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육과 파시즘, 그리고 창의성
김누리 교수의 주장에서 생각해본 것들
최근 매불쇼에서 김누리 교수가 12·3 내란 사태를 언급하며 꽤 흥미로운 주장을 펼쳤다. 서울대 법대 출신들이 파시스트적 태도를 보이는 이유가 한국의 주입식 교육과 우열을 가리는 경쟁 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거다.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교육이 사람의 사고방식과 태도를 근본적으로 형성한다는 관점에서 나온 말이다. 이 이야기는 교육 시스템에 대한 오랜 불만과 맞물리면서 꽤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과연 우리의 교육이 그런 극단적인 태도를 낳는 씨앗이 될 수 있을까? 아니면 더 큰 그림 속에서 교육은 그저 일부일 뿐일까?
김 교수의 주장: 경쟁과 주입식이 문제인가?
김누리 교수는 한국 교육의 핵심 문제를 경쟁과 주입식 구조에서 찾는다. 그는 한국 교육이 학생들을 성적으로 줄 세우는 데 집중하고, 그 과정에서 엘리트 의식이나 권위주의적 성향을 자연스럽게 내면화시킨다고 본다. 특히 서울대 법대 같은 상징적이고 권위 있는 집단에서 이런 경향이 두드러진다고 지적한다. 경쟁이 치열한 환경에서 학생들은 서로를 이겨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주입식 교육은 정답을 찾는 데만 몰두하게 만든다. 이런 시스템이 사람을 권위적이고 지배적인 방향으로 몰아갈 수 있다는 게 그의 논리다.
12·3 내란 사태에 연루된 인물들을 예로 들며, 김 교수는 이런 교육의 부작용이 실제로 사회적 문제로 드러난다고 주장한다. 입시 전쟁을 뚫고 엘리트 집단에 들어간 이들이 권력을 쥐었을 때, 그들이 배운 경쟁과 우월감이 파시즘적 태도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거다. 이 주장은 꽤 설득력 있게 들리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너무 단선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교육이 정말 그렇게까지 강력한 영향을 미칠까?
맞는 말일까? 반만 맞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김 교수의 주장에 공감가는 부분이 분명 있다. 한국의 교육 시스템이 경쟁에 지나치게 치중한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수능 점수 몇 점 차이로 인생이 갈린다고 느낄 정도로, 학생들은 끊임없는 스트레스와 비교 속에서 자란다. 이런 환경이 우월감이나 열등감을 키우고, 나아가 타인을 내려다보는 태도를 낳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특히 서울대 법대처럼 사회적 상징성이 큰 집단에서는 '내가 남들보다 낫다'는 엘리트 의식이 더 강하게 나타날 수 있다. 경쟁에서 살아남은 이들이 권력을 잡았을 때, 그 태도가 권위주의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점은 납득이 간다.
하지만 파시즘이라는 극단적인 현상을 교육 탓으로만 돌리기엔 한계가 있어 보인다. 파시즘은 단순히 개인의 태도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역사적·정치적·경제적 맥락이 얽힌 복잡한 결과물이다. 예를 들어, 12·3 내란 사태에 연루된 인물들의 행동은 교육뿐 아니라 당시의 정치적 분위기, 권력 구조, 개인적 야망 같은 요소들과도 깊이 연결돼 있다. 서울대 법대 출신이라고 해서 모두 파시스트가 되는 것도 아니고, 교육 외에 더 결정적인 요인이 있을 수 있다. 김 교수의 주장은 인과관계를 지나치게 단순화한 느낌이 든다. 모든 문제를 교육에서 찾기엔 세상이 너무 복잡하지 않나?
주입식의 또 다른 문제: 창의성 부족
교육 이야기를 하다 보니, 파시즘보다 더 직접적으로 눈에 띄는 문제가 창의성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의 주입식 교육은 암기와 정답 찾기에 치중한다.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으려면 교과서 내용을 외우고, 정해진 답을 빠르게 찾아내는 게 최우선이다. 이런 방식은 효율적이긴 하지만, 비판적 사고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는 능력을 키우기엔 한계가 명확하다. 학생들은 문제를 다른 각도에서 보거나 창의적인 해결책을 고민할 기회를 좀처럼 갖지 못한다.
세계적으로 창의력이 점점 더 중요한 시대다. 기술과 산업이 빠르게 변하면서, 단순히 주어진 답을 잘 찾는 사람보다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런데 한국 학생들은 시험지 한 줄 답안에 익숙해져 있다. 이런 교육이 권위주의적 태도를 부추길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 더 큰 폐해는 창의성을 죽인다는 점이다. 김 교수의 주장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나는 이게 더 근본적인 문제라고 본다. 경쟁과 주입식이 낳은 결과가 파시즘뿐 아니라 창의성 부족으로도 이어진다면, 이건 더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주제다.
그렇다고 다 버릴 수는 없다
물론 주입식과 경쟁 중심의 교육이 나쁘기만 한 건 아니다. 한국이 짧은 시간 안에 경제 성장을 이루고,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인재를 배출한 데는 이 시스템의 공이 크다. 빠른 시간 안에 많은 사람을 효율적으로 가르쳐야 하는 상황에서 주입식은 꽤 유용한 도구였다. 독일이나 핀란드처럼 경쟁을 덜 강조하고 창의성을 중시하는 교육 시스템은 분명 장점이 있다. 하지만 한국처럼 자원이 제한되고 급격한 발전이 필요했던 나라에서 그런 방식을 처음부터 적용하긴 어려웠을 거다.
김 교수는 대학 입시 폐지 같은 급진적인 해법을 제안했는데, 이건 흥미롭지만 현실성을 더 따져봐야 한다. 입시가 없어지면 경쟁이 줄어들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 빈자리를 무엇으로 채울지, 사회적 공정성은 어떻게 담보할지 고민이 필요하다. 현재 시스템의 장점을 버리지 않으면서 부작용을 줄이는 방향이 더 현실적이지 않을까? 예를 들어, 주입식 비중을 줄이고 프로젝트 기반 학습이나 토론 같은 수업을 늘리는 식으로 조금씩 변화를 꾀할 수 있을 거다.
우리 안에 있는 파시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결론적으로, 교육이 사람의 사고방식에 영향을 미친다는 김 교수의 말에는 동의한다. 경쟁과 주입식이 엘리트 의식이나 권위주의적 태도를 키울 가능성은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파시즘의 원인을 교육만으로 설명하기엔 너무 많은 퍼즐 조각이 빠져 있다.
그리고 파시즘 논의를 떠나, 나는 우리 교육이 가진 더 심각한 문제점이 창의성을 길러주지 못한다는 데 있다고 본다. '머리 좋은 것'과 '창의적인 것'은 분명 다르다. 사람들은 이 둘을 많이 혼동하고 있는 듯하다. 활자만으로 세상을 보는 것과 실제 이 세상을 보고 만지는 것은 창의성에서 큰 차이를 낳는다.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질문을 던지고, 새로운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경험하지 못한다면, 그건 파시즘만큼이나 큰 손실이다. 그렇다면 우리 안에 잠재된 파시즘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