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풍기

느린 마을 일기 2부. 익숙한 세상과 안녕

by 이나

6. 선풍기


엄마는 죽자고 에어컨을 안 켠다. 그놈의 전기세는 가족들이 더위에 지쳐 쓰러져도 전기세 타령을 할까 싶다. 이사를 오면서 금전적 여유가 생겼는데도 엄마는 여전히 아끼고 아낀다. 그래서 여름만 되면 푹푹 찌는 게 죽을 맛이다.

주택은 아파트와 전기 공급이 달라서 전기세가 상대적으로 비싸다. 그래서 엄마는 전기세를 무서워한다. 예전에는 귀신이나 외계인 얘기만 들어도 밤잠 설치던 나는 이제 그런 것보다 현실이 더 무섭다. 매해 점점 더워지는 여름이 무섭다.


“그러니까 인버터로 바꾸자니까!”


나는 축축하게 젖은 티셔츠를 펄럭이며 말한다.


“얘는! 아직 잘 되는 걸 왜 버려?”


내 말에 엄마는 발끈하며 반박한다.


“잘 되면 뭐 해? 틀지를 않는데.”

“왜 안 틀어? 너무 더우면 틀잖아!”

“3~4시간 그것도 28도로 틀면서 그게 트는 거야?”

“그럼! 그렇게만 해도 얼마나 시원한데!”

“뭐가 시원해! 시원해 지려하면 끄면서!”

“엄마는 에어컨 바람 쐬면 뼈가 시려서 별로야.”


미친다. 진짜 사람 미치게 한다. 28도만 돼도 시원하다는 엄마는 실은 나보다 더 더위를 많이 탄다. 그걸 아는 나를 상대로 대놓고 뻥을 친다. 전기세가 무서워서 그러는 거다. 누가 보면 집이 가난해서 그런 줄 알 테지만 아니다. 여윳돈이 얼마나 있는지 다 안다. 그래서 나는 말한다.


“죽어서 싸 짊어지고 갈 것도 아닌데 뭘 그렇게 아껴?”

“그나마도 아껴서 너희들 키웠지 안 그랬으면 이렇게 큰 집에 이사도 못 왔어!”


여름만 되면 가족들은 짜증이 많아진다. 몸도 끈끈한데 선풍기를 틀면 더운 바람만 푹푹 나오니 짜증이 가라앉질 않는다. 잠을 잘 때도 열기가 식지 않아 내 몸은 샤워하는 잠깐을 빼놓고 내도록 불덩이 같다.


“해마다 더 더워지는데 언제까지 선풍기로 버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에어컨을 트니까 해마다 더 더워지지!”


엄마는 환경을 생각해서 에어컨을 더 안 트는 거라고 이번엔 환경 핑계를 댄다. 나는 그 말이 거짓말인 줄 안다. 엄마는 환경 생각을 하긴 한다. 하지만 그 정도로 생각하는 건 아니다. 수세미 열매를 말린 진짜 수세미를 쓰면서 플라스틱 수세미를 같이 쓰고 환경을 생각한 수제 주방 비누를 쓰면서 주방세제를 함께 쓰는 식으로 환경을 생각한다. 그 외에도 머리가 오후만 되면 너무 가라앉는다고 스프레이를 사용하고 틈만 나면 택배를 시키는 걸 보면 에어컨 안 트는 이유가 절대 환경 때문일 리 없다.

아빠는 내내 부채를 펄럭이며 옥상을 오간다. 아빠가 덥다고 하면 엄마는 아빠가 술을 마시니까 그렇다고 한다. 그런데 술 안 마시는 나도 더운 건 마찬가지다.

예전 집에서는 창틀에 선풍기를 올려놓고 지냈다. 창문 맞은편으로 보이는 다른 집 건물이 해를 막아줘서 그랬는지 방문을 닫고 선풍기를 창틀에 올려 돌리면 에어컨을 튼 것처럼 으슬으슬 추워지곤 했다. 그때를 떠올려 이 집에서 그렇게 했다간 더운 바람만 방안으로 불러들이는 격이 된다. 아빠 말로는 앞집 옥상이 판넬로 돼 있어서 그렇다는데 그것 때문인지 여름만 되면 내 방은 찜통이 된다.

방은 총 3개, 아빠는 거실에 지낸다. 그중에 내 방이 가장 덥다. 가만히 있어도 등에 땀이 줄줄 흐른다. 기온이 32도를 넘으면 선풍기 바람도 소용없다. 특히 낮 12시부터 밤 9시까지는 죽는다고 보면 된다. 해가 진다고 나아지는 것도 아니다. 해가 지면 형광등을 켜야 하는데 형광등 열이 또 어마어마하다. 밤공기가 낮과 비교해 조금 나아져도 형광등을 켜면 방은 다시 달아오른다.

잘 때 바람이라도 불어오면 다행이다. 그런데 연일 열대야가 지속되면 숨 쉬는 게 곤란할 정도로 덥다. 그럴 땐 잘 때 배를 까고 자야 겨우 잠들 수 있다. 주요장기가 몰린 곳을 시원하게 해주면 그나마 낫다. 체온이 비교적 빨리 식는다.

우리 집에 살려면 스스로 살아남는 법을 배워야 한다.

매해 여름이 길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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