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마을 일기 2부. 익숙한 세상과 안녕

by 이나

7. 개


앞집 아줌마와 1층 사람들이 싸우기 시작한 건 개 때문이다. 1층에 사는 개가 주인만 없으면 짖어대는 탓에 앞집 사람들의 불만은 극에 달한다. 앞집 아줌마는 집주인인 엄마에게 전활 걸어 개를 좀 조용히 시키라고 요청한다. 개를 가둬둔 방이 앞집 부엌 창문을 마주 보고 있어 그 방에서 짖으면 온 집안을 시끄럽게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 엄마는 1층 이모에게 전화를 건다. 강아지가 너무 짖는다며 조용히 좀 시켜달라고 하면 이모는 외출했다가도 달려와 강아지를 조용히 시킨다.

1층에 사는 이모는 사실 우리와 아는 사이다. 엄마와 함께 일한 동료인데 나랑도 제법 알고 지낸 터라 우리는 앞집 아줌마와도 아랫집 사람들과도 잘 지낼 필요가 있다. 그걸 잘 모르는 앞집에서는 밑에 집 좀 내보내라고 하지만 아랫집 사정을 대충 알면서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그리고 잘 몰라서 그렇지 아랫집 이모는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니다.

이모는 조카가 우리 집에 머무는 몇 년을 시끄럽게 뛰어다니고 쿵쿵 대도 크게 뭐라고 한 적이 별로 없다. 우리가 “너무 시끄럽죠? 죄송해요.” 하면 “앤데 우리가 이해해야지.” 하는 사람이다. 또 무거운 택배가 오면 달랑 들어 옮겨주기도 하고 시골에 갔다가 먹을 걸 가져오면 나눠주기도 한다. 안 맞는 점은 있어도 좋은 사람인 건 확실하다.

우리가 이사 올 때 아랫집 이모는 딸 둘과 강아지 한 마리, 검은 고양이 한 마리를 데리고 들어왔다. 그러다가 나와의 영역 싸움에서 밀린 고양이가 먼저 집을 떠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큰딸도 독립해 나가면서 집에는 이모와 작은딸, 강아지만 남게 되었다.

가만 생각해보면 하나둘씩 집을 나가는 가족들 모습에 강아지가 불안해진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원래부터 분리불안이 있었다는데 고양이가 집을 나간 이후로 점점 심해진 것 같다.

강아지는 주인이 집을 나가자마자 짖기 시작한다. 한번 시작하면 가족 중 한 명이 돌아올 때까지 쉬지 않고 울어댄다.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한 나는 우연히 tv에서 본 강형욱 훈련사를 생각해낸다. 나는 그거라도 참고해 강아지를 교육해보는 건 어떻겠냐고 제안한다. 1층 사람들도 흔쾌히 그러겠노라 답한다. 하지만 아마도 전문가가 아니라서 그랬는지 별 효과가 없다.


“개를 좀 조용히 시키라니까!!”


급기야 앞집 아줌마가 폭발했나 보다.

느린 마을은 노인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편이라 큰소리 나올 일이 별로 없다. 그래서 아줌마의 목소리는 더 크고 또렷하게 마을 전체를 울린다. 아줌마의 노여움이 극에 달할 때 그저 ‘미안하다’ ‘조용히 시키겠다’ 했으면 좋을 걸 1층에 살던 작은딸이 같이 달라붙어 싸우는 바람에 일이 커진다. 감정이 상할 대로 상한 아줌마의 말이 거칠어지자 1층 작은딸도 덩달아 감정이 격해진다.

나는 얼른 달려 내려가 싸움을 말린다. 일단 앞집 아주머니를 진정시킨 다음에 돌려보내고 작은딸과 이야기를 나눈다. 이해하긴 조금 힘들지만 1층 사람들도 계속되는 컴플레인에 스트레스를 받은 모양이다. 나라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뭐든 했을 테지만 세상 모든 사람이 다 나 같지 않은 법이다. 함께 살려면 나와 다름을 인정하는 수밖에 없다.


“이해해요. 방금 아줌마가 말 좀 심하게 한 거. 근데 강아지 작은 방에 두면 앞집 많이 시끄럽긴 할 거거든요. 사람 없으면 없는 내내 짖어서. 잠깐 나가도 그래요. 그니까 작은 방에 둘 거면 창문을 닫고 나가주거나 아니면 강아지를 다른 방에 두는 게 어때요? 그러면 소리가 그렇게 크게 나지는 않을 것 같은데. 당분간은 그렇게 만이라도 일단 해줄 수 있어요?”


작은딸은 그러겠다고 한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달라지는 건 없다. 강아지는 여전히 작은 방에 갇혀 울부짖고 창문은 활짝 열려있다. 앞집 눈치가 보여 내가 직접 내려가 창문을 닫는다. 싫어할 줄은 알지만, 앞집에 소음을 줄이는 게 먼저란 생각에 일단 그렇게 한다.

결국 1층 이모는 강아지 한 마리를 더 데리고 온다. 친구가 생긴 강아지는 더 짖어대지 않는다.

조용한 마을이라고 해서 모두 영화나 드라마에서처럼 배려 넘치고 친절한 사람들만 사는 건 아니다. 보통은 나처럼 평범하다. 적당히 못됐고 적당히 이기적이고 적당히 배려하고 적당히 친절하다.

그냥 그렇게 이해하고 살면 된다.

우리 집에서 조카가 뛰고 굴린 민폐나 1층 이모 집에 강아지가 짖은 민폐나 생각해보면 다 똑같다. 사람을 미워하지 않는 법은 간단하다. 모두 나와 다르지 않은 평범한 사람임을 알면 된다.


사정이 있겠지. 사연이 있겠지.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겠지.


이해 안 되는 일에는 다 저마다의 사정과 사연이 있다.

내가 그렇듯이 남들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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