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기억하는 우울

by staynwriter

연말부터 연초까지 회사 일로 마음고생하며 고질병인 위장병이 도졌다. 웬만하면 굶고 쉬는데 그게 도움이 안 될 것 같아서 병원을 찾았다. 갑작스럽게 근무지를 이동하게 되었는데 그 과정이 소통 없이 진행되어서 모두 당혹스러웠다. 결국 그만두지 않으면 새로운 근무지로 가야 하지만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바꿀 수 없는 것을 그대로 두고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면서 살아겠다고 생각했는데 갑작스러운 발령은 바꿀 수 없었고 새로운 환경에서 잘 적응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어젯밤 침대에 눕자마자 정신없이 잠에 빠져들었다. 새로운 사람들에게 적응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다. 며칠 겪지 않았는데도 이상한 사람들과 어떻게 거리를 둬야 하나 고민이 많았다. 그간 맘고생을 증명이라도 하듯 익숙한 악몽을 꿨다.


나는 다시 옛날 집으로 돌아갔다. 아빠가 어렸을 때부터 살던 수명이 다한 집. 집터는 넓었지만, 온갖 잡동사니가 집안 곳곳을 채우고 있었고 아빠는 불운했던 과거를 달래기 위해 저장강박증이 있었다. 무기력한 삶은 먼지 쌓여가는 물건과 시시때때로 터져 나오는 짜증과 불만으로 표출되었다. 아빠는 쌓여가는 물건과 구멍 난 집에서 쥐는 기승을 부렸고 쥐가 무서워서 난리를 치는 가족들에게 그까짓 쥐새끼가 무섭냐고 다그쳤다. 나는 그런 집에서 탈출하고 싶었지만 돈이 없다는 이유로 나오지 못했다. 그러다가 운이 좋게 그 집을 떠나왔는데 이사를 하면서 수많은 짐을 버리고 왔지만 그 집에서 겪은 악몽들은 나를 계속 괴롭혔다. 꿈에는 그 집에서 무서워하던 쥐가 나왔고 그 쥐가 나의 이부자리에 숨어들었다. 나는 잠결에 끙끙대며 쥐를 쫓아내려고 몸부림을 치다가 깼다. 떠지지 않는 눈을 미세하게 뜨며 꿈이라고 괜찮다고 다독이며 거친 숨을 내뱉었다. 내가 데리고 들어오지 않은 이상 아파트 11층에 쥐는 들어올 수 없다고 나를 달랬다. 그리곤 다시 지쳐서 잠에 들었다.

내가 본가가 이사를 했음에도 부모님 집에 잘 가지 않는 이유는 이따금 떠오르는 불행했던 과거들을 떠올리게 되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물건을 버리면서 고생했던 기억으로 큰 물건들을 모으진 않지만 여전히 자잘한 물건들을 사는 아빠의 방은 여전히 나에게 답답하다. 그래서 이제는 웬만해서는 방에 들어가지도 않고 거실에만 머물다가 내 집으로 돌아온다. 그게 서로를 위한 일이기도 하고 평화를 지킬 수 있다.


꿈에 옛날 집에 나오면 우울해진다. 내가 느꼈던 무기력함과 심란함이 나를 다시 지배한다. 체득된 심란함이라고 해야 할까. 세포 하나하나가 기억하는 그 기분을 다시 느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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