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 4일 엄마의 일기
오늘 작은 딸이 이사를 갔다.
딸 방이 텅 비니까 마음이 허전하다.
사랑하는 작은 딸
잘해주지 못하고 엄마가 미안하다.
최근에 언니 제보로 엄마 일기장을 훔쳐보았다. 엄마가 허전해하고 힘들어한 건 알았지만 일기를 읽고 나니 슬퍼서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나의 부재가 엄마의 고통이라니, 우리의 삶이 얼마나 가까웠기에 이렇게 고통스러울까.
나는 이사를 마치고 책을 정리하다가 주저앉아서 한참을 울었다. 그동안 했던 마음고생들이 떠올랐다. 소리 내서 울고 나니까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다시 털고 일어나 남은 짐정리를 하고 저녁밥을 했다.
나는 독립을 하고 엄청난 공허함을 느꼈다. 돌봄이 빠져나간 자리가 이렇게 텅 빌 줄은 몰랐다. 집안일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니 내 시간이 많아졌고 그동안 해왔던 ‘돌봄 노동’에 대해 생각했다. 알게 모르게 계속 부모님에게 신경을 쓰고 집에 오는 형제들과 친인척들에게 쓰던 에너지를 썼으며 사람 말소리와 TV소리에 피로감을 느꼈다. 내가 지금까지 사람을 챙기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썼는지 알게 되었고 우울했다. 난 왜 이렇게 살았어야 했을까. 꼭 그렇게 살았어야 했을까. 그런데 문제는 내가 선택한 삶이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누굴 탓할 필요도 없고 지금까지 못했던 걸 해나가면 된다는 삶의 방향을 잡았다.
나는 심란한 마음에 반년 동안 사람도 잘 만나지 않고 집에서 조용히 시간을 보내면서 지친 나를 돌보았다. 집에서 아무런 소음 없이 가만히 있는 것을 즐겼다. 외로우면 외로운 대로, 편하면 편한 대로 날씨처럼 변하는 내 마음을 관찰하고 그 감정에 머물렀다. 피할 수 없는 감정이라면 머무를 수 있는 힘을 키우는 편이 좋았다. 가족에게서 멀어지고자 하니 그 외에 사람은 말할 필요도 없이 더 멀어졌다. 내가 없는 타인은 의미가 없었다. 희미한 나의 존재를 챙길 시기니까 나에게 좀 더 힘을 쏟기로 했다.
나는 단조로운 일상을 보냈지만 마음은 어느 때보다 소란스러웠다. 나는 집밥을 해 먹고 산책을 하면서 사색을 즐겼다. 맛있는 밥을 먹고 길 위를 걸으며 내 인생에 대해서 생각했다. 내가 어떤 게 힘들었는지, 지금까지 어떤 것을 놓치고 살았는지 일상 속에서 생각을 발견하며 하나씩 인정하고 비워갔다. 어떤 날에는 노래를 듣다가 울기도 하고 어떤 날에는 살랑살랑 부는 봄바람에 위로받기로 했다. 어떤 날은 갑자기 쏟아지는 비를 맞으면서 피할 수 없는 일들을 겪었을 때 나처럼 덤덤하게 길 위를 걷기도 했다. 그렇게 몇 달을 보내다 보니 다시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덧 6월 말이었다.
엄마는 내가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아침, 점심, 저녁으로 연락을 해왔다. 나는 그 연락을 받는 게 점점 버거워져서 잘 지내고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고 말했다. 주말마다 집에 오라는 연락도 슬슬 지쳐갔다. 나는 엄마의 분리불안 때문에 계속 갈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엄마도 내가 없는 시간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다. 나도 나만의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터득할 필요하다는 결정으로 부모님과 거리 두기를 하기로 했다.
엄마는 늘 나를 걱정하지만, 난 혼자서도 제법 잘 살고 있다. 혼자서도 잘 먹고, 잘 자고, 집안일도 척척 잘하면서 산다. 내 입맛에 맞는 음식을 해 먹고살다 보니 엄마 음식이 생각나는 것도 어쩌다 한 번이다. 엄마의 밑반찬이 그리울 땐 엄마한테 먹고 싶다고 해달라고 했다.
나의 독립은 내게는 해방이었으나, 부모님에게는 상실감이었다. 나는 부모님의 의존이 부담스러웠다. 모르는 것이 많아지면서 답답하고 짜증이 늘었고 시키는 일이 점점 늘었다. 조금만 알아보면 할 수 있는 일도 시키면 그만이다. 그런데 그런 일들은 귀찮아도 하면 그만인데 더 피로감을 느끼는 건 부모가 맺은 관계에 대한 일들이었다.
아빠는 정형적인 가부장적인 남편이었고 엄마는 책임감 강하고 의존도가 높은 맏며느리였다. 머리가 크면서 아빠의 가부장적인 모습으로 인해 갈등이 끊임없이 발생했고 수동적인 엄마에 대한 답답한 마음은 늘 품어왔다. 그럼에도 내가 부모님과 최근에 10년 동안 살 수 있었던 이유는 나의 정서적인 결핍 때문이었다. 1남 2녀 중에 둘째로 태어나서 나는 한 번도 부모에게 내가 중요한 사람이라고 느낄만한 일들이 없었다. 늘 소외되고 알아서 잘해야 했다. 그래서 늘 스스로 해야 하다 보니 할 수 있는 일이 많고 독립적으로 보였지만 난 독립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의존하고 싶지만 의존할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살아야 했다.
집에 들어올 때부터 집을 나갈 생각으로 독립자금을 모았지만 나는 부모를 원망하는 마음을 품은 채 그들의 곁을 떠나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2022년도에 심리상담을 1년 정도 받았다. 상담을 받으면서 많이 울었다. 그리고 상담을 받으면서 응어리진 마음이 해소되어 부모를 한 사람을 볼 수 있는 내면의 힘을 키울 수 있었다. 점점 더 깊은 마음을 들여다보다가 마음이 많이 힘들었을 때가 있었다. 1년 내내 힘들어서 사람도 못 만나고 여행을 다닐 수도 없었는데 마음을 돌보는 일이 이렇게 힘든 일인지 몰랐다. 그런데 점점 더 가벼워져서 고통스러웠던 기억을 많이 덜어낼 수 있었다. 정말 많이 울었고 그 마음을 하나하나 붙들고 글을 썼으며 몸과 마음을 돌보기 위해 요가원을 열심히 다녔다. 내가 준비된 것처럼 독립할 수 있었던 이유도 이 과정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독립을 하고 더 큰 파도가 밀려오는 게 아닌가?
그렇게 2년 6개월 만에 다시 심리상담을 받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