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는 내게 종종 묻는다.
' 엄마는 남산타워가 좋아? 내가 좋아? '
' 엄마는 이현우(라디오 DJ)가 좋아? 내가 좋아? '
' 엄마는 쌀이 좋아? 내가 좋아?'
질문을 듣는 순간 웃음이 터져 나온다. 생각으로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생각들이기 때문에, 나는 조금 당황하고 많이 웃는다. 남산타워와 비교를 하다니.... 들려오는 라디오의 디제이와 비교하다니.... 웃음이 입가에 묻는다.
어른인 나에게 비교라는 건 비슷한 혹은 견주어 볼 법한 어떤 두 대상 혹은 몇 가지의 대상을 놓고 벌어진다.
연필이 나을까? 펜이 나을까? 하다못해 비교의 범주라는 것이 있는데, 아이는 나의 생각의 범주와 경계를 아무렇지 않게 없애버린다. 심지어 내가 아이가 비교하고자 하는 대상을 좋아하거나 연관이라도 있었다면 모르겠지만 매번 꼬마는 새로운 비교 대상을 끌고 와서는 나에게 묻는 것이다.
전혀 비교할 수 없는 대상을 비교해 보는 것. 비교는 아니라도 그저 가까이 생각해 보는 것. 그것만으로도 웃음이 나고 새로운 생각을 해보게 된다. 언젠가 소설가 김영하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가족끼리 모여 앉아 우리가 놀러 갈 여행지를 적어보자고 하면 수많은 이유들로 다투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반대로 우리가 절대로 가지 않을 여행지를 적어보자고 하면 술술 써질 뿐만 아니라, 재미있게 상상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는 것이다. 왜냐면 절대로 안 갈 것이기 때문이다. 너무 재밌는 생각의 반전이 아닌가.
꼬마는 그렇게 나에게 전혀 견줄 수 없는 대상을 끌고 온다. 그리고 눈을 크게 뜨고는 대답을 기다린다.
' 남산타워가 서울에 꼭 있어야 하는 멋진 곳이지만.... 엄마는 남산타워가 없다고 죽지는 않거든. 그런데 네가 없으면 엄마는 살 수가 없어.'
꼬마는 더 이상 묻지 않는다. 어쩌면 내게 자신을 향한 마음을 듣고 싶었던 것일까. 하지만 그 질문 덕에 나는 덤으로 재밌는 상상과 웃음을 선물 받는다. 꼬마의 동그랗고 맑은 눈이 유난히 빛나 보인다. 너의 움직임, 너의 소리, 너의 생각들이 마치 이 지구에 오래전부터 살고 있는 존재처럼 느끼고 있는 나를 흔든다. 내가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생각들을 가능하게 한다.
아이의 말, 아이가 바라보는 세계와 내가 알던 세계가 만나 내 세계가 휘청휘청 흔들린다. 아이의 세계와 나의 세계 사이의 틈이 벌어지고 그 틈에서 무언가가 피어오른다. 너는 어쩜 이렇게 기분 좋고 멋지게 날 흔들 수 있는 것일까. 아이가 바라보고 느끼고 있는 세계가 나를 깨워준다.
오늘은 어떤 비교를 해볼까.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비교를 생각하며 우리 사이의 세계를 즐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