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세계로의 초대

by 치치타타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이라는 책에는 알고 있는 것과 온몸으로 느끼는 것에 대한 차이를 이야기한다. 죽음이 자기 인생의 가장 중요한 화두였던 학자도 자기 죽음 앞에서는 어떠한 생각도 분석도 할 수 없었고, 그 불안과 두려움이라는 회오리에 빠져들었다.

우리는 안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이전의 경험과 닮아서, 누군가를 통해 충분히 알고 있어서 등의 이유로 우리는 앞으로 경험하게 될 무언가를 마치 알고 있다고 느낀다. 하지만 직접 경험하는 것은 분명 다를 터이고, 머리로 생각하기 전에 온몸으로 느껴질 터이다. 새로운 경험, 새로운 세계로의 입구를 통과해야만 알고 있는 것과 온몸으로 느끼는 것이 진정으로 얼마나 다른가를 알게 되는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새로운 세계로의 입구라는 것을 어떻게 알아차릴 수 있을까.

나는 그 새로운 세계로의 입구라는 것을 알려준 초대를 경험한 적이 있다. 그 초대는 부드러웠고, 다정했고 신비로웠다. 그 초대를 통해 나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달그락거림을 천천히 그리고 온전하게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KakaoTalk_20251226_141801694.jpg


- 결혼의 입구에서


나는 제주도의 작은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예전에는 2박 3일도 치러지던 제주도의 결혼식이었지만, 이제는 하룻밤이면 충분했다. 그럼에도 저녁 9시까지 이루어지던 피로연에 나도 모르게 졸던 기억이 있다. 한복을 고르러 가던 때에 한복집 사장님께서 한사코

“웨딩드레스 말고 한복을 이쁜 거 골라야 해!” 라는 말이 뒤늦게 이해되었다. 웨딩드레스야 겨우 1시간 남짓 입는 것이지만 한복은 피로연이 끝나는 저녁까지 계속 입고 있어야 했다.

수많은 사람에게 끊임없이 인사를 하고 이야기를 듣는 정신없는 시간이었다.

밥도 잘 먹히지 않던 때에 피로연장에서 나와 잠시 바람을 쐬었다. 잠시 몇 발짝을 걷던 때였다.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불렀다. 신랑 친척의 조카들이었다. 5,6,7살의 아이들이 나를 에워쌌다.

“ 주아! ”

“ 주아!”

“ 어떻게 내 이름을 알아? ”

“ 엄마가 알려줬어. 주아! 내가 멋진 거 보여줄게”

그중 한 여자아이가 내 손을 잡아끌었다. 손을 잡은 아이, 나를 애워싸던 아이들과 함께 나는 피로연장의 근처에 있는 수풀이 무성한 곳으로 향했다. 풍성한 한복을 잡으며 아이들이 끄는 곳으로 향했다. 방금까지 시끌벅적한 피로연장이었는데, 한순간에 전혀 다른 공간이 펼쳐졌다. 아이들은 연신 내 이름을 불러대며 자신이 발견한 무언가들을 보여주었다.

“ 이것봐”

“ 주아, 이것봐”

돌멩이와 개미들을 보며 아이들은 나와 이것을 나누고 싶어 했다. 아이들은 손 위에 올린 작은 돌멩이와 개미들을 보여주며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 멋진걸 ”

특별할 것 없는 돌멩이와 개미, 그리고 풀들이었지만 분명 나는 그 순간이 정말 특별한 순간임을 느꼈다. 정신없이 사람들과 인사를 하며 결혼식이라는 관례를 치르고 있던 내게 전혀 다른 방식으로 내게 말을 걸어왔다. 아이들의 소중한 비밀스러운 장소에서 나에게 반짝이고 특별한 것을 나누고자 했던 그 특별했던 순간. 그 순간은 나의 삶이 새로운 세계로 접어들었음을 진정으로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어떠한 인사보다 강렬했고, 따뜻했다. 그렇게 나의 결혼식, 내 제2의 인생은 시작되었다.



-여행의 입구에서


30시간이 넘는 비행시간을 견뎌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도착했다. 이렇게 긴 비행을 해본 적은 처음이었다. 나와 동료들은 세계 어린이청소년 연극축제가 열리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 공연하기로 되어있었다. 시차에 적응하랴, 연극 축제를 즐기랴 정신없이 시간이 흘러갔다.

남아공에 온 지 2~3일쯤 되었을 때였다. 그날도 공연을 보기 위해 극장에 방문했다. 어느 정도의 시차 적응도, 이 세계에 대한 적응도 조금씩 해나가고 있었지만, 나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익숙한 느낌을 받기도 했다. 그 먼 거리를 내가 날아왔다고 하는데, 왜 그 거리가 실감이 나지 않는 것일까 하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극장 주변으로 동료들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고, 어느 순간 나 혼자 조용히 극장 밖에 있었다. 6살쯤으로 보이는 한 여자아이가 다가왔다. 그 아이는 나를 기분 좋게 그리고 궁금하게 쳐다보았다. 그 눈빛에 나도 아이의 눈을 쳐다보았다. 동양인을 처음 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눈빛이 꽤 기분이 좋았다. 아이는 수줍게 나를 보았고, 나는 손을 흔들었다.


“Hi”

“Hi”


우린 서로를 흥미롭게 기분 좋게 바라보았다. 아이가 내게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다. 답하고 있는데, 6살보다 조금 더 큰 아이 2명이 더 다가왔다. 궁금해하는 그 눈빛에 답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는 짧은 대화를 나누고 함께 사진을 찍었다. 갑자기 6살 아이는 날 안아주었다. 나도 아이들 세 명을 모두 안아주었다. 그 순간 갑자기 모든 것들이 편안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이제야 내가 낯선 땅에 와있음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포옹은 따뜻하게 나를 녹여주었다. 그 포옹은 이 나라에 대한 환영과 같았다. 내가 새로운 나라에 왔다는 것을 비로소 느낄 수가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사랑과 필요의 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