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정, 공화정 그리고 민주정

by 너우니

한 나라의 성공과 실패는 무엇으로 결정되는가? 한 나라의 성패는 체제 즉 시스템에 달려있다. 어떤 체제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그 나라의 운명이 결정된다고 해도 무방하다. 체제라 함은 우리가 알기에 왕정, 공화정, 그리고 민주정 크게 이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중 왕정은 고대에 생겨나서 지금까지 이어져 온 가장 오래된 정치체제이다. 글자 그대로 왕이 통치하는 정치라는 뜻으로 군주(왕)가 국가 최고 통치자로서 국가의 주권과 권력을 가지는 정부형태를 의미하며, '군주제'라고도 한다. 왕의 권력정도에 따라 모든 권력을 독점하는 절대왕정과 헌법에 따라 권력을 제한하는 입헌군주제로 나눈다. 지구상의 모든 문명은 왕정에서 시작했다. 청동기가 발명되면서 청동제 무기를 가진 자들에게 자신의 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이 생긴 것이 국가의 시작이다. 신석기시대는 어느 개인이나 집단이 권력을 손에 쥐더라도 몇 세대를 버티지 못하고 바로 붕괴해 버리는데, 그것은 석기(石器)로는 자신의 권력을 위협하는 경쟁자를 막아 내는데 쉽지 않은 것이 고대 국가로 성장하기 어려웠던 가장 큰 이유이다.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에 차별화가 없었으니 쉽게 정권이 전복되었을 것이다. 청동기의 발명은 왕정의 시작이자 문명의 시작이다. 물론 '문명'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전통적 의미의 문명은 강력한 권력의 탄생을 배경으로 한다.


동아시아의 하상주(夏商周) 삼대 중 하(夏)나라는 문명으로 간주하지 않는 것이 정설이다. 전통적 의미의 문명은 상(商)나라 시대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하나라 시대의 것으로 추정하는 유적에서 청동기가 일부 발견되기도 하지만 청동제 무기는 출토된 바가 없다고 한다. 청동제 무기가 본격적으로 나타나는 시기는 상나라 시대부터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학자들은 하나라부터 고대국가로 보는 견해도 있다. 하나라의 존속기간이 4백 년에 이르고 초대 우왕(禹王)부터 마지막 걸왕(桀王)까지 왕력이 구체적으로 존재하며, 일부 역사서에는 왕위의 승계과정이 선양(禪讓)이 아닌 피로 얼룩진 권력찬탈이나 쿠데타로 기록한 것을 보면 하(夏) 나라뿐만 아니라 요순(堯舜) 시대도 문명으로 보기에 충분하다고 주장한다.


왕정 다음에 등장하는 체제가 봉건제이다. 주(周) 대에 봉건제가 등장했다고는 하나 사실 상나라 시대에도 왕실의 자제종친을 정복지에 분봉해서 광범위한 자치권을 허용하는 시스템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주나라는 이 시스템을 계승했다고 보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상(商)의 정치체제가 주(周)와 어떻게 달랐는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오늘날과 같은 중앙집권화된 체제는 아니었을 것이다. 본격적인 중앙집권제는 진(秦)이 전국시대를 종식시키면서 도입한 군현제(郡縣制)에서 시작한다. 광대한 영토를 친인척을 봉해 자치권을 주어 다스리게 하기보다는 관리를 파견하여 왕이 직접 다스리는 제도이다. 그러나 봉건제든 군현제든 둘 다 왕정의 별종임을 알 수 있다. 다만 차이점은 봉건제가 지역에 봉해진 제후(諸侯)에게 자치권을 폭넓게 허용해 주었다면 군현제는 지방 제후에게 주었던 자치권을 회수하여 왕에게 귀속시켜 놓은 형태이다. 진(秦)나라의 군현제 설계자들은 주나라의 봉건제가 제후국 간의 끊임없는 전쟁을 일어키는 원인으로 지목하고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아이디어인 군현제를 도입하여 강력한 왕권으로 전쟁을 억제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진시황의 처음 의도와는 달리 이후의 역대 왕조는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군현제를 고집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갖게 한다.


