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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yeon Mar 25. 2023

지나간 것들이 남긴 자국

『추억을 담은 지도』 프란 누뇨(글) 주잔나 첼레이(그림)

원서 표지 


나는 무언가를 좋아하기 시작하면 깊이 좋아하는 편이다. 대학시설 클라이밍을 했을 때도, 대학원에서 문학을 공부할 때도, 요가를 하면서도, 또 누군가를 혹은 어떤 장소를 좋아할 때도, 작게는 마음에 맞는 책이나 영화, 드라마를 만나도 그 대상에 몰입해서 빠져들었다. 그러나 외부 상황도, 내적 세계도 언제나 끊임없이 변하고, 어느 순간에는 그 대상을 내려놓아야 할 일이 생길 때가 있다. 그럴 때면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토록 사랑했던 시간이 지나간 자리에는 무엇이 남을까? 한때 내가 경험했던 것들, 느끼고 생각했던 것들, 내가 살았던 자국들은 그냥 사라지는 걸까? 그렇게 믿기에는 너무 허무했고, 나는 내가 겪었던 모든 것들이 어디론가 흘러 들어가는 것을 상상했다. 


『추억을 담은 지도』는 한때 허무했던 마음에 따뜻한 위로가 되었다. 


이 책은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조이가 살았던 자국을 다룬다. 조이는 전쟁으로 인해 태어나고 자란 곳을 떠나게 되고, 10년의 소중한 시간이 접히는 상황에 처한다. 떠나기 전날 아이는 마을의 지도를 펼쳐 놓고 좋은 기억이 있는 장소를 하나하나 되짚어본다. 그리고 먼저 가본 순서대로 그 장소들을 선으로 연결했을 때 조이는 눈물을 글썽인다. 지도에 조이의 이름이 나타났던 것. 지도는 알려준다. 현재가 될 수 없는 기억들 또한 조이 안에 남아 있는 것이라고. 


조이는 어딜 가든 이곳에서 보낸 행복한 순간들이 
자신과 늘 함께하리라는 것을 분명히 알았어요. 
지금 조이의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는 추억들이요.


지난 시간들을 돌이켜보면, 나는 내가 겪은 것들이 그대로 사라지는 것이 두려웠던 것 같다. 다 지나가고 사라지면 내 삶의 의미가 없어지는 것 같아서. 그러나 조이의 추억이 조이와 늘 함께하듯이, 지나간 시간들은 이미 내 안에 있다. 그 시간들이 내 안에 남아 나라는 존재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제는 느껴진다. 


바이런 케이티가 도덕경을 말하는 책 『기쁨의 천 가지 이름』을 보면 이런 내용이 있다. 


당신은 죽고, 그 진실이 남게 됩니다. 당신은 죽고 당신이 그동안 한 행위들, 그리고 당신이었던 사람만이 남게 되는데, 그것은 무척 감미로운 것입니다. (184쪽)


결국 모든 것들이 저문 후에 남는 것은 육체 안에 갇힌 내가 아니라, 그 육체가 살아낸 시간이 만든 진실한 나다. 조이가 살아낸 시간은 조이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고, 내가 살아낸 시간은 내 안에 오롯이 남아 있다. 『추억을 담은 지도』에서는 좋은 기억만을 다루고 있지만, 조금 더 큰 범위에서 보면 아팠던 기억 또한 무로 가는 것이 아니다. 그 시간을 지나며 내가 했던 생각과 행동, 내가 겪었던 감정, 내가 만들어온 관계가, 그 시간과 함께 만들어진 나라는 사람이 남아 있기 때문에. 이 모든 시간을 통해서 한 존재는 풍요로워진다. 


앞으로 더 긴 시간속을 걸어갈 조이를 응원한다. 나 자신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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