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사로 일하면서 당황했던 순간들이 있다. 바로 상담사로 베풀 수밖에 없는 친절을 오해하는 사람들이다. 기관에서 요구하는 까다로운 자기소개서를 도와달라는 분들이 많다. 구직자 A 씨는 60살의 남성분이었는데 공사에 지원한 이력서 컨설팅을 요청하셨다. 나는 평소처럼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일할 때 어떤 가지관으로 업무에 임하시는지 물었다. 열심히 도와드렸는데 최종 면접에서 예비 1순위로 결과가 아쉬웠다. 면접에 떨어진 이후에 계속 일자리를 문의하는 전화가 왔는데 딱히 안내해 드릴 일자리 정보가 없어서 연락이 뜸해졌다.
그런데 어느 날 퇴근을 앞둔 다섯 시쯤에 A에게 전화가 왔다. 나는 요즘 나오는 자리가 없어서 전화를 못 드렸다고 했는데 그의 용건은 그와는 상관이 없었다. 대뜸 나에게 퇴근하고 뭐 하냐고 물어봤다. 나는 평소에도 고맙다고 밥 사준다고 하시는 분들이 종종 있어서 당연히 거절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나에게 분위기 좋은 카페를 가자는 제안을 하는 게 아닌가! 나는 처음 겪는 일에 당황해서 ‘네?’ ‘네?’를 반복했다. 그러다가 정신을 차리고 사모님이랑 가시면 되시지 왜 저랑 가자고 하시냐고 대놓고 물었다. 그는 수화기 너머로 이혼해서 와이프가 없다면서 멋쩍게 웃었다. 나는 그러면 딸이랑 가시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딸이 집에 잘 안 온다며 같이 갈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나는 그렇다고 저랑 가자고 하시는데 맞냐고 역정을 냈다. 통화를 하면서 점점 짜증과 화가 치밀어 올라서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그는 당황했는지 퇴근 잘하라고 하면서 전화를 끊었다. 퇴근하고 집에 가서 엄마에게 회사에서 있었던 일들을 말했다. 엄마는 평소에 거친 말을 잘 안 하는 분이신데 온갖 육두문자를 나열하며 욕을 하기 시작했다. 나도 이런 경험은 또 처음이라 기분이 계속 좋지 않았다.
( 다행히도 그 분은 그 뒤로 나에게 연락을 안하셨다. )
이런 경험들은 내가 점점 사무적으로 일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모든 분들이 그런 건 아니지만 호의를 호감의 표시로 생각하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길 바라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무적으로 일하게 되니까 감정을 덜 써도 되어서 일하기 훨씬 편해졌다. 사무적으로 그 사람이 필요한 부분을 해결해 준다고 생각하니 지금까지 내가 생각해 온 ‘좋은 상담사’는 나를 갉아먹고 있던 게 아닌가 싶다.
일하는 데는 요령이 필요한 것 같다. 에너지를 너무 과하지 쓰지 않고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 나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상담사로 일하면서 감정노동을 안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힘을 빼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기로 했다. 콜센터에서 오랫동안 일했던 동료 선생님이 나에게 사람들은 대화 내용보다는 목소리 톤에 더 민감하다는 얘기를 해줬다. 그 사람이 원하는 대답을 할 수 없더라도 다정하게 말하면 수긍한다고 하면서 목소리 톤이나 말투가 중요하다고 말이다. 나도 마음먹기만 친절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던 게 아닌가 싶었다.
이제는 연륜이 쌓여서 상황을 봐가면서 융통성 있게 일한다. 경력이 쌓일수록 배우는 건 힘 빼는 방법들이다. 바꿀 수 없는 것보다는 바꿀 수 있는 것에 집중하며 효율적으로 일하다가 집에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