾아왔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그 어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순간 바로 아이들과의 이별이 찾아온 것이다. 우리는 우리 강아지들과의 이별이 이토록 심장이 뜯겨 나갈 정도로 고통스러운지 상상도 못 했다. 아이들을 보내고 고통스러운 몇 달을 보내며 정신과 치료도 받아보고 마음공부를 미친 듯이 해보지만 회복되지 않은 마음상처를 추스리기 위해 다시 노트북을 열고 브런치 문을 두드린다.
2025년 지금 현재 애견카페 운영 13년째를 바라보고 있다.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버틴 애견카페가 아닌지 싶다. 길고도 험난했던 코로나 시국을 지나면서 우리는 여섯 마리 늙은 강아지들을 지키기 위해 이를 악물고 애견카페를 지켰다. 코로나 시국동안 불어난 빚을 갚기 위해 새벽에 쿠팡 물류센터에서 새벽 6시까지 일하고 낮에는 카페를 운영하는가 하면 동생은 카드회사에서 일하면서 빚을 갚아나갔다. 그러나 이미 주변에는 새로운 시설의 애견카페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났고 늙은 강아지 여섯 마리와 지치고 나이 든 사장들 그리고 허름한 인테리어의 애견카페는 더 이상 고객의 환심을 사기가 힘들었다.
더 이상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쯤 우리에게 운명 같은 기회가 왔다.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된 컨설턴트한테서 나라에서 지원하는 사업 중의 하나인 희망리턴패키지라는 지원사업에 대해 알게 되었다. 벼랑 끝에 선 우리들에게 마지막 기회인 이 지원사업을 따내기 위해 나는 곧바로 사업계획서 작성에 돌입했다. 하지만 때마침 동생이 수술로 입원해서 홀로 카페를 운영해야 했고 가게에 물난리까지 나서 공사를 해야 하는 최악의 상황에서 나는 우리의 오래된 애견카페와 여섯 아이들을 지키고자 하는 일념 하나로 이를 악물고 사업계획서를 차곡차곡 써 내려갔다. 말도 안 되게 열악한 상황에서 작성한 사업계획서를 마감날 간신히 신청했고 얼마 후 희망리턴패키지 사업에 선정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우리한테 귀인 같은 컨설턴트는 하루도 제대로 쉬지 않고 일하면서도 위기에 처한 우리에게 그동안 모르고 있던 각종 지원 사업에 대한 정보들을 알려주셨고 나는 무려 4군데에 사업계획서를 며칠 밤을 새워서 작성해 지원했고 4군데 다 선정되었다. 12년 동안 운영하면서 황폐화된 애견카페 인테리어를 화장실부터 바닥과 간판까지 모조리 리모델링해서 우리 애견카페는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새로운 인테리어뿐만 아니라 공격적인 마케팅과 홍보로 등을 돌렸던 손님들의 발길이 다시 우리 애견카페로 향했고 우리는 새롭게 애견유치원도 기획해서 침체된 사업을 다시 일으킬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희망에 부풀어 있던 기쁨도 잠시 인테리어 끝나고 얼마 후 달봉이가 조금씩 헛구역질을 하기 시작하면서 몸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2023년 11월 달봉이는 큰 수술을 받았다. 이미 3살 때 비만세포종이라는 피부암 판정을 받고 8년 동안 여러 차례의 종양 제거 수술과 항암보조제와 철저한 식단으로 대체로 건강한 상태를 유지했었는데 이 당시 지방종이 낙타등처럼 커져 염증화 되고 간이나 신장 쪽에 종양이 의심되어 다음 다뇨에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 다행히 단골손님이 다니는 한 동물병원에서 긴급수술을 하게 돼서 수술은 잘 되었고 달봉이는 그 후 몇 달간 평소처럼 건강하고 활기찬 삶을 살았다. 그러나 인테리어가 끝나고 다시 재기할 희망에 부풀어 있던 중 달봉이의 암세포가 기어코 폐에 전이되었다는 진단을 받게 되었다. 폐에 전이된 암세포는 달봉이 나이 때문에라도 치료는 불가능했고 우리는 그동안 마음 졸이며 피하고 싶었던 달봉이의 시한부 판정을 마주하고야 말았다. 달봉이는 점차 힘들어했지만 타고난 먹성을 그대로여서인지 우리는 이번에도 달봉이가 이겨낼 것이라고 믿었던 것 같다. 8년 동안 여러 번의 수술과 위기를 겪고도 벌떡벌떡 일어났던 아이었기에 우리는 달봉이의 기적을 믿고 싶었다. 