민주정과 공화정은 유럽에서 생겨난다.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들이 서로 경쟁하던 시기에 아테네에서 시작한다. 세계의 다른 어느 지역에서도 이런 형태의 정치체제는 없었다. 민주정은 아테네를 그리스의 맹주 자리에 올려놓았고 그 뒤 대제국 페르시아를 꺾고 세계의 패자가 되는데 큰 공헌을 한다. 아테네의 민주정은 2백 년이 채 안 되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전무후무한 문화적 업적을 남겼다. 그리스의 철학, 예술은 서구 문명의 근간이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스파르타에게 패배하면서 아테네의 민주정은 끝난다. 이후 민주정은 2천 년이 지나서야 다시 근대 민주주의라는 형태로 살아난다. 아테네의 민주정은 짧은 영화를 뒤로 하고 세계의 패권은 로마의 공화정에 그 자리를 내어준다. 공화정 역시 민주정처럼 왕이 없는 정치체제이나 법치와 귀족들이 권력을 나누어서 견제하는 형태이다. 이 체제도 공화정이었던 로마가 제정(帝政)으로 넘어가면서 2천 년이 지나서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다시 부활한다.


민주정은 국민이 주권을 가지며, 직접 또는 간접으로 정치에 참여하는 체제, 그리스어 "데모크라티아"에서 유래하며, "인민의 지배"를 의미한다. 고대 아테네처럼 직접민주정(시민이 직접 법안을 투표)과 현대의 대의제 민주정(대표자를 선출)이 있다. 반면 공화정은 라틴어 "레스 퍼불리카"(공공의 일)에서 유래하며, 군주가 없는 체제로서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고, 대표자들이 법치와 권력 분립을 통해 통치하는 체제, 로마 공화정이 대표적이다.

그럼 민주정과 공화정의 차이는 무엇일까? 고대 그리스의 민주정은 직접적이고 다수결 중심이었으나 불안정했다. 반면 로마 공화정은 안정성을 위해 권력 분립과 대표제를 도입했다. 즉 민주정은 "국민의 목소리"를 강조하지만, 공화정은 "안정과 자유 보호"를 중시한다. 현대 민주주의는 공화주의의 영향을 받아 다수결만이 아닌 헌법적 제한을 둔다. 미국의 건국 아버지들(제임스 매디슨 등)은 순수 민주정을 피하고 공화정을 선택했는데, 이유는 다수결이 소수자 권리를 침해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테네는 현명한 지도자의 말보다 선동가들의 대중적 선동에 휘둘려 감정적이고 비합리적인 결정으로 자멸했다고 생각한 것이다. 실제 아테네가 번영을 구가하던 시기 소크라테스와 같은 현자를 처형하고, 도편추방제로 유능한 지도자를 쫓아내는 등 민주주의의 악용 사례가 빈번했다.


필자가 장황하게 이 세 가지 체제를 이야기한 이유는 과학혁명이 일어난 지역이 왕정이 아닌 민주정과 공화정을 했던 곳이라는 점을 어필하고 싶어서이다. 왜 민주정과 공화정에서 과학혁명이 일어났을까? 필자는 과학이라는 사유의 세계는 인간의 감수성과 관련이 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과학혁명은 '관찰'과 '실험'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그것은 아무나 가지는 만만한 능력이 아니라고 말했던 적이 있다. '통찰'은 진리탐구의 중요한 덕목이다. 사물의 이치를 꿰뚫어 보는 눈이 통찰력이다. 통찰이 곧 관찰이다. 왜 그런가? 통찰은 개인의 감수성에서 나오며, 그 감수성은 개인의 자유에 기반한다.


