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너무 힘들어
내가 넬(NELL) 노래 중에 가장 좋아하는 음악은 ‘두 번째’라는 노래다. 앨범을 두루두루 찾아 듣는 편인데 넬 1집에 있는 두 번째라는 노래는 나의 가장 솔직한 마음을 발견하곤 한다.
내게 기대지 마. 나도 너무 힘들어
나는 사람들이 나를 찾아주는 것이 좋았다. 그런데 나의 쓸모와 존재의 이유가 되었던 관계들이 늘 버거웠다. 지금 생각해 보니 잔인한 행위였다. 남 얘기 듣는 것처럼 힘든 일이 없는데 그 행위로 존재를 자꾸만 확인하려고 했다니 끔찍하다. 그러고 보면 내가 늘 인간관계로 속이 시끄럽던 이유가 있었다. 온갖 불행들을 사람들이 내게 쏟아놓고 잘 들어주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했으니 관계가 편하고 좋았을 리가 없었다. 나는 불행컬렉터로 오랫동안 살았던 것이다. 사람들은 좋을 때는 나를 찾지 않았지만 힘들 때는 나를 찾았다. 나는 삶의 기본은 불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 삶도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못했고 타인의 삶 또한 부정적인 시선으로 밖에 볼 수 없었다. 내가 세상을 보는 눈이 그랬다.
사람들과 멀어지는 건 내게 두려운 일이었는데 지금은 그들에게서 영향을 받고 피곤해하며 지친 나를 보는 게 더 두렵다. 조금은 외로워도 혼자서도 잘 지내고 싶은 마음이 절절하게 커졌다. 내가 나를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하는 마음이 더 버겁다. 세상을 살면서 나만큼 나를 보호해 줄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는데 내가 그 역할을 스스로 해주지 못했다는 것이 괴롭다. 내가 타인을 챙겼던 그 살뜰한 마음으로 나를 돌본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다. 대상이 바뀌었을 뿐 행위의 주체를 바뀌지 않았기에 내가 지금까지 해보지 않았던 더 많은 시도들을 해보길 기대하게 된다.
그래서일까, 나에게 빈번하게 실망하게 되는 건. 처음이라 서툴고 어색하기 마련인데 경계선을 지키지 못하는 내가 속상했다. 내 삶의 경계가 없다는 건 책을 읽다가 알게 되었다. 세포를 구분하는 건 세포막인데 나와 세상을 연결하는 경계가 미미하다는 것을 읽자마자 알았다. 내 삶이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고 느낀 순간이었다. 문제는 경계가 없어서 거침없이 침범해 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나는 내 삶을 지켜 내야기 위해 경계선을 쌓기 시작했다.
문제의 주체는 누구인가?
타인이 내 삶에 쉽게 침범해 왔듯 나도 타인의 삶에 쉽게 침범했다. 그래서 지금까지 관계들이 가까워서 멀어졌구나 싶었다. 나는 밥먹듯이 생기는 문제의 주체를 분석하고 내가 풀어야 할 문제와 타인이 해결해야 할 문제의 경계석을 하나씩 쌓아 올렸다. 내가 풀어야 할 문제는 전문가에게 상담을 받거나 전문가가 쓴 책을 보면서 해답을 찾았고 타인의 문제는 그들이 시간을 두고 해결할 힘이 있다고 믿기로 했다. 말은 쉽지만 평생 경계 없이 살았으니 거리 두는 게 쉽지 않았다. 그런데 쉽지 않다고 계속 미룰 일이 아니었다. 나는 힘들어도 계속 큰 돌과 자잘한 돌을 번갈아가며 쌓았다.
가장 버거웠던 건 동네친구였다. 친구는 일찍이 엄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도 몇 년 뒤에 암으로 돌아가셨다. 어렸을 때부터 같이 성장하면서 그 친구의 불운한 가정사는 늘 함께했다. 친구는 이름을 바꾸면 팔자가 바뀔 거라고 철학관에서 10만 원짜리 이름을 받아왔지만 천성이 게을러 개명신고까지는 하지 못했다. 그런데 친구가 결혼, 출산, 이혼의 길을 걸으면서 나는 그 더 이상 그 친구가 힘들때 곁에 있어주는 사람이라는 역할에서 스스로 벗어났다. 데이트 폭력을 하는 남자친구와의 결혼, 계획에 없던 임신,모두가 예상했던 가정폭력. 문짝을 때려 부수고 아이가 없는 곳을 피해서 컵을 내리치는 끔찍한 얘기를 듣고 있자니 꿈자리가 사나워서 살 수가 없었다. 그래서 결국 이혼을 하기로 했는데 서로 아이를 양육하지 않겠다고 기를 쓰고 미루더니 또 서로 키우겠다고 싸웠다. 이후로 친구의 외도까지...난 더 이상 그 얘기들을 들을 수 없었다. 감정쓰레기통에 된 것 같았다.
나는 친구와 거리를 두기로 했다. 아홉 살 때 나는 친구의 울먹이는 목소리로 전화를 하면 내려가서 같이 있어주곤 했다. 나는 평생 그 친구를 위로하는데 시간을 썼다. 아프고 힘들때 어떤 의무라고 있는 듯 옆에 있어주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불행한 삶을 스스로 선택하는 친구 곁에 계속 들을 순 없었다. 시간을 두고 친구를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한 사람으로 바라보았다. 자기 인생, 자기가 감당하면서 사는 거지 하면서 우리 사이에 안전한 거리를 두었다.
내 인생의 중심에서 주인노릇을 하고 있던 가깝고 중요한 사람들을 원 밖으로 밀어내고 있다. 아무리 중요하다고 한들 나보다 더 중요할리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