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마을 일기 2부. 익숙한 세상과 안녕
5. 운동화
“옷 좀 사 입어.”
친구가 말한다.
나는 그 말에 그래야 할까 싶은 생각을 한다. 친구 눈에는 내 복장이 구질구질해 보이는 모양이다. 그럴 만도 한 게 나는 몇 년째 옷을 사 입지 않았다. 옷장에는 못해도 5년은 된 옷들로 가득하다. 그마저도 너절한 것들을 버리고 난 후라 몇 장 없다. 사계절 옷을 다 모아봐야 서랍장 두 개를 겨우 채울 뿐이다.
나는 오랜만에 옷을 사기로 한다. 옷은 늘 온라인으로만 구매해 왔던지라 단정하고 깔끔한 디자인으로 몇 장 골라 담는다. 20대 때와 비교해 몸무게가 크게 변하지 않았으므로 나는 당연히 늘 입던 사이즈를 고른다.
며칠 뒤 도착한 택배 상자에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조금 더 작은 사이즈의 옷이 담겨있다. 요즘 옷들은 왜 이렇게 작게 나오는 걸까? 어쩌면 내 몸이 예전과 조금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입어본 옷은 허리가 조금 작지만 들어가긴 한다. 그렇다고 썩 편하지는 않다. 차라리 한 사이즈 크게 살 걸 그랬다.
금전적 여유가 없다는 생각 때문에 나는 생각만으로 사야 할 걸 떠올린다.
곧 바디워시가 떨어질 텐데.
곧 토너를 사야 할 것 같은데.
속옷도 좀 쟁여놓는 게 좋겠는데.
개중에는 아주 필요한 건 아니지만 있으면 좋은 것들도 있다.
봄에 잘 어울리는 복숭아색 틴트를 사고 싶은데.
겨울 코트도 있으면 좋겠는데.
굽 낮은 운동화도 한 켤레 사고 싶은데.
가끔은 생각만 하던 걸 실행에 옮긴다. 수중에 돈은 없고 멀쩡하게는 보이고 싶어서 이것저것 사보지만 사고 보면 정작 괜히 샀다는 생각뿐이다. 여리여리한 느낌을 내고 싶어 산 틴트는 생각보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조금 더 또렷한 인상을 주고 싶어서 산 마스카라는 몇 번 쓰고 손도 대지 않는다. 모델이 입은 걸 보고 예뻐서 산 여름 니트는 몇 번 입고 나자 보풀이 나서 돈값을 못 한다.
사고 싶은 건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데 이 모든 게 아직은 내게 다 사치다. 그럴 형편이 못 될 때 소비는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오히려 허무하게 만든다.
내겐 신은 지 10년 된 운동화가 있었다. 낡고 닳아 예쁘지 않은 그 운동화를 나는 버리지 않고 신었다. 오래됐지만 신발의 기능을 충실히 해줘서 버릴 이유가 없었다. 그런 운동화를 누군가는 불편해했다.
“거지 같아. 그 운동화 좀 버려.”
나는 순간 운동화가 거지 같단 말인지 낡은 운동화를 신고 다니는 내가 거지 같단 말인지 헤아려본다. 어느 쪽이든 기분이 나쁜 건 매 한 가지다. 그런데도 나는 이 순간에 기분 나쁘기가 싫다.
“왜요? 이거 편해요.”
“그거 거지 같아. 언제 산 거야? 이거 오래된 거지?”
나는 그렇다고 말한다. 이에 나는 거지 같단 말은 너무 심한 거 아니냐고 따져 묻는다. 되도록 웃는 얼굴로 그 말을 받는다. 상대는 내 말에 ‘아차’한 것 같지만 한번 뱉은 말은 쉽게 주워 담기 힘든 법이다. 기분은 나쁘지만 나는 상대를 미워하지 않기로 한다. 상황이 이러니 상대방 눈에는 그렇게 보일 법도 하겠거니 이해한다.
나는 그에게서 과거의 나를 떠올린다. 나도 누군가에게 저런 말을 서슴지 않았다. 그때의 나를 반성하며 상황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그렇게 불편하다고 하니 대신 운동화 두 켤레를 사달라고 말한다. 그럼 낡은 것을 버리겠다고 약속한다. 나는 그렇게 새 운동화 두 켤레를 얻는다. 착화감은 예전 걸 못 따라가지만 겉은 훨씬 멀쩡해 보이는 운동화 두 켤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