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eoyeon Apr 01. 2023

나는 민감해요

『어려워』 라울 니에토 구리디(글, 그림) 

원서 표지 




“집을 나서면 모든 게 어렵다

시끄러운 소리 때문에 귀가 아프다.

한 걸음 한 걸음이 힘들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예민하다는 소리를 유독 많이 들었다. 신체감각도, 감정도 예민해서, 남들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자극에 힘들어하고, 아주 사소한 일에도 상처를 받는 일이 많았다. ‘예민하다’는 말에는 나의 민감성에 대한 이해나 배려가 아닌, 너 참 까다로운 아이구나, 주변을 참 힘들게 하는구나 하는 부정적인 뉘앙스가 들어 있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나는 그 소리가 듣기 싫었다. 그러면서도 무의식중에 예민함을 나의 단점으로 인식하기 시작했고, 사람들이 나를 싫어할까봐 두려웠고, 예민함을 숨기기기 위해 힘든 자극을 참는 일이 많아졌다. 예민해도 괜찮다, 예민하다고 나쁜 것이 아니다, 라는 말을 그 누구도 해주지 않았다. 그렇게 긴 시간을 보냈다.

나의 민감함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내려놓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민감함은 선천적인 기질이다. 감각에 과부하가 걸리는 임계점이 극히 낮기 때문에 성난 사람이나 군중, 소음, 밝은 빛처럼 유해한 자극에 쉽게 동요된다. (주디스 올로프, 나는 초민감자입니다 24~25) 백인 사회에 소수로 존재하는 흑인의 인권 또한 동일하게 지켜져야 하듯이, 성소수자의 권리가 인정받아야 하듯이, 타인보다 민감할 수 있음 또한 존중받아야 한다. 환경 자체를 바꾸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겠지만, 일상적이고 평범한 상황이 누군가에게는 힘들게 다가갈 수도 있음을 이해하고 조금은 배려해주는 마음이 필요하다. 이 그림책 속의 어른들이 내뱉는,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테니 참고 기다려라’하는 막연한 말보다, 쉽게 다칠 수밖에 없음을 알고 따뜻하게 안아주는 위로가 훨씬 도움이 된다. 



Lo difícil 



아이의 마음 상태가 담담하게 표현된 글과 그림을 보다 보면, 마음이 아파온다. 


학교에 가려고 집 밖을 나서는 순간, 아이에게는 힘든 상황이 펼쳐진다. “안녕하세요.” “옷이 정말 멋져요!” 이웃에게 인사를 하고 싶지만 말은 나오지 않고, 버스 아저씨의 안부에도 대답을 할 수가 없다. 커다란 고함소리, 여러 목소리가 뒤섞인 복잡한 소음은 아이를 불편하게 한다. 외부 자극이 주는 압박 속에서 아이의 말문은 쉽게 트이지 않는다. 


친구들의 이름을 부르는 건 몹시 어려운 일이다.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거라고 하지만 말문을 여는 것은 몹시 어려운 일이다. 

이번에는 꼭 해낼 거야, 다짐을 해보지만 너무 어려운 일이다.

시끄러운 소리가 힘든 아이에게는. 



힘들어하는 아이에게 “언젠가는 괜찮아질 거다”는 어른들의 말은 허무하다. 그 말처럼 참고 기다리는 것, 언젠가는 익숙해질 거라는 명분 아래 세상으로 내몰리는 것은 가혹하다. 평범한 일상의 자극 또한 충분히 힘들 수 있다는 이해를 바탕으로 세상과 천천히 가까워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배려는 왜 없는 것일까? 민감함을 섬세하게 살펴봐주고 보듬어주는 시선과 손길, 이상한 것이 아니라 그럴 수도 있음을 이해하는 마음. 그 안에서 진정한 변화와 치유가 생겨나지 않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지나간 것들이 남긴 자국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