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나로 살고 싶다.

이제 그래도 되지 않을까.

by staynwriter


이사가 결정되고 가족의 반응이 충격이었다. 내가 집을 나간다고 하니까 다들 아쉬워했다. 아빠는 만날 싸우다가 나간다고 하니까 내심 반가우면서도 서운해했다. 그런데 내가 충격을 받았던 건 형제들의 반응이었다. 남동생은 집에 와서 이것저것 챙겨주는 사람이 없어져서 그런지 서운하다고 울려고 했다. 언니도 처음에는 축하한다고 하더니 나중에는 부모님이 걱정된다는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내가 부모님과 같이 산다는 것이 형제들의 짐을 덜어주는 일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몹시 심란했다. 가족 안에서 이해관계가 얽혀있고 내가 내 삶을 잘 구축하고 꾸리지 못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한편으로는 이제라도 독립을 하는 것에 안도감을 느꼈다.


결국 5월에 사건이 터졌다. 내가 집을 나간 뒤 본가에 자주 오던 남동생이 엄마한테 평소에 안 하던 행동을 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엄마가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지 않으면 더 이상 만나러 오지 않겠다고 협박했고, 엄마가 자주 연락하는 게 싫다며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었다. 그러다가 마음이 풀리면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고 엄마가 필요한 것 같은 물건들을 샀다. 부모님과 거리 두기를 하다가 오랜만에 본가에 갔는데 엄마가 남동생이 일주일째 연락을 받지 않아 걱정된다고 했다. 엄마는 나에게 남동생에게 연락해 보라고 닦달했고, 엄마를 모시고 카페에 가서 바람을 쐬고 왔다. 맛있는 팥빙수를 먹어도 근심이 떠나지 않던 엄마를 보고도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그 날밤 남동생과 통화하게 되었다.


남동생은 엄마에게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모두 표현하고 싶어 했다. 나는 남동생에게 엄마를 보면 부정적인 감정이 일어난다면 거리를 두고 마음을 추슬러야 하지 않냐고, 왜 더 자주 찾아와서 공격하려고 하냐고, 지금 뭐 하냐는 거냐고 언성을 높여 말했다. 내가 남동생에게 화냈던 이유는 그의 모습에서 아빠모습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아빠가 엄마를 함부로 대하는 모습을 보고 화를 내더니 이제는 그 모습을 닮아버린 그의 모습이 충격이었다. 나는 엄마가 의도적으로 상처 주고 싶어서 그랬겠냐고 주지 못해서 자책하고 미안해하는데 그런 엄마를 누구보다 위해주려고 하더니 지금 누구보다 엄마를 힘들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남동생은 내게서 위로를 받을 수 있다고 기대했다가 쓴소리를 듣고 기분이 나쁘다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나는 그 뒤로 남동생과 세 달이 지나도록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왜 당사자도 아닌데 왜 이렇게 가족 문제로 골치가 아픈지 알아야 했다. 그래서 다시 심리상담을 받기도 했다. 상담사는 나의 가족관계에 대해 분석했다. 언니는 자기주장이 강하고 다소 개인주의적인 아빠의 성향이라고 했고 나와 남동생은 섬세하고 감정의 동화가 잘되는 엄마의 성향이라고 했다. 나는 집에서 정서적 희생양이었던 것 같다고 했다. 한 가정 안에서 중재자 역할을 하는 사람이 희생양이라고 했다. 다들 제멋대로 하고 싶은데 가운데서 서로의 상황을 설명하고 이해하도록 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은 자기 의견이 없다고 했다. 나는 상담을 받으면서 가족과 더더더더더 멀어지고 싶었다. 가족 안에서의 구성원이 아니라 그냥 한 사람으로 존재하고 싶었다.


이상하게 눈물이 잘 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상담이 끝난 후 몇 주가 지나서 마음이 무너지는 일이 생겼다. 상담을 받고 심란해서 컨디션도 계속 안 좋았는데 애인이 나에게 예전처럼 리액션을 안 해준다고 불만을 쏟아냈다. 처음 듣는 말은 아니었는데 그날따라 그 말이 나를 무너지게 만들었다. 나는 그에게 당신에게 조차 사회생활을 하면 나는 언제 마음 편하게 사냐고 미친 듯이 울기 시작했다. 그렇게 네 시간을 울다가 탈진해서 잠에 들었다. 나는 그동안 내가 많이 애쓰면서 살았다고 인정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이제 그만해도 된다고 내가 말하게 말해주었고 쓰러지듯이 잤다.


남동생은 3개월 만에 만났다. 미리 남동생이 예매했던 록페스티벌은 화해의 장이 되었다. 남동생은 나와 통화한 이후로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면 몸이 아파서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심리치료를 진행 중이라고 했고 나도 심리상담받은 얘기를 했다. 나는 울면서 이제 더 이상 그렇게 못살겠다고 우리 스스로 각자 잘 살자고, 누가 누굴 보살펴주길 기대하지 말자고 말했다. 나의 정서적인 독립을 선포하는 순간이었다. 나는 장남이라는 이유로 압박감을 느끼는 남동생과 장녀라는 이유로 부양의 부담을 느끼는 언니에게 이제 그냥 부모에게는 1/3의 역할을 하면서 살자고, 이제 우리 그냥 각각의 개인으로 살자고 말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서로의 자리에서 애쓰면서 살았다고 고생했다고 위로했다. 나는 울려고 하는 남동생에게 많이 울어야 풀린다고 눈물 참지 말라고 울어도 된다고 말했다.


역기능적인 가족은 가족 안에서 역할에 집착하고 한 개인으로 바라보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 집도 결핍이 많은 집이어서 그런지 서로에게 원하는 역할을 기대하고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서로 비난하고 강요하며 죄책감을 심어주기도 했다. 그런데 아무리 가족이어도 타인을 위해 희생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 어딨겠는가. 아무리 의존적인 부모도 자식의 공백으로 자기 살길을 찾게 되어있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의존하려고 하기보다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이 늘었으면 좋겠다고, 그런 내가 되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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