왜 자유가 중요한가? 사람의 뇌는 8백억 개의 신경세포와 100조 개에 가까운 시냅스로 구성되어 있다. 뇌과학자들에 따르면 우리가 보고 만진 데이터는 이 시냅스에 가중치로 저장된다고 한다. 경험이 쌓이면서 스냅스의 가충치가 더 정교하게 다듬어지기도 하고, 때론 기존 시냅스가 떨어지고 새로운 시냅스가 형성되기도 한다. 뇌과학은 인간은 이 세상을 벡터형태로 재구성해서 이해한다고 밝힌다. 갓난아기가 '사과'라는 것을 처음 접할 때 다섯 가지 감각을 통해 들어온 데이터를 시냅스에 벡터값으로 저장하고 있다가 아기에게 다시 그것과 비슷한 것들을 보여주면 아기는 새로 들어온 데이터와 이미 저장되어 있던 사과데이터를 비교해서 그것이 사과인지 여부를 판단할 것이다. 여러 종류의 사과를 많이 보여주면 사과에 대한 인식률이 높아지는 것과 같다. 즉 세상을 더 정확하게 본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가중치를 정교하게 다듬고 확장하는데 방해요소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개념'이라고 한다. 개념은 워낙 중독성이 강해 데이터를 가린다고 한다. 심지어 어려서부터 이 '개념'만을 학습한 사람은 데이터를 받아들이는 능력을 잃어버린다고 한다. 기존 개념을 아무리 주물럭거려 봐야 새로운 개념을 만들지 못한다. 개념은 새로운 데이터를 만지거나 데이터를 새로운 시각으로 볼 때 만들어진다. 이것이 바로 통찰이다.


왕정체제는 사람들에게 데이터를 만지기보다는 개념을 학습하도록 강요한다. 우리에게 창의성이 부족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개념을 많이 가르치는 사회에서 천재가 나올 수 없는 것은 자명하다. 노자(老子)가 군주가 백성들을 다스릴 때는 생선을 굽을 때처럼 인색해야 한다고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생선을 굽을 때 자주 뒤집으면 살이 다 깨져서 못 먹는 것처럼 사람들이 데이터를 보고 만지도록 내버려 두어야 통찰력을 기를 수 있다는 뜻이다. 인의(仁義)와 충효(忠孝)로 무장한 사람들이 어찌 통찰력이 있을 수 있겠는가? 한마디로 어불성설이다. 이렇게 보면 우리 사회의 높은 벼슬에 있는 사람들이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이유도 이해가 된다. 측은지심(惻隱之心)은 인의(仁義)를 '학습'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현실 세계의 물리적 데이터를 '눈으로 보고 손끝으로 만질 때' 생긴다. 개념의 세계가 아닌 현실 세계를 경험해 볼 때 얻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왕정이 아닌 민주공화정을 하고 있는 이 시대에 누구를 대표로 뽑아야 할지 자명해진다.


그러나 해방 이후 우리에게 민주주의라는 제도가 주어졌지만, 중고등학교 시절 우수한 성적으로 서울대, 연고대를 진학해서 높은 벼슬을 한 사람을 정치인 또는 시장, 군수로 뽑는 일을 우리는 반복해 왔다. 선거를 통해 뽑힌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관직에 있다가 출마하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다. 즉 전직관료들이 그대로 정치권으로 넘어온다는 소리다. 정치를 하기 위해서는 SKY를 나와서 관료가 되어야만 한다. 그들은 개념을 잘 학습해서 그 능력을 인정받아 높은 자리까지 갔을 뿐이다. 실제 국정과 행정에서 유능한 인물들이라고 보기 어렵다. 좋은 대학을 들어가고 관료가 된 것은 엉덩이가 무거웠을 뿐이다. 통찰력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민주주의를 하지만 민의가 잘 반영되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앞으로는 관료 출신이나 변호사 출신이 아닌 다양한 분야에서 정치인이 나와야 할 것이다. 엔지니어, 중소기업 사장, 시인, 무용가 등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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