리모델링 후 바빠진 카페와 집을 오가며 우리는 밤새 달봉이를 간병했다. 2024년 8월 17일 토요일.. 걷는 것조차 힘들어하는 달봉이는 그래도 밥도 잘 먹었고 단골손님 뚜찌엄마가 주신 수제간식까지 평소처럼 왕성한 식욕으로 먹어치우고 잠들었다. 달봉이 병세가 악화되면서 침대에 올라오는 것을 힘들어하자 우리는 달봉이를 간병하기 위해 함께 거실에서 취침을 하고 지냈다. 18일 일요일 새벽 평소 때 보다 잠을 못 이루고 힘들어하던 달봉이는 자꾸만 고개를 들어 우리를 바라보았다. 나는 달봉이가 오줌이 마려운가 싶어 "달봉아 쉬 싸고 싶어?"하고 다가가면 아이는 다시 고개를 푹 떨어뜨리고 눈을 감고 잠이 들었다. 곤히 자는 것 같아 나도 자리에 누워 다시 잠을 청하다 문득 고개 들어 보면 달봉이가 자꾸 힘겹게 고개를 들어 우리를 지켜보는 것이 아닌가? 마치 엄마들의 모습을 자기 눈에 담아놓는 것 같은 행동에 순간 불길한 감정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새벽시간 동안 여러 번 고개를 들어 우리를 바라보던 달봉이는 이번엔 진짜로 소변이 마려운지 우리가 부축해 주자 힘겹게 화장실 방으로 향해 오줌을 쌌다. 그리고 그 자리 그대로 쓰러져 대변을 봤다. 우리는 당황해하는 달봉이를 다독이며 둘이서 아이를 안아 거실 이불에 눕혔다. 아이 앞에선 애써 담담한 척했지만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음을 직감했다. 그래도 아직 밥도 잘 먹고 간식도 잘 먹으니까 희망을 가지고 좀 더 버텨주기를 기도하며 그날 이른 아침까지 우리는 달봉이를 끌어안고 잠들었다. 12살 늙은 레트리버 달봉이의 몸은 따뜻했고 꼬순내가 코를 간지럽혔다. 몇 시간 후 일요일 아침 우리의 먹보 달봉이가 밥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아니 목도 가누지 못하고 습식사료를 억지로 입에 넣어줘도 퉤 뱉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그토록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아이와의 이별이 바로 오늘이라는 사실을 직감하며 오열했다.
달봉이가 밥을 거부하고 우리가 마지막을 준비해야 했던 날이 하필 애견카페에서 가장 바쁜 요일인 일요일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카페 문을 닫고 달봉이와 마지막을 보내고 싶었지만 우리에게는 맡겨진 호텔링 강아지들이 많았기에 그 아이들을 돌보면서 카페를 운영할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카페에 홀로 나와 달봉이 외에 다른 다섯 강아지들과 위탁 강아지들을 돌보면서 카페운영을 해야 했다. 일요일 손님들로 북적이는 카페에서 나는 달봉이 걱정에 눈물을 삼키며 커피를 내리고 강아지들을 케어하며 손님들을 맞이했고 동생과 조카는 달봉이의 마지막을 지키고 있었다. 소식을 들은 단골손님 넷찌 엄마가 급히 집으로 오셨고 힘겨운 숨을 내뱉으며 누워있는 달봉이 한참을 내려다보시다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쓰다듬으며 말씀하셨다."달봉아... 힘들면 이제 가도 돼.."옆에서 듣던 동생은 탄식했다. 그동안 우리는 아픈 달봉에게 달봉아 힘내! 이겨내자! 어서 나아야지!라는 말만 하며 붙잡을 생각만 했지 힘들어하는 달봉이를 놓아줘야 한다는 생각을 꿈에도 못했던 것이다. 그제야 동생은 우리 때문에 떠나지 못하고 버티고 있었던 달봉이를 이제는 보내줘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달봉이에게 입을 맞추고 눈물을 삼키며 조용히 속삭였다."달봉아... 엄마들은 괜찮으니까 힘들면 가도 돼." 동생의 말이 끝나자마자 달봉이는 가뿐 숨을 내쉬며 힘겹게 고개를 들어 큰방을 한번 보고 거실을 한번 보고 누군가를 찾는 듯했다. 아마도 카페에 있는 나와 다른 동생 강아지들을 찾는 것 같았다. 이 집에서 12년 동안 엄마들과 코코, 삼식이, 솜, 수달이, 봉구와 동고동락하며 행복했던 기억을 떠 오렸는지 달봉이는 한참을 우리를 찾다가 잠시 가뿐 숨을 내쉬더니 이내 네다리를 쭉 뻗으며 더 이상 돌아올 수 없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우리의 철딱서니 없는 군기반장 12살 달봉이가 그렇게 엄마들 곁을 그리고 동생들 곁을 떠나 강아지 별로 영원히 날아간 것이다.
