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독립한 지 1년이 되어간다. 시간이 너무 빨리 흘러서 지금 집에서 보낸 겨울, 봄, 여름, 가을 그리고 다시 찾아온 겨울이 믿기지 않는다. 늘어난 난방비를 보면 이 집에 처음 왔을 때 생각이 난다.
독립을 하고 1년은 잘 지냈다. 밥도 잘해 먹고 생활을 잘 꾸려나갔다. 처음엔 혼자 있는 시간이 낯설고 어색했는데 지금은 이것저것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집을 나와서 가장 편해진 건 아무래도 아빠와 멀어진 것이다. 아빠는 자신의 삶만 고달프다고 생각하고 보상받고 싶어 하는 마음이 컸다.(지금도 그렇다.) 자신으로 하여금 누군가가 불편함을 겪는데 무심하고 그 불만을 공격으로만 받아들여서 소통 또한 쉽지 않다. 그래서 그런 아빠와 멀어진 것에 안도감을 느끼면서 아빠와 살면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생각하게 된다.
아빠는 자식들이 자신에게 찾아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보고 싶다고 찾아오는 경우도 없고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라고 여긴다. 그런 아빠에게 먼저 살가워지려는 마음이 생기기가 어렵다. 사실 찾아와도 부담스러울 거 같은데 부모 자식 간의 관계에서 우위에 서야 한다는 그 마음이 답답하다. 아랫사람이 잘해야 한다는 느낌 말이다.
아빠 마음이 어떤지는 잘 모르지만 본가에 잘 가지 않는 내게 서운해하는 것 같다. 그런데 나는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인 아빠가 편하지 않다. 그래서 드물게 본가에 얼굴을 비추고 온다. 아빠는 밖에서는 호인이면서도 호구였지만 집에서는 폭력적이었다. 물리적인 폭력까지는 아니지만 매사 예민하고 화를 많이 냈다. 365일 월경하는 것처럼 신경질적이었다.(내가 월경할 때 초예민해진다.) 그래서 집을 나오는 일이 그런 불안한 환경에서 탈출하는 일이었다. 내가 살려면 그 집을 진작 나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빠와 사이가 애틋한 주변사람들을 보면 부럽다. 내게도 그런 아빠가 있었다면 인생이 달라졌을 것 같아서 아쉬움이 남는다. 그런데 내 삶이 이 정도니 어찌하겠는가. 바꿀 수 없는 건 받아들이고 사는 편이 훨씬 낫다. 나는 한때 아빠에게 사랑을 넉넉하게 받진 못했지만 아빠한테 사랑받고 싶어서 효녀가 되려고 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효녀고 뭐고 만나서 안 싸우면 다행이다. 바꿀 수 없는 성격이 답답하고 바꿀 수 없는 그 고지식함에서 한걸음 떨어지는 것이 최선이다.
자식은 날개를 펴고 부모 곁을 떠나야 한다. 그래야 부모도 자식도 자기 삶을 산다. 그동안 나의 치열했던 일 년을 따뜻한 포옹을 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