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육 - 경쟁 사회와 공정성 사이의 딜레마
우리 사회가 치열한 경쟁 사회라는 건 부정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OECD의 교육 경쟁 지표나 근로 시간 통계를 보면 한국은 항상 상위권에 랭크된다. 이런 환경에서 교육은 Bloom의 분류학에서 '기억하기'와 '이해하기' 같은 낮은 단계에 치중하며 주입식으로 운영된다. 이는 권정민 교수의 '우리나라 교육은 파시즘의 온상인가?'라는 유튜브 콘텐츠에서 주장하듯,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려는 의도와 연결될 수 있다. 주입식 교육은 객관식 시험이나 표준화된 평가로 성적을 매기기 쉬우니까, 모두에게 똑같은 잣대를 들이대는 데 유리하다. 특히 입시처럼 한 번의 시험으로 인생이 갈리는 구조에선 이런 방식이 '공정성'의 상징처럼 여겨지기도 했을 것이다. 수능 점수 1점이 운명을 가르는 현실을 보면, 이 시스템이 얼마나 공정성에 집착하는지 알 수 있다.
권정민 교수의 주장을 보면, 이 경쟁 시스템이 단순히 효율성을 넘어 권위주의적 태도를 키운다는 비판이 흥미롭다. Bloom의 분류학 상위 단계인 '분석하기', '평가하기', '창조하기'는 학생들이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권위를 의심하며 창의적인 대안을 모색하게 만든다. 하지만 우리 교육은 그런 훈련보다는 정해진 답을 빠르게 외우고 따르는 데 초점을 맞춘다. 교과서를 달달 외우고 시험에서 정답을 고르는 과정이 반복되다 보니, 비판적 사고보다는 순응적인 태도가 더 자연스러워질 수 있다. 이게 파시즘으로 직결된다고 보긴 어렵더라도, 권위에 저항하기보다는 받아들이는 태도를 내면화시킬 가능성은 분명 있다. 학생들이 '왜?'라는 질문을 던지기보다 '이게 정답이니까'라고 받아들이는 모습은 교실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다만, 이 시스템이 의도적으로 파시즘을 조장하려고 설계된 건 아니라고 본다. 역사적으로 보면 해방 이후 급속한 산업화와 경제 성장 과정에서, 단시간에 인재를 뽑아내고 사회를 조직화하려는 필요성이 컸던 게 이런 교육 방식의 뿌리 아니었을까. 1960~70년대 경제 개발 5개년 계획 아래 국가가 빠르게 성장하려면, 엘리트를 효율적으로 선발해야 했고, 그 도구로 주입식 교육과 표준화된 시험이 자리 잡았다. 당시엔 자원이 부족하고 시간이 촉박했으니, 창의성보다는 빠른 결과가 중요했을 것이다. 문제는 시대가 변하면서 창의성과 유연성이 더 중요한 지금도 그 틀을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이다. 공정성을 지키려던 도구가 오히려 창의성을 억누르고, 결과적으로 권위주의적 태도를 강화하는 부작용을 낳고 있는 셈이다.
경쟁과 공정성의 악순환
경쟁과 공정성 사이의 어느 지점에 답이 있을까? 경쟁을 완화하면 공정성에 대한 집착이 줄어들 가능성은 있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공정성이 이렇게 강조되는 건, 치열한 경쟁 속에서 기회의 불평등을 조금이라도 줄이려는 욕구 때문이다. 부모들은 자식이 뒤처지지 않길 바라며 사교육에 목을 매고, 학생들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학원과 독서실을 전전한다. 근데 역설적이게도 그 공정성을 보장하려고 만든 시스템—예를 들어, 수능 같은 표준화된 시험—이 오히려 경쟁을 더 부추기고, 그 경쟁이 또 공정성에 대한 갈증을 키우는 악순환을 만들어낸다. 수능 점수 1점 차이로 대학과 인생이 갈리는 현실이 이를 잘 보여준다.
경쟁을 완화하면 공정성에 대한 강박이 좀 누그러질 수는 있을까?
