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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우니 Nov 13. 2023

동양고전에 대한 해석

나는 지방대학 인문대 중어중문학과를 나왔다. 그러나 중국어를 잘하지도 못하고 중국문학에 대한 이해도 깊지 않은 탓에 전공을 살려 밥벌이를 할 수는 없었고 결국 선택한 게 공무원이었다. 나는 조경, 산림공무원이었기에 어린이공원, 녹지대 공사 같은 조경 관련 각 종 공사를 많이 해야 했는데 그 공사에는 항상 전기공사도 같이 하는 경우가 많았다. 전기공사의 대부분은 공원 내 가로등 설치공사를 하는 것이 주된 공사였다. 한 번은 은평구 어느 버스회차 지점에 어린이공원 조성공사를 하게 되었는데 거기에 분수를 설치하는 공정도 있었다. 구덩이를 파고 물을 담을 수 있는 대형수조를 만들고 상판에 물을 쏘아 올리는 노즐구멍을 만들었다. 주변 조경공사는 그렇게 큰 일은 아니었다. 문제는 분수를 설치하는 게 훨씬 어려운 공사였다. 수조 내벽이 물 수 십 톤의 수압을 견딜 수 있을지, 상판을 떠받치고 있는 기둥의 내구력이 적당한지를 검토해야 했다. 그렇게 분수를 설치하고 마지막 전기를 인입시켜 분수를 가동하니 컴퓨터에 내장된 프로그램대로 분수가 춤을 추는 게 정말 장관이었다. 전기로 어떻게 저런 걸 연출할 수 있을까 하는 놀라움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마 그때 전기공부를 해볼까 하는 마음을 먹었던 거 같다. 인문대를 나왔지만 수학, 과학을 멀리하지 않은 건 이런 놀라움 때문이었다. 한참 뒤의 일이지만 전기산업기사 시험에 합격도 했다. 공무원 생활 중 짬짬이 공부를 했지만 매번 떨어지기를 반복해서 결국 퇴직하고 본격적으로 시험공부에 매달려서야 겨우 시험에 합격했다. 10년이 더 걸린 것 같다. 좋아하는 거와 잘하는 거는 다르다는 것을 실감케 해주는 시험이었다. 나처럼 수학, 과학을 좋아하지만 잘하지는 못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이 있을 거라 생각된다.


중국어도 못하고 중국문학도 모르고 수학, 과학도 어려워하는 인간이었지만, 그나마 할 수 있는 게 없지는 않은 듯하다. 인문학과 과학 두 영역을 다(?) 공부해 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양쪽을 통역 없이 소통할 수 있을 듯했다. 노자도덕경이라는 동양고전이 한 때 신과학운동이라는 사회적 이슈의 핵심 아이콘으로 부각된 적이 있었다. 1980년대였던 걸로 기억한다.  당시 동양고전에서 현대과학에 필적하는 과학사상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로서 중국의 도가사상과 인도의 힌두교와 불교철학을 내세우는 사상풍조가 있었다. 그때 잠깐 대중의 관심을 끌었지만 그 뒤로 큰 반향이 없어 그냥 잠깐의 이슈로 끝났던 것 같다. 나는 고등학교, 대학교 시절에 관련서적을 사서 이해를 하고 봤는지는 모르지만 밑줄까지 쳐가면서 봤던 기억이 있다. 신과학운동이라는 것이 사실 과학자들이 아닌 인문학자들이 주도한 것이었다. 과학을 잘 모르는 인문학자들이 우리에게도 과학이 있었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과학이 풀지 못하는 많은 문제들을 동양고전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려 했던 것일까. 불교철학에 상당한 과학적 통찰이 담겨 있는 듯 보이지만 정말 그렇게 해석할 여지가 있는지는 분명치 않다. 또 동양고전에 과학적 요소가 있다 쳐도 지금 우리가 하는 과학과는 거리가 멀다는 건 자명한 듯하다. 억지로 끼워 맞춰서는 망가진 자존심을 회복할 수 없다. 오히려 상심만 커질 뿐. 


다만 동양고전의 많은 책들이 한자라는 활자의 특성상 해석에 관한 한 만족스럽지 않다는 사실이다. 춘추전국시대의 저작들이 수많은 주석서가 존재할 정도로 해석상의 이견이 분분하다. 특히 신과학운동의 핵심 텍스트로 주목받는 도덕경은 지금까지 수천 년이 지났지만 명쾌한 해석을 내놓고 있는 사람이 없는 듯하다. 가장 큰 이유가 이 책에 대한 접근이 훈고학이라는 틀에서 해왔기 때문이다. 훈고학은 글자 한 자 한 자를 뜯어서 글자 모양과 뜻, 심지어 갑골문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당시 모양과 의미를 가져와서 분석하는 학문이다. 이런 난해한 고전을 해석하려면 훈고학도 물론 필요하다. 하지만 알 듯 모를 듯 손에 잡히지 않는 의미를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이런 책을 연구하는 사람의 인문학적 그리고 과학적 소양이 훨씬 도움이 될 때가 많을거라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 동양사상에는 인식론이 없다고들 한다. 그러나 내 생각은 좀 다르다. 동양의 고전에 과학적 지식과 요소가 있는지를 애써 찾기보다는 지금의 과학적 방법과 이론을 토대로 동양의 위대한 고전을 다시 바라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노자도덕경은 정치철학서이자 인식론이라는 것이다. 도덕경이 정치철학서라는 사실에는 모두 공감하겠지만 이게 왜 인식론이냐 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내가 내린 결론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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