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세계는 알 수 없는 길을 통한다.
내 생각, 나의 무언가로 아이들의 세계를 이해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 알 수 없음에 매료되는 것이 분명하다. 기분 좋은 알 수 없음. 알 수 없다는 것이 왜 답답하지 않고, 불안하지 않고, 기분이 좋아지는 것일까. 아이들의 세계는 나에게 얽히고설켜 어지러운 수많은 서브 텍스트를 가진 말들과 행위들로부터 자유를 만끽하게 한다.
춘천의 남이섬 안 실내 공간에는 기다랗고 구불구불한 미끄럼틀이 있다. 그 미끄럼틀은 2층에서 시작해서 1층으로 내려오기 때문에 꽤 길고 빠르다. 5살 꼬마는 이내 그 미끄럼틀에 흠뻑 빠졌다. 꼬마가 올라가고 내려오고 다시 올라가고 내려오고를 반복하다 보니 다른 두 여자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두 여자아이는 서거니 앞서거니 하며 달려 미끄럼틀을 함께 타고 다시 올라왔다. 5살 꼬마도 어느새 그 아이들의 꽁무니를 따라 미끄럼틀을 타게 되었다. 어느 틈엔가 나는 두 여자아이를 마주쳤고, 아이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나 : 몇 살이야?
여자아이 1: (눈을 깜빡이며 뜸을 들이다가)... 7살
여자아이 2: 난 5살!
7살 아이는 외국 아이였고 조용히 답했다. 들어보니 둘은 여기서 만나 친구가 되었고, 함께 미끄럼틀을 타는 것이었다. 5살 여자아이가 언니라고 부르는 것 말고 둘의 대화는 특별히 없었지만 7살 아이는 5살 동생의 손을 잡아주고 미끄럼틀에 잘 앉혀주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나는 친구를 만들어줄 요량으로 꼬마에게 이 친구도 5살이라 말해주었다. 하지만 꼬마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계속해서 미끄럼틀을 타는 것이 반복되던 어느 순간 여자아이들과 꼬마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여자아이 2: 우리는 둘이 타는데
5살 동갑내기 여자아이가 꼬마에게 말을 걸었다. 어른인 나는 속으로 ' 소외감을 느끼려나....'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무언가 너와 우리의 경계를 짓는 말이라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꼬마는 과연 어떻게 반응하는지 지켜보았다.
꼬마: 나는 셋이 타는데
알 수 없는 말이었다. 셋이 탄다고? 엄마, 아빠까지 이야기하는 건가? 순간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꼬마는 무슨 말을 하는 걸까?
그런데 꼬마가 그 말을 뱉고 난 뒤, 아이들이 함께 타는 것이다. 여자아이 둘 그리고 꼬마.
셋이 함께 서로를 잡고 미끄럼틀을 타며 내려갔다. 그러니까 셋은 엄마와 아빠가 아닌 그 아이들과 꼬마를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순간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아이들에게 친구가 되어가는 과정은 내가 알 수 없는 경로를 통해서 가능하구나. 나는 그 경로를 알지 못하는 어른으로 그들의 그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아이에게 몇 살인지 물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별수 없는 어른이었다. 아이들의 나이로 서로를 알아야만 형과 아우 관계가 형성될 것이라는 무의식적 생각이 존재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달랐다.
' 나는 셋이 타는데' 그 한마디에 셋은 '함께'가 되었다.
아이 셋이서 끝도 없이 미끄럼틀을 탔다. 서로의 옷자락을 잡고 신나게 내려가고, 다시 서로를 따라 함께 돌아왔다. 아이들은 신나게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어느샌가 실컷 놀다가 툭툭 그 자리를 떠나는 아이들.
어떤 미련도, 어떤 서운함도, 어떤 궁금증도 없이 서로는 헤어졌다. 그 순간이 이미 충분했기 때문에 지금 온전하게 현재에 존재했기 때문에 아이들은 무엇도 남기지 않고 가볍게 그 자리를 떠났다. 다시 만나지 못할 것에 대한 아쉬움은 아이들에게 있지 않아 보였다.
이 보물 같은 순간은 나에게 1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그리고 앞으로 영원히 곱씹고 싶은 기억이다. 얽히고설킨 세상 안에서 온전하게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아이들을 보며 이들의 세계가 나를 흔들고 깨우고 움직이게 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나도 저런 순간을 맞이하여 무엇도 남기지 않는 친구와 놀아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