카페 안은 이미 만석이었고 달봉이 소식을 듣고 달려온 단골손님들이 눈물을 삼키며 간신히 일을 하고 있는 나의 곁을 묵묵히 지켜주고 있었다. 오후 두 시쯤이었나. 넷찌엄마한테서 전화가 왔다. 원두커피를 내리던 나는 떨리는 손으로 전화를 받았다."큰 사장.. 달봉이... 갔어." 넷찌엄마 옆에서 오열하는 동생의 울음소리가 전화기 밖까지 새어 나왔고 나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옆에서 지켜보던 단골손님들도 숨죽여 눈물을 흘렸고 나는 나의 달봉이의 마지막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주방에서 쪼그려 앉아 소리 죽여 흐느꼈다. 그날 밤 우리와 우리 아이들을 아끼는 단골손님들이 달봉이의 마지막을 함께하기 위해 우리 집으로 찾아오셨다. 달봉이를 아기 때부터 봐오셨고 예뻐하셨던 민수씨, 말랑이 엄마, 쿠키엄마는 눈물을 흘리며 잠든 달봉이에게 입을 맞추고 작별인사를 하셨다. 우리 아이들에게 자칭 형아라고 불리는 민수씨는 우리의 10년 단골손님으로 우리와 가족처럼 지내는 사이고 특히 달봉이와 삼식이와 민수씨의 우정은 남달랐다. 민수씨한테 달봉이와 삼식이는 그냥 애견카페 강아지와 손님이 아닌 보호자인 엄마들보다 끈끈한 사이었다. 달봉이와 삼식이가 아프거나 수술하거나 할 때면 언제든 달려와 도와주셨고 1년의 한 번씩 가는 애견펜션으로의 여행에서도 아이들 곁에는 항상 민수씨가 있었다. 그런 민수씨가 돌아올 수 없는 깊은 잠에 빠져든 친구이자 동생 같았던 달봉이에게 마지막 입맞춤을 하고 빌라 계단을 내려가면서 오열하기 시작했다. 달봉이를 사랑했던 키가 180이 훨씬 넘는 거구의 남자는 주차장 자신의 차에 기대어 통곡했고 이내 주차장 센서등이 꺼지며 어둠 속에서 민수형아의 흐느낌은 계속됐다. 우리에게 이토록 많은 사랑과 추억을 남기고 간 12살 레트리버 달봉이의 마지막 밤을 이렇게 지나갔고 다음날 민수씨 커플과 우리 가족은 경기도 광주의 한 반려동물 장례식장에서 달봉이를 영원히 보내주었다.
남아있는 다섯 아이들도 노견이기에 우리는 달봉이를 떠나보내고 마냥 슬퍼만 하고 있을 수 없었다. 달봉이를 보내고 이틀 후 우리는 눈물이 채 마르기도 전에 첫째 코코의 건강검진을 하기로 하고 달봉이 수술을 했던 병원에 예약을 했다. 우리는 지금도 그때 그 동물병원에서 코코의 건강검진을 한 선택을 매일 피눈물을 쏟으며 후회를 하고 있다. 그때 우리의 그 선택으로...우리의 코코가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