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도 리트리버.
어렸을 적 나는 댕댕이였다. 그것도 리트리버. 사교성이 좋아서 친구들과 대체로 잘 지냈고 엄마의 유전력 때문인지 사람에 대한 편견이 크게 없었다. 먼저 엄마의 성향을 설명하자면 젊은 시절부터 레즈비언 친구의 성적 취향을 존중했다. 심지어 지금도 레즈비언 친구분과도 잘 지내고 있다. 포용력이 넓고 다양한 취향을 가진 지인들을 인정해 주는 분이시다.
내가 그런 엄마를 닮았다고 생각을 한건 며칠 전에 우연히 안나라는 친구를 만나면서였다. 안나는 고등학교 1학년 말에 전학을 온 친구였는데 키가 크고 늘씬하고 조숙해서 언니 같았다. 그 친구에 대한 기억은 고3 때 많이 남아있는데 나는 안나의 긴 머리를 인형놀이하듯 빗고 세 갈래로 따면서 농담 따먹기 했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가지지 못한 긴 머리에 대한 로망을 그 친구를 통해서 채웠던 것 같다. 안나는 늑대 같았다. 수업 시간엔 밤새 뭐가 그렇게 피곤한지 잠을 자고 친구들과 애써 어울리지 않았다. 하교할 때도 혼자서 책이 한 권도 들어가지 않을 것 같은 가방을 메고 유유히 사라지곤 했다. 내가 기억하는 그녀의 기억은 그 정도였다. 나는 크가 크고 여성복을 즐겨 입는 그녀가 멋있다고 줄곧 생각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안나와 안부를 묻다가 그녀의 거친 과거를 알게 되었다. 안나는 자신을 고까워하던 무리의 여자들이 시비를 걸어서 영어시간 도중에 의자로 내려친 얘기를 해줬다. 그날도 여느 날처럼 자고 있었다는데 누군가가 “안나 그 씨발년이-”라는 말을 했단다. 그래서 일어나서 그쪽을 쳐다봤더니 눈을 마주친 선미라는 애가 “뭘 봐 씨발년아”라고 무음 처리된 큰 입모양으로 말했단다. 그 순간 안 나는 빈 의자를 들고 선미한테 내리쳤다고 한다. 교실은 쑥대밭이 되고 구경 오고 난리였다는데 나는 그 재밌는 사건에 대한 기억이 없다. 친구에게 그 사건에 대한 기억을 물으니 안나가 재미라는 친구와 화장실에서 맞짱을 떴는데 시비 걸던 재미가 일방적으로 맞는 것으로 끝나는 얘기를 듣고 친구들이 그녀를 기피했던 모습이들이 떠올랐다. 그 재밌는 싸움 얘기가 내게는 들리지 않았던 건지 의문이지만 그녀 주변에 친구들이 없던 상황이 이해가 되었다. 아버지가 학교로 찾아와서 안나를 각목으로 때렸던 사건이 있었는데 억울하게 사건에 휘말렸는데도 해명 없이 그냥 넘어갔어 갔다는 얘기를 듣고 정말 늑대과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애들이 무서워하고 꺼려 하던 그녀를 편견 없이 그냥 18살 소녀로 대하고 있었다.
나는 20년이 지나도 안나가 멋있었다. 애가 둘이라는데 내가 처음 봤던 그 몸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고 앞에서 싸울지언정 뒤끝이 없고 쿨한 성격이 맘에 들었다. 20대 초반에 결혼을 하고 아이 둘을 낳고 키우다가 사별을 했는데 꿋꿋이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재혼을 했다는데 전 남편의 자녀 둘을 키울 정도로 그녀의 매력에 빠진 어떤 남자와 결혼을 했겠다 싶다. 지금은 헬스장을 운영하면서 다음 사업을 위해 일을 배우고 있다고 하는데 적극적으로 사는 모습이 멋있어 보였다. 그리고 사별 후에도 애인은 계속 있었던 것 같다. 그야말로 능력자의 삶.
나는 오랜만에 만난 안나에게 잘 지냈냐며 고목나무에 매달린 매미처럼 안나의 팔짱을 끼면서 안부를 물었다. 18살 때 안나의 머리를 세 갈래로 따고 놀던 그때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근무 시간에 밖에서 얘기하다가 너무 웃겨서 카페로 갈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