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 필요할 땐

고양이가 필요해

by staynwriter
IMG_6763.jpeg 동구

사무실 근처에는 동구라는 고양이가 있다. 나는 점심에 도시락을 먹고 동구의 집을 지나 공원으로 산책을 가곤 한다. 고등어무늬의 고양이 동구는 처음부터 동구로 불리지 않았다. 사람들은 동구를 ‘물상’ 또는 ‘레오’라고 부른다. 나는 동물애호가로 유튜브로 동물영상을 보다가 힝숙이네 채널을 보고 레오가 동구를 무척 닮았다고 느꼈다. 그리고 레오를 동구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래서 우리 사무실 사람들도 덩달아 레오를 동구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동구가 생김새와 더 어울린다고 한다.


동구를 개냥이다. 힝숙이네 동구처럼 사람을 너무 좋아해서 촬영하기 힘든 아이다. 나는 동구를 만질 때마다 3년 전에 고양이별로 떠난 타다만을 추억한다. 타다만은 스무 살을 앞두고 세상을 떠났는데 같이 사는 동안 나의 마사지를 좋아했다. 나를 졸졸졸 따라다녀서 발에 치이는 일이 잦았고 타다만에게 사과를 하는 일도 일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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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은 산 아래에 위치한 전원주택이었다. 타다만은 하루 종일 밖으로 놀러 다니다가 집에 와서 밥을 먹고 잠을 잤다. 나무를 스크래처로 이용하고 낙엽을 이불 삼아 낮잠을 자곤 했다. 타다만은 나에게 소중한 존재였다. 일을 하기 싫을 때도 타다만 간식을 사려면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타다만이 구내염으로 밥을 못 먹을 때도 죽는 줄 알고 울며불며 아침 댓바람으로 병원에 데려갔다. 가는 내내 차가 떠나가라 울었는데 같이 가 준 고양이 집사인 동생이 저렇게 우는데 어떻게 죽겠냐고 했었다. 나는 힘들 때마다 타다만을 쓰다듬으면서 위로를 받곤 했다. 손바닥에 느껴지는 체온에 응어리진 마음이 풀리는 것 같았다.


타다만을 보내주던 날 나는 더 이상을 만질 수 없다는 것에 큰 상실감을 느꼈다. 그러고 보면 타다만은 존재만으로도 나에게 큰 위안을 주었다. 내가 집에 오면 산책을 갔다가 부랴부랴 달려오고 내가 외박이라도 하면 성에 찰 때까지 잔소리를 했다. 나는 캔따개로의 삶에 충실했다. 타다만에 맛있게 먹어주면 사온 보람을 느꼈고 또 사주고 싶었다. 고양이가 좋아하는 클래식 음악을 틀어주기도 하고 계절이 바뀌면 시원한 방석과 따뜻한 방석을 사다 나르며 잘 쉬길 바랐다.


타다만을 떠나보낸 후 동물을 다시 키우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고양이 털 알레르기가 심해서 실내에서 키우는 건 힘든 일이기도 하고. 그런데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삶이 얼마나 좋은지 알기 때문에 그 빈자리는 몇 년이 지난 지금도 헛헛하다. 사람보다 더 사람을 위로해 주는 존재. 말보다 행동으로 먼저 애정을 주는 그들의 존재는 사람으로 대체될 수 없다. 내가 주는 사랑보다 더 많은 사랑을 주기 때문이기도 하다.


최근 5년 사이에 집에서 키우던 개와 고양이가 모두 하늘나라로 떠났다. 똘똘이는 심장사상충으로 힘들어하다가 떠났고, 타다만은 명이 다해서 떠났고, 복돌이는 큰 개한테 물려서 세상을 떠났다. 아이들이 떠날 때마다 죄책감을 느끼고 괴로웠다. 똘똘이를 적기에 치료해 줬더라면, 타다만을 떠나기 전에 좀 더 잘 돌봐줬더라면, 복돌이를 보호할 수 있었더라면.....돌이 킬 수 없는 시간 앞에서 무기력하고 자책을 했다.


이제는 동물을 키우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리운 마음에 유튜브로 동물 영상을 보고 지나가는 개와 고양이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혹여나 만질 기회가 있다면 놓치치 않고 쓰다듬어주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 집사와 함께 행복하게 산책하는 모습을 보면 복돌이가 생각나서 눈물이 날때도 있었다. 행복했던 산책길에서 운명을 달리한 복돌이를 생각하면 마음이 미어진다. 위로받고 싶을 때는 동물친구들이 그리운 한없이 약해진 나를 발견한다. 그럴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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