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필요의 사이

by 치치타타

나는 하나님을 믿지만, 지금의 생 이후에 올 것에 대해 나는 믿지 않는다. 기독교인이라면 당연히 영생에 대해 믿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나의 피부로 전혀 느껴지지 않는 그 영생이라는 세계에 솔직하게 믿어본 적이 없다.

KakaoTalk_20251217_163440664_03.jpg

그렇지만 스스로에게 죽음이 찾아온다면? 이라는 질문은 때로는 깊고 슬프게 때로는 가볍고 쉽게 끊임없이 던져보는 질문이다. 만약 그렇다면 어느 정도 미련 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왜냐하면 나는 이제껏 내가 하고 싶은 방향대로 최선을 다해 삶을 살아왔다고 믿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정말 이상한 것은 꼬마를 만나고 나서는 이러한 마음이 전혀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에게 갑자기 죽음이 찾아온다면 나는 죽지 못하고 너의 주변을 떠돌 수밖에 없을 것이다. 네가 가여워서 너의 주변에서 너를 보고 너를 만지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죽지 못하고 이승에서 계속해서 살아갈지 모른다. 이것이 영생이라면 웃기겠지만, 분명 나는 그럴 것이다. 그렇기에 죽음이 두려운 정도가 아니라, 혹시 모를 작은 사고가 벌어질까 온몸을 사리게 되었다. 브레히트의 시 중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말했다.

“당신이 필요해요”

그래서

나는 정신을 차리고

길을 걷는다

빗방울까지도 두려워하면서

그것에 맞아 살해되어서는 안되겠기에


필요하다는 말은 사랑한다는 말보다 더 본능적이고 처절하다. 나는 누군가에게 당신이 필요하다고 말해본 적이 있던가. 내 기억을 뒤져보아도 난 그런 말을 뱉어본 적이 없었다. 내가 누군가에게 필요한 대상이 되는 것이 싫었다. 필요한 대상이 된다는 것은 마치 거래를 주고받는 것만 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상대를 그렇게 필요에 의한 관계로 정의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꼬마를 만난 순간부터 나는 온전하게 꼬마를 위해 필요한 존재가 되었다. 하지만 이것이 어떠한 사랑의 형태이든 그것에 대한 처절함, 공허함, 서운함 같은 감정 따위는 들지 않았다. 그저 너라는 존재가 이 세상에서 온전하게 목숨을 붙이고 살아가길 바라고 원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빗방울까지도 두려워지는 그 필요와 사랑의 힘이 이해되었다.




KakaoTalk_20251217_163440664_01.jpg


6살 꼬마에게 나는 진지하게 물었다.


“ 필요하다는 것은 무슨 말일까? ”

“ 꽃이 피려면 벌이 필요해 ”

“ 엄마는 너에게 필요한 사람이야?”

“ 응”

“ 사랑한다는 것은 무슨 말이야? ”


필요하다는 것과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엄마는 너에게 어떤 사람인지. 마치 허공에 잡히지도 않는 말들을 아이에게 쏟아부었다. 필요와 사랑 사이에서 나는 꼬마에게 뭔가 정답을 바라는 사람처럼 자꾸 질문을 던졌다. 이런 나를 보며 꼬마의 답변은 이리저리 얼굴을 바꿨다.

몇 번의 질문이 오가고 갑자기 꼬마가 웃으며 나를 빤히 보았다.


“나는 엄마의 모든 걸 사랑해”


그 말 한마디가 지금껏 사랑과 필요의 사이에서 오가던 내 혼란스러움을 멈춰주었다.

너에게 내가 필요한 존재인지 사랑하는 존재인지 확인하고 싶었던, 그걸 통해서 어떤 비밀을 찾고 싶었던 내 쓸데없는 욕심까지 멈추게 했다. 너에게 내가 필요하면 어떻고 사랑하는 거면 어떤가.

수많은 말풍선이 눈앞에서 터져 버렸다. 아 이건 모두 말들이구나. 내 눈에 눈을 맞추고 날 보는 너와의 지금, 이것으로 되었다. 내가 너에게 어떤 존재인지를 정의하는 것이 나였다면 이런 나를 보고 발그레 웃으며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꼬마가 이 순간만큼은 나보다 크게 느껴졌다.

작가의 이전글해보지 않은 비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