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정, 공화정 그리고 민주정 2

by 너우니

앞에서 열거한 체제 중 가장 경쟁력 있는 체제는 무엇일까? 역사를 되짚어 보면 고대 로마는 '공화정'체제에서 번영의 초석을 다졌고, 지금 세계 패권을 쥐고 있는 미국 역시 공화정을 해서 성공을 거두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이 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를 생각해 보면 여기에 패턴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 체제들을 중앙집권의 정도에 따라 나열해 보면 왕정> 공화정> 민주정으로 순서를 매길 수 있다. 그리고 공화정은 왕정과 민주정 사이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공화정과 민주정의 차이가 애매할 수 있으나 이 둘 사이의 차이는 중앙집권화로 구분할 수 있을 듯하다. 공화정이 왕정과 민주정 사이에 있다는 것은 너무 중앙집권적이어서도 안되고 너무 개인의 의사가 중시된 나머지 의사 결정이 산만해서도 안된다는 말일 것이다.


중앙집권적인 왕정체제가 성공을 거두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조선시대 초기는 왕정하에서도 사회는 비교적 유연했다. 물론 신분제는 있었지만 평민이 과거시험을 볼 수도 있었고 백성들에게 거두는 조세제도도 비교적 공정했다. 그러나 왕정의 가장 취약한 부분은 권력암투가 늘 상존한다는 것이다. 소수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시스템 특히 1인 체제에서는 권력을 잡기 위한 암투가 끊이지 않는다. 연산군 시대는 왕권이 정점에 이른 시기다. 누구도 견제하지 못하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시기이다. 결국 중종반정으로 왕권이 한 번 꺾어지자 이 번에는 상대적으로 신권이 강해지면서 그들 사이에서 또다시 권력암투가 벌어진다. 조선의 창업공신이었던 훈구파를 밀어내고 집권에 성공한 사림들은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면서 자리다툼을 이어간다. 민생을 챙기기보다는 자신들의 권력을 지키기에 여념이 없었다.


최근 중국에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 중국 공식 매체에서는 보도하지 않고 있어 정확한 사건 전말을 알 수 없으나 권력 서열 1위와 2위 사이에 권력암투가 벌어지고 있는 듯하다. 일부 유튜브 채널에서는 시진핑이 권력서열 2위인 장유샤를 부패 혐의 내지 핵기술을 미국에 넘겼다는 혐의를 씌워 제거했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당연히 최고 권력자에게 씌워지는 혐의 그 자체를 믿는 사람은 없다. 지금 상황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안갯속이다. 모든 것이 불분명하기 때문에 신화통신이나 인민일보도 이 사건에 대해 보도하지 않는다. 아직 확실히 상황이 정리되지 않았다는 반증이다. 섣불리 보도했다가 상황이 뒤집어질 수 있기 때문에 안개가 걷힐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시진핑과 장유샤는 혁명 원로 2세들로 일명 태자당 출신이다. 이들은 아버지 세대부터 막역한 사이로 그 자식들도 호형호제하는 꽤 친밀한 사이였다고 한다. 처음 시진핑이 주석이 되었을 때 군 경력이 없는 시진핑이 군부를 장악하는데 장유샤의 도움이 컸다고 한다. 동지였던 이 둘 사이에 금이 간 이유는 시진핑의 권력에 대한 집착이 사건의 발단이었던 걸로 보인다. 중앙군사위 7인 체제가 하나 둘 사라지면서 시진핑 본인과 장성민 둘만 남았다고 한다. 향후 중국은 어떻게 될까? 모택동 시대로 회귀할까? 아니면 한국의 유신시대처럼 종신 집권을 꿈꾸었던 박정희의 길로 갈까?


