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돌아와서도 폭식 증상이 가끔씩 반복되었다. 집이 제주도여서 대학 시절 내내 기숙사 생활을 했는데, 룸메이트들이 없는 시간에 방에서 폭식을 했다. 아침대용으로 먹으려고 샀던 시리얼 한 상자를 한 번에 다 먹는다던지, 엄마가 보내준 미숫가루를 물에 타지도 않고 무의식적으로 퍼먹는다던지 하는 식으로. 학교 정문에서 10분 거리에 대형 마트가 있었는데, 마트에서 빵을 많이 사서 근처 공원 벤치에 앉아 다 먹었던 적도 많다. 먹기 위해서 사람들이 없는 곳, 없는 시간을 찾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폭식의 빈도가 높지 않았기에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일부러 구토를 한 적도 없다. 인터넷에서 찾아본 폭식증의 사례들과는 다르게 체중에 크게 불만을 가져본 적도 없고, 다이어트를 시도해본 적도 없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감정 상태에서 폭식을 했는지는 명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명확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내가 늘 외로웠던 것은 확실하다. 묵직한 안개처럼 늘 마음속에 깔려 있는 감정이었으니까. 외로움 때문에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었으니까. 내향적인 아이였고,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섞이지 못했다. 섞이려고 노력했지만, 섞여 있으면서 불편했다. 명절이나 방학 때가 아니면 가족도 볼 수 없었다. 공허함이 크게 덮쳐오는 주말이 싫었다. 누군가에게 기대려 할 때마다 상처를 받았고, 사람의 마음은 변한다는 것을 아프게 겪었다.
그리고 대개는 기숙사 식권밥, 혹은 학생식당밥만 먹었으니 음식에 대한 결핍이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해본다. 평소에는 과일도, 좋아하는 간식도 선뜻 사 먹을 수 없었다. 엥겔지수가 너무 높았기에 돈을 아껴야 했고 음식은 언제나 통제의 대상이었다. 혼자 밥을 먹거나, 불편한 사람들과 밥을 먹을 때가 대부분이었기에 어린시절 가족들과 식사하면서 느껴왔던 온기와 사랑 또한 그리웠다.
석사과정을 시작하면서부터는 나의 연구 분야를 정하고 깊이 파고들면서 예전보다 안정감을 찾았다. 외부 상황에 영향 받지 않고, 깊이 뿌리 내릴 수 있는 나의 세계가 있다는 것이 좋았다. 그러나 여전히 음식에 집착했다. 공부도 재미있고, 해질녘 산책도 좋고, 책 읽는 것도 좋았지만 음식만큼 자극적인, 즉각적인 만족을 주는 게 없었던 것 같다. 술에 빠지듯, 담배에 빠지듯, 그렇게 단맛의 유혹에 빠져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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