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

느린 마을 일기 2부. 익숙한 세상과 안녕

by 이나

8. 위로


엄마에게 하루아침에 싸가지 없단 소릴 듣는 건 아주 쉽다.

엄마는 요 며칠 무릎이 다시 아프다고 했다. 사실 엄마의 무릎은 몇 년 전부터 말썽이다. 무릎에 물이 차오를 때면 걷는 것조차 힘들어하곤 했었는데 한동안 괜찮다 싶던 무릎이 최근에 또 안 좋아졌나 보다.


“병원엘 가.”

“안 그래도 그러려고.”


병원에 다녀온 엄마는 낯선 약 한 통을 꺼내며 말한다.


“의사가 그러는데 나이가 들어서 혈관이 좁아져서 그렇다네. 그래서 약을 먹어야 한대.”


나는 혈관이 좁아진 것과 무릎의 통증이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생각해본다. 그다지 없는 게 아닌가 싶다. 무릎의 통증은 대개 근육이 약하거나 연골이 닳아서 생기는 게 아닌가?

그래서 나는 “운동을 해!”하고 말한다.


“운동하면 좋아져. 허벅지랑 엉덩이 운동해.”


이렇게 말하며 나는 머릿속으로 브릿지 자세를 떠올린다. 무릎에 무리가 없고 햄스트링과 엉덩이를 고루 자극할 수 있어 꾸준히 하면 분명 무릎 통증을 완화 시켜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말 끝나고 본 엄마의 표정이 왠지 서늘하다.


왜지……? 뭘까……? 내가 뭘 잘못했지?


“말 싸가지 없게 하는 거 봐라! 내가 젊은 너랑 같아? 엄마가 나이가 들어서 그렇다는데 말을 그렇게 해?”


버럭 성질을 내는 엄마를 나는 한동안 벙찐 얼굴로 바라본다.

아마도 엄마는 내게 “괜찮아? 어떡해. 좀 쉬어.” 같은 말을 기대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내게 그런 건 소위 ‘멕이는’ 말일 뿐이다. 그런 말뿐인 위로는 ‘무릎이 아픈’ 것을 해결해주지도 ‘무릎이 아파서 속상한 마음’도 위로해주지 못한다. 그런데 어째서 그런 걸 기대하는지 모르겠다.

‘나이가 들어서’라고 하면 사실 답이 없어 보인다. 노화를 인간이 무슨 수로 막겠는가? 답이 없다는 것은 곧 희망이 없다는 뜻이 된다. 내겐 희망이 있다는 게 곧 위로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든 방법이 있다는 건 희망이니까 위로가 된다.

내겐 희망적인 말이 엄마에겐 아니었나보다. 엄마는 내 말을 그저 ‘운동을 안 하니 무릎이 아프지’ 정도로 해석한 게 틀림없다.

나이뿐만이 아니다. 사람들은 온갖 것들을 놓고 자신을 스스로 가둔다. 그런데도 그런 한계를 만든 게 자기 자신인 줄 모른다. 모두 외부 탓으로 돌린다. 이것 때문에 안 돼. 저것 때문에 안 돼. 여자라서 안 돼. 남자라서 안 돼. 나이가 많아서 안 돼. 적어서 안 돼. 가난해서 안 돼. 공부를 못 해서 안 돼. 시간이 없어서 안 돼. 실력이 부족해서 안 돼. 준비가 안 돼서 안 돼. 핑계를 대려면 얼마든지 댈 수 있다. 물론 그게 일부 사실일 수도 있다. 그런데 정말 자기가 원하는 게 있다면 핑계를 대고 말 뿐인 위로를 기대하기보다는 방법을 찾아 희망이 있는 길로 스스로 나아가는 게 낫지 않나? 정말 그걸 원한다면 말이다.

방법이 있는데도 말뿐인 위로만 원한다?

그건 그냥 말뿐인 위로가 필요할 뿐 다른 걸 원하는 게 아닌 거다.

엄마가 진짜로 원한 건 무릎의 통증을 없애는 게 아니라 “괜찮아?”라는 말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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