그런데 이 사건을 보면서 기시감이 드는 건 무엇 때문일까? 2024년 12월 3일 한국에서 일어났던 윤석열의 친위 쿠데타와 유사하다고 느껴지는 건 나만은 아닐 것이다. 왜 한국과 중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답은 간단하다. 중국과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중앙집권적인 국가들이다. 21세기를 살고 있지만 여전히 시스템은 후진적이다. 권력이 집중되면 권력 투쟁은 필연적이다. 중앙집권 정도를 좌표로 찍어보면 중국은 가장 중앙집권적인 왕정체제이다. 그리고 한국은 왕정과 공화정 사이 그 어디쯤에 있다. 한국이 상당한 민주화를 이뤄냈지만 아직 왕정과 관료제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관료사회 역시 중앙집권화 되어 있다. 어느 기관 어느 자치단체를 가든 기관의 장과 자치단체장이 왕노릇을 하고 있다. 그 밑에서 권력을 얻기 위한 공무원들의 암투는 때론 상상을 초월하기도 한다. 한국의 12.3 내란은 윤석열의 장기집권 야욕과 관료들의 선민의식이 불러온 대참사이다. 우리는 검사들이 정의로울 거라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그들도 승진에 목을 매는 일개 공무원일 뿐이다. 왜 그랬을까? 한국 사회는 승자만이 모든 것을 다 가지는 승자 독식 구조이기 때문이다.


시진핑과 윤석열 이 둘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둘 다 기득권이 내세운 인물이고 이들에 의해 옹립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윤석열은 '선출'되었지만 사실 우리 사회의 기득권인 래거시 미디어들이 그를 잘 포장시켜 국민들을 호도한 결과 대통령에 당선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중국 공산당 원로들이 시진핑을 차기 지도자(후진타오 후임)로 낙점하고 끌어올린 배경에는 태자당 출신이라는 배경, 파벌 간의 타협, 그리고 강력한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시대적 요구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건 표면적인 이유일 뿐이다. 공산당 원로들이 원하는 건 단 하나다. 원로들이 보기에 시진핑이 자신들의 편에 서서 자신의 기득권을 보호해 줄 거라 믿었다. 초기 시진핑은 성격이 유순하고 원로들의 뜻을 잘 따르는 인물로 인식되어, 강력한 카리스마로 원로들과 갈등을 빚었던 이전 지도자와 달리 통제 가능한 인물로 보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유순한 사람도 권력의 맛을 보는 순간 권력에 집착하게 되어 있다. 시진핑이 주석직에 오르자 처음 의도와는 다르게 자신들이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눈치챘지만 이미 늦었다는 탄식이 들리는 듯하다. 자신들마저 집어삼키는 절대권력을 탄생시킨 것에 자괴감이 들 테이지만 이제 돌이킬 수 없다.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켜줄 무난한 사람을 찾다가 결국 절대 권력을 탄생시킨 셈이다. 두 나라 모두 최고 권력자의 친위 쿠데타가 일어났지만 한국은 내란을 진압하고 헌정 질서가 회복되었지만 중국은 과거 왕정시대로 돌아가 버렸다.


왕정이 성공하기 어려운 가장 근본적인 이유를 설명해 보겠다. 왕정은 일단 체제의 특성상 개인이 자유로운 의사표현을 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조선초기가 비교적 유연했다고는 하지만 신분제 사회인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체제의 근간이 신분제였던 만큼 역시 기득권 사회일 수밖에 없다. 신분제 사회에서 이 근간을 흔드는 행위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반체제 행위이다. 그래서 양반 기득권 입장에서 보면 신분제 외에 자신들의 권위에 도전할 수 없도록 넘지 못할 장벽이 필요했고 그게 바로 백성들에게 유교적 충과 효 사상을 가르치는 것이다. 신분제가 사회적 시스템 장벽이었다면 유교적 이념 교육은 백성들로 하여금 자신의 사회적 신분에서 벗어나는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심리적 장벽을 만든 백업 시스템이다. 사람이란 자유의지가 작동하는 자유로운 존재일 거 같지만 그렇지 않다. 이념은 마치 컴퓨터 프로그램의 코드와 같다. 특정 코드 한 줄 들어가면 그 조건에서 반복적으로 실행되는 코드 같은 것이다. 충과 효 그리고 인과 의라는 이념적 틀에서 한 발짝도 나오지 못하도록 프로그래밍한 것이다. 이런 교육을 받은 사람이 수백수천만 명이 있어도 아무 소용이 없다. 이들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어떤 혁신도 일어나지 않는다. 과학적 발견은 인간의 방해받지 않는 자유로운 감수성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감수성이 무엇인가? 현실 세계의 물리적 데이터를 보고 더듬는 능력이다. 그런데 이건 문자나 언어 같은 것에 갇혀 있으면 절대 볼 수 없는 영역이다. 이념적 코드는 감수성을 죽이고 무뎌지게 한다. 도가철학에서 무위자연을 그토록 외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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