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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중국에 근대 과학혁명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by 너우니

19세기 동아시아가 서양문명에 패배한 이유가 무엇일까? 이런 성찰은 비단 동아시아만의 고민은 아니었던 듯하다. 한때 중동이 세계의 중심이었던 적이 있었다. 7세기 이후 이슬람의 무역선은 세계로 활동무대를 넓혀가면서 유럽에 밀리기 전까지 번영을 누렸다. 그러나 14세기 이후 전 세계의 무역거점을 유럽에 차례차례 내주면서 급기야 19세기가 되면서 자신의 본토마저 유럽 식민지로 전락하는 지경에 까지 이르렀다. 그리고 아직 중동은 19세기 서양열강으로부터 받은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이로 보건대 지구상에는 중국 외에도 여러 개의 거대 문명권이 있었지만 왜 하필 유럽이 전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을까?라는 질문이 더 타당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에 대해 유럽에서 일어난 근대 과학혁명이 지구상의 모든 문명을 압도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왜 중국에 근대 과학혁명이 일어나지 않았을까?'라는 질문은 '왜 유럽에만 근대 과학혁명이 일어났을까?'와 다를 수 있지만 유럽인들이 성취한 '과학'의 발견이 인류문명사의 가장 성공적인 업적으로 평가받고 있고 이에 대한 異論이 없다면 시기적으로 차이는 있을지언정 다른 문명에서도 언젠가 조건만 갖추어지면 반드시 일어나야 할 필연으로 봐야 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까?


대학교 다닐 때 영국의 중국학자 조셉 니덤의 『중국의 과학과 문명』이라는 책을 본 적이 있었다. 니덤은 이 책에서 12~13세기까지 중국은 과학 기술 분야에서 서양과 동등하거나 오히려 앞섰다고 주장하면서 당시 중국 과학 기술의 성과였던 종이, 화약, 나침반 등 서양에 전파된 다양한 중국의 발명품을 소개하고 그 기술적 발전을 상세하게 다뤘다. 그리고 이 방대한 저작은 왜 중국에 근대 과학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는지에 대한 니덤의 질문(Needham Question)으로 유명하다. 결론적으로 조셉 니덤은 중국에 근대 과학혁명이 일어나지 않은 이유를 사회 구조의 차이에서 찾았다. 유럽은 귀족적 봉건제 사회로, 경쟁을 통해 봉건 귀족들의 힘이 커지고 자본가 계급이 성장하여 과학 기술 발전을 이끄는 동력이 될 수 있었다. 이에 반해 중국은 중앙집권적 관료제 사회로, 상업을 억압하고, 이로 인해 근대 과학 발전에 필수적인 자본주의 혁명이 불가능했다고 주장했다.


니덤의 연구는 근대 동아시아의 지식인들이 왜 자신들이 패배했는지 그토록 알고 싶어 했던 질문에 대한 답이기도 했다. 청말 양계초(梁啓超)를 비롯한 수많은 중국인들이 자신들이 서양에 패한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 싶어했지만 타당한 이유를 찾는 데는 실패한 듯하다. 지금은 그 이유가 '동아시아에는 과학이 없었다'는 것이 당연해 보이지만 당시 중국의 근대 계몽사상가들의 눈에는 '과학'이 보이지 않았는지 모른다.


과학과 기술의 차이


흔히 사람들은 '과학'과 '기술'이 동일한 것으로 오해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이 둘은 엄연히 다르다. 중국에도 '과학'은 없었을지언정 '기술'은 있었다. 인쇄술, 종이, 나침반, 화약 같은 중국의 4대 발명품은 '기술'이라고 하지 '과학'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현대의 '기술'은 '과학'과 서로 발전시키는 선순환 관계에 놓여있다고 하지만 '과학'이 없었던 근대 이전의 '기술'은 장인의 개인적인 경험이 쌓여서 우연히 습득되는 것이었다. 따라서 인류가 삶을 영위하는 곳에는 언제나 '기술'은 있다. 그러면 과학은 기술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근대 이전의 '기술'은 장인의 손끝에서 우연히 얻어지다 보니 그것을 일반화하고 객관화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문제다. 제지술은 종이를 처음 만든 사람만의 고유한 경험이어서 쉽게 타인에게 전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종이 만드는 과정을 기록할 수 있지만 문자로 제지술을 온전히 담아내지는 못한다. 가령 漢代의 제지술이 기록으로 남아 있어 당시의 기술을 재현하려고 하면 기록만 봐가지고는 복원해 내기 쉽지 않은 것과 같다. 기록할 수 있는 문자가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것조차 없다면 몸소 가르치는 것 외는 방법이 없다. 물론 현대의 '기술'도 고대와 마찬가지로 그 기술을 개발한 사람의 고유한 경험이 들어가긴 하지만 수치화하고 표준화해서 누구든지 따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자동화까지 가능하다. 이때 과학은 엄정함을 제공한다. 이것은 큰 차이다. 하지만 여전히 한계는 있다. 삼성전자가 비메모리 파운드리 시장에서 대만의 TSMC에 절대적으로 밀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현재 2 나노 공정에서 수율이 50%로 경쟁사 TSMC의 60~70%에 비해 낮다. 삼성전자 초기 수율은 30%에도 미치지 못했다. 수율이 낮으면 가격을 낮출 수 없다. 같은 장비로 만들지만 계량화, 표준화가 안 되는 부분이 있고 이 지점은 결국 사람 손에 달려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현재 AI의 발전 속도를 보건대 이것 역시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얼마 안 있어 진정한 무인공장을 보게 될 것이다.


