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 연말까지는 꼭 독립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이렇게 살다 간 사는 게 너무 피곤해서 제명에 못 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이 오랜 시간 방치해 온 문제들이 터지기 시작하고 그 일을 수습하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계속 이렇게 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땅주인인 친척아저씨는 옆집에 살던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노골적으로 내 땅에서 나가라고 압박을 하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그 압박은 20년 동안 계속되었다고 했다. 한숨이 나왔다. 무기력한 아빠의 인생이 내 가슴을 짓누르는 것 같았다. 늘 쪼들리며 살아왔다지만 그래도 편안한 삶을 위해서는 뭐라도 했어야 하지 않았나 싶었다.
답답해서 빨리 이 집을 나가야겠다고 매일매일 다짐하며 네이버 부동산에 시세를 검색했다. 부모님을 두고 이 집을 나가는 것이 죄책감을 느끼는 일이기도 했지만 답답함이 날로 심해져서 주말에도 집에서 쉬는 것 같지가 않았다. 전세시세와 주거래 은행 대출이자를 조회하며 앞으로 지출할 금액이 어느 정도 될지 예상해 보았다. 올해는 내 삶에 칼을 드는 한 해가 될 것이다.
그러다가 친한 동생이 역세권에 임대주택 공고가 떴다고 알려줬다. 8월에 신청하면 11월 말에 결과가 온다고 했다. 나는 뭐라도 해보자는 심정으로 신청을 하고 마음을 비웠다가 기대로 채우고 다시 비우기를 반복했다. 11월에 당첨 결과를 보고 떨어지면 혼자 살만한 작은 아파트 전세를 알아보려고 했다. 내게는 계획이 있었다.
집이 조용할 날이 없으니까 세 살 터울의 언니는 나에게 빨리 독립을 하라고 말했다. 이렇게 살다 간 니 인생도 제대로 못살고 스트레스받다가 죽겠다고 빨리 살길을 찾으라고 했다. 나도 그러고 싶은데 임대주택 결과를 보고 안되면 전세를 구해서 나갈 계획이라고 조용히 말했다. 그러면서도 형제들은 나에게 부모님과 살 집을 알아보는 건 어떠냐고 말했다. 부족한 돈을 대출을 받으면 되지 않냐고 말했다. ‘그럼, 대출은 누가 받아?’ 물론 내 몫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독립할 자금이 없어진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부모님이 모아둔 돈도 없는데 내가 집을 나간다고 받을 수 있는 돈도 당연히 없었다. 나는 얼버무리며 한숨을 쉬며 대답을 피했다.
그 사이에 우리 집엔 재앙이 들이닥쳤다. 평화로웠던 일요일에 아빠와 친척아저씨와의 갈등을 극에 달했고, 멱살을 잡고 낫으로 찔려 죽인다며 싸웠다. 나는 마당에서 빗자루를 휘두르며 그들의 싸움을 말렸다. 8월 말에 일이었다. 엄마는 주저앉아서 실변을 보았다. 싸움이 끝나고 집에 들어와서 생긴 일이었다. 나는 깜짝 놀랐지만 내심 아무렇지 않은 척하면서 뒷수습을 했다. 엄마는 평소에 먹던 신경과약을 먹고 몸져누웠다. 더 이상 이 문제를 방치할 수 없었다. 이러다가 장례를 치러도 이상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월요일이 되고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방법을 찾아 나섰다. 언니는 아침부터 변호사 사무실에 쫓아갔다. 상담한 결과 우리 집이 처한 상황이 유리하지 않았다. 사무국장이라는 사람이 집주인과 크게 갈등을 일으키지 말고 그 집에서 빨리 나가라고 했단다. 나는 그 전화를 받고 부동산에 바로 전화를 했고 때마침 부모님이 바라던 빌라 1층 매물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집주인이 매매는 아닌데 전세를 희망한다고 했다. 나는 매물이 보고 싶다고 말했고 어떤 분이 또 보러 온다고 했다고 해서 나도 가겠다고 했다. 벼랑 끝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회사에 사정을 얘기하고 급하게 매물을 보러 갔는데 놀랍게도 그 매물을 보러 온 사람은 다름 아닌 아빠였다.
