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요리하는 사람의 냉장고

라고 친구가 말했다.

by staynwriter

집에 친구들이 다녀갔다. 연말에 밥 한 끼 먹자는 말이 그렇게 어려운지 밥을 먹지 못했고 신년회를 갖기로 했다. 친구가 송어회와 족발을 사 온다고 했는데 1/N을 하는 분위기가 아니어서 좀 머뭇거렸다. 돈을 준다고 해도 안 받을 친구이고 나처럼 혼자 1인분의 삶을 살고 있기에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12월 말에 약속이 파투가 나고 우연히 유튜브를 보다가 수육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친구들에게 주말에 약속이 있는지 묻고 내가 수육의 도전해 보겠다고 먹으러 오라고 말했다.


1월 2일, 퇴근하고 요가원으로 향했고 2026년 첫 요가수련을 마쳤다. 요가 수련을 마치고 마트에 가서 수육용 돼지 앞다리살과 파, 마늘, 배추를 샀다. 오후 네시, 친구들을 맞을 준비를 시작했다. 밀린 설거지를 하고 재료를 손질했다. 메뉴는 배추 전, 수육, 콩나물국, 갓 지은 밥, 냉동실에서 잠자고 있던 바삭한 튀김만두와 김말이다. 시간을 넉넉하게 잡고 요리를 완성했다. 요리를 하면서 쌓인 설거지를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친구 1은 우리 집에 처음 온다. 네 살이 된 딸을 데려왔는데 심리적으로 거리감이 필요해서 독립한 이후로 잘 만나지 않았다. 친구 2는 3월에 집들이 때 왔던 남사친. 그들은 내가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한다. 내가 요리를 하기 위해 냉장고를 열면 유심히 관찰하기 바빴다. 내가 채소칸에서 사과를 꺼내는 순간 그들은 한 입으로 얘기를 한다.


“정말 요리하는 사람의 냉장고네!”


그렇다. 나는 요리를 한다. 1년 동안 배달은 네 번 시켰다. 집에서 만들어 먹을 수 없거나 너무 피곤했을 때였다. 한 번은 피자, 두 번은 치킨, 나머지 한 번은 마라톤 대회를 다녀와서 밥 할 기운이 없어서 김밥과 떡볶이를 시켰다. 그런데 그렇게 배달음식을 먹고 만족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그 이후로는 배달 음식을 시키지 않는다. 딱히 먹고 싶은 것도 없기도 하고.

냉장고에는 여러 가지 재료가 있다. 언제든 꺼내 먹을 수 있도록 세척사과, 요리하고 남은 양파 1/4 조각, 흙당근, 양배추 1/4개, 무1/2개, 콩나물 1/2 봉지, 브로콜리 1개, 귤 10개 , 달걀 20알 , 치즈, 오이 그 외의 굴소스를 비롯한 온갖 양념들. 엄마가 준 총각무, 꼬들뱅이 김치, 배추김치, 언니가 해준 파김치. 독립하면서 여러 요리를 하기 위해 구매한 재료들이 가득하다. 자주 들여다보며 어떤 요리를 해야 할지 고민하고, 어떤 음식을 빨리 먹어야 하고 무엇을 버려야 할지 빠르게 판단한다.


냉장고 살림을 경영하고 내 입에 어떤 음식을 넣을 것인가는 내 삶에서 굉장히 중요한 행위이다. 내 건강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도 하고 마음이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대단히 중요하다. 내 건강을 위해 어떤 음식을 어떤 재료를 어떤 방식으로 만들었는지 확인하고 싶다. 다른 곳에 에너지를 써서 요리할 체력이 없다면 어느 영역에 에너지를 소진하고 있는지 점검한다. 삶의 우선순위를 위해서 에너지 도둑들을 찾고 차단하여 내 영역을 지켜야 한다.


나는 이런 과정이 행복하고 즐겁다. 그런데 이건 오직 나를 위한 상차림일 때 해당한다. 누군가를 위해 요리할 때면 피곤해진다. 타인을 위한 요리는 노동으로 변하고 내 입맛이 아닌 타인의 입맛까지 생각하게 되어서 정신적은 노동까지 곁들여진다. 그래서 좀 더 일찍이 독립을 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밖에서나 집에서나 쉬지 않고 일했던 엄마를 생각하면 늘 밥이 있는 집에서 누렸던 호화스러움이 누군가의 노동으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새해가 되고 사람들은 나에게 하루빨리 결혼 소식을 들려달라고 한다. 처음 보는 사람은 왜 나이가 이렇게 차도록 결혼을 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1월 3일밖에 되지 않았는데 네 명한테 같은 소리를 들었다. 그런데 나는 타인을 위한 가사 노동을 하고 싶지 않다. 결혼하면 반복될 노동들에 감당할 힘이 없다.

“왜 지금까지 결혼을 하지 않았어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


내 삶이 어쩌다가 그렇게 되었는지 묻는다면 궁금하다고 말해달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정말 내 삶은 어쩌다 보니 이렇게 살고 있다. 그런데 난 나쁘지 않다. 내 삶을 아는 사람은 나밖에 없는데 다른 사람들이 이해해 주길 바라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사생활을 궁금해하기 전에 당신들 냉장고 현황이나 파악하시길 바란다. 냉동실에 화석이 되어가는 그 물체는 무엇인지 알고 있는가? 결국은 자기 앞의 생이다.


이전 09화어느 덧 독립 1주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