'과학'의 진정한 유용성은 자연현상에서 얻어진 원리를 이용하여 새로운 기술을 고안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물을 가열해서 증기로 변하면 부피가 1,700배 커지는데 이 팽창된 힘으로 피스톤을 밀어서 일을 하게 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발명품이 증기기관이다. 유럽인들은 물이 기화할 때 부피가 커지는 현상에 일정한 패턴이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 당연히 관찰과 실험으로 얻어지는 것이다. '관찰'이라고 하면 혹자들은 그게 뭐라고 할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 자연현상 속의 보일 듯 말 듯 잘 드러나지 않는 어떤 패턴을 보기 위해서는 밝은 눈(明目)이 필요한데 그게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만만한 능력이 아니다.


유교의 교조화 - 유일사상이 된 주자학, 인간의 본성을 해치다


장자(莊子) 외편(外篇) 제14편 천운편(天運篇)에 보면 「夫孝悌仁義 忠信貞廉 此皆自勉以役其德者也 不足多也」(효제, 인의 같은 것들은 자신의 본성(德)을 갉아먹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본성(本性)은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는 '원래 성품'을 말한다. 장자에 나오는 성(性)과 덕(德)이라는 글자는 '원래 성품'이라고 번역하면 이해가 쉽다. 현대적 감각으로는 '감수성(感受性)' 정도로 풀이하면 무난할 것이다. 장자에 의하면 인의(仁義)나 이기(利器)는 인간의 본성을 가린다고 한다. 사람은 누구나 '완전한 감수성'을 갖고 태어나지만 마음에 인의(仁義) 같은 분별심이 들어오면서 감수성에 문제가 생긴다고 한다.


과학의 발전은 덕(德)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왜 이 얘기를 하냐면, 근대 이전 동아시아의 사회구조가 유럽만큼 사람들이 덕을 기르기에 유리했냐는 질문을 해보기 위해서다. 장자는 백성들이 덕을 기르는 데는 무위지치(無爲之治) 만한 것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동아시아의 근대는 당시 이미 한계에 봉착한 관료제를 넘어 유교가 극단적인 이념화의 지경에까지 이르러 백성들은 더 이상 저마다의 본성을 지키고 살기 어려운 세상이 되고 만다. 교조화란 사상이나 이념이 지나치게 굳어져 융통성을 잃고 경직되는 것을 말한다. 아무리 총이명목(聰耳明目)한 뛰어난 선비라도 세상에 도가 없을 때는 조용히 숨어서 자신의 삶을 지키는 데 급급하다. 그들은 공정함과 정의가 무너진 무도(無道)한 세상에서는 자신의 뜻을 펼칠 수도 없고 자칫 손대지 말아야 할 것을 건드렸다가는 목숨이 위태로워진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폭압적인 권력이 백성들에게 사상주입을 하면 사람들은 실제로 그걸 믿는다. 무도한 세상에서 조용히 숨어사는 사람도 있었겠지만 사실 그보다는 잘못된 이념교육으로 '충과 효로 박제된 인성'이 만들어진 사람들이 더 많았다. 덕이 완전히 망가진 케이스다. 이런 풍토에서는 '생각'이 일어날 수 없고 당연히 혁신도 일어날 수 없다.


관료제의 실패


관료제란 위계적 구조, 분업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대규모 조직을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그러나 이런 설명은 잘 와닿지가 않는다. 좀 더 직관적인 설명은 이렇다. 관료제란 과거에 왕이 자신이 임명한 사람을 파견하여 나라 구석구석까지 자신의 교화가 미치지 않는 곳이 없도록 고안한 국가운영시스템이다. 그 임무를 맡은 자를 관료(官僚)라 한다. 이 시스템은 동아시아에서 특히 발달했다. 진시황(秦始皇)이 중국을 통일하면서 도입한 제도가 바로 이 시스템이다. 이후 2천 년이 넘는 세월을 동아시아는 이 관료제하에서 살았다.


관료제의 특징을 설명하는 키워드는 비밀주의, 번문욕례(繁文縟禮), 선례답습, 획일주의, 법규만능, 창의성 결여, 직위이용, 권위주의 등이 있는데 확실히 부정적인 면이 많아 보인다. 장점이 없는 건 아니나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단점이 더 많은 시스템이다. 특수한 경우라 함은 조직의 특성이 수직적인 위계구조를 가지다 보니 윗사람의 뜻이 말단 하급자에게까지 한 치의 오차 없이 전달되어 조직 전체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 경우는 이 '윗사람'이 좋은 품성과 덕을 가진 자일 때만 장점이 드러나는 우연성에 기반한 시스템이다.


동아시아의 패배는 관료제의 실패와 맞닿아 있다. 관료제의 실패는 현실과 소통이 잘 안 된다는 데서 기인한다.위계적 구조를 갖는 조직일수록 현실에 대해 어둡다. 말단공무원에게 충분한 시간과 권한을 주면 그들은 현장을 뛰어다니면서 살펴볼 것이다. 그러나 대개 담당자는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또는 그냥 일개 직원일 뿐이다는 이유로 들여다보지 않는다. 데이터가 부족하거나 편향된 데이터가 올라가서 권력자가 잘못된 결정을 내려도 과거 동아시아와 같이 닫힌 세계에서는 바로 잡을 방법이 없었다. 망하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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