아빠도 어제 엄마를 보고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부동산에 바로 전화를 했다고 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빌라 전세를 계약했다. 매물을 보고 세 시간 만에 전세계약을 했다. 도배와 장판교체를 해주지 않는 조건으로 전세금을 1000만 원 내렸다. 그들도 신경 쓸 여력이 없다고 했다.
집에 돌아와서 한참 동안 앉아서 멍하니 앉아있었다. 이틀 사이에 일어난 일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어떻게 사는 게 이러나 싶어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어제는 낮에는 빗자루를 휘두르며 싸움을 말리다가 하루가 지나서 전세계약서를 하다니, 이게 무슨 날인가 싶었다. 죽겠다 싶었는데 또 죽으란 법은 없나 싶어서 인생이 알 수 없구나 싶었다.
이사는 한 달 뒤에 개천절에 하기로 했다. 한 달 동안 묵은 살림을 정리하고 떠날 준비를 해야 했다. 집은 전원주택에 건물은 3채, 부지는 100평 정도 되었다. 곳곳에 쌓여있는 살림을 정리하는 일은 보통일이 아니었다. 막노동이 따로 없었다. 나는 버리지 못하는 부모님과 전쟁을 선포했다. 25평 빌라에 가서 살려면 짐을 최소화해야 하니까 아까워도 이고 지고 갈 수 없다고 말이다.
정리를 시작했다. 우선 팔만한 물건들은 중고거래로 팔아서 현금화시켰다. 수 십 년 된 장독, 키우던 화분, 온갖 기계들 등등 온갖 물건을 팔았다. 그리고 그 돈으로 쓰레기를 버리는 비용으로 사용했다. 나도 갖고 있던 물건들을 정리했다. 몇 년째 하지 않는 미싱과 온갖 자재들, 읽지 않는 책들, 옷, 신발 등등 최근에 쓰지 않은 물건은 죄다 갖다 버렸다. 버려도 버려도 물건은 계속 튀어나왔고 주말만 되면 1톤 트럭으로 가득채워 내다 버렸다. 그래도 버릴 물건이 산더미여서 업체를 부르기로 했다. 청소를 하고 나면 근육통에 시달리고 몸살이 나기도 했는데 멈출 수가 없었다. 그런데 해야 할 일은 청소만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사, 도배, 입주청소, 블라인드 업체를 알아봐야 했고 집 사이즈를 재서 가구 구매를 해야 했다. 업체 방문 일정을 조율하는 것도 내 몫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개천절에 이사를 했다. 아빠의 시팔저팔 하는 소리와 다 버리면 뭘 쓰냐고 난리 치는 엄마의 소리가 멈추고 엄마의 다 버려서 쓸 게 없다는 볼멘소리가 시작되었다. 새로운 집을 세팅하는 일은 계속되었다. 계속 자잘하게 필요한 물건들을 계속 구매해야 했다. 피곤함이 가시지 않았다.
형제들이 와서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오지 않았다. 나중에 들어보니 굳이 그 힘든 일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단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내 삶을 뼈절이게 후회했다. 아, 진작 독립하고 내 삶을 개척하면서 살았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해서 이렇게 고생을 사서하고 있구나 싶었다. 이제 좀 쉬고 싶었다. 계속 뭔가에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게 너무 힘들었다. 이제 할 만큼 하지 않았나 싶었다.
그렇게 두 달째 새집에 적응하고 있을 무렵 대망에 임대주택 결과가 나왔다.
‘대기번호 7번’
나에게 드디어 집에 생겼다. 언제 입주를 할지 모르지만 그래도 기다리면 살 수 있는 집이 생기는 것이다. 그런데 이틀 뒤에 앞번호에서 포기하거나 연기를 해서 바로 입주를 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계약은 12월 20일.
난 이사한 지 두 달 만에 또 이사를 하게 되었다.
엄마는 갑작스러운 나의 독립 소식에 꼭 나가야 하냐고 물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대답했다.
‘엄마 미안해, 내가 살려면 어쩔수가 없어.나도 할만큼 했잖아...’
그렇게 난 독립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