경쟁을 완화하면 공정성에 대한 강박이 좀 누그러질 수는 있을까? 핀란드처럼 교육에서 성적 줄 세우기를 줄이고 협력과 창의성에 집중하면, '누가 더 잘하나'보다는 '어떻게 같이 잘할까'로 초점이 옮겨갈 가능성은 있다. 근데 이게 한국에서 바로 적용되긴 어렵다. 경쟁이 구조적으로 깊이 뿌리 박혀 있어서, 갑자기 완화하면 오히려 '공정하지 않다'는 반발이 더 커질 수도 있다. 지금도 수능 점수 1점 차이로 울고 웃는데, 경쟁을 줄인다고 평가 기준을 모호하게 만들면 불신만 커질 거다. 예를 들어, 수능 비중을 줄이고 내신을 강화하면 사교육이 더 판을 칠 거라는 우려가 이미 현실이다.
경쟁은 어디서 오는 걸까?
우리의 유교 전통이 경쟁의 큰 뿌리 중 하나라는 데 동의한다면, 그 기원을 더 파보는 게 의미 있다. 유교 전통은 어디서 비롯된 걸까? 유교는 기원전 5세기경 공자(공구)가 중국에서 체계화한 사상인데, 그 뿌리는 더 오래된 주나라의 예악 제도와 사회 질서에서 나온다. 당시 농경 사회에서 공동체의 안정과 계층 질서를 유지하려면 개인의 역할과 도덕적 책임이 중요했다. 여기서 교육이 핵심이 됐고, 그 결과로 중국에서 과거제도가 생겼다. 한국은 신라 때부터 중국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유교를 점차 내재화했고, 고려 말과 조선에서 완전히 뿌리내렸다.
과거시험은 유교 이념을 실천하는 도구였다. 조선에선 양반 계층이 국가 운영을 맡았고, 그 자격을 증명하는 게 과거 합격이었다. 이건 단순히 지식 시험이 아니라, 유교 경전을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는지를 측정하는 도덕적 평가이기도 했다. 시험에서 경전을 암송하고 해석하는 능력이 중시됐고, 그 결과가 가문의 운명을 좌우했다.
과거시험이 성적순으로 줄 세우는 경쟁이었다는 건 분명하다. 조선 시대 기록을 보면, 과거에 합격하려는 선비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공부했는지 알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이나 당시 문집에는 과거 낙방 후 좌절하거나 재도전하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나온다. 과거 급제자가 한 해에 보통 30~100명 내외로 극소수였는데, 응시자는 수천수만 명에 달했으니 경쟁률이 어마어마했다. 최고 5만 대 1에 달했다고 한다. 지금 수능 경쟁률(2024학년도 대학 정시모집 경쟁률약 5:1 정도)이나 공무원 경쟁률(2025년 9급 국가공무원 평균 24:1 정도)은 비교가 불가할 정도다. 당시 사회가 엄청난 경쟁 스트레스에 시달렸다고 볼 수 있냐는 질문엔, "그렇다"라고 답할 수 있다. 특히 양반 계층에겐 과거 합격이 생존과 직결됐다. 합격하면 관직에 올라 경제적 안정과 가문의 영광을 얻었지만, 실패하면 평생 농사나 지으며 천대받는 신세가 됐다. 《동국문헌비고》 같은 자료를 보면, 과거 준비에 전 재산을 쏟아붓고도 실패한 가문이 망하는 경우도 있었다. 심지어 '광해군일기'에는 과거 시험을 둘러싼 부정과 뇌물 이야기도 나오니까, 공정성 논란까지 겹쳤던 거다. 낙방 후 극단적 선택을 한 사례도 적지 않게 기록돼 있다.
유교 전통이 현대 경쟁으로 이어진 과정은 꽤 자연스럽다. 조선이 망하고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과거제도는 사라졌지만, 그 정신은 살아남았다. 유교가 강조하는 '교육과 과거를 통한 신분 상승'은 근대화 과정에서 '입시'와 '엘리트 선발'로 변형된 거다. 일제 때도, 해방 이후에도 교육과 입시는 여전히 개인과 가족의 운명을 바꾸는 사다리였다. 과거시험의 경쟁이 현대 입시 경쟁으로 계승된 셈이다. 조선 시대엔 과거 급제가 양반의 꿈이었고, 지금은 서울대 입학이나 대기업 취업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