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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yeon Apr 07. 2023

사랑한다는 것

『앵무새의 부활』 에두아르도 갈레아노(글) 안토니오 산토스(그림)

원서 표지


브라질의 북동부 전설을 바탕으로 한 『앵무새의 부활』은 모든 존재가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재미있는 이야기로 전한다. 시작은 앵무새의 죽음이다. 앵무새는 뜨거운 수프 속에 떨어져 죽음을 맞이하고, 소녀는 앵무새를 잃은 슬픔에 눈물을 그치지 못한다. 오렌지는 자신을 소녀에게 바치고, 냄비 아래 불꽃은 스스로 꺼져버린다. 불꽃의 슬픔은 돌멩이에게, 돌멩이의 슬픔은 나무에게, 나무의 슬픔은 바람에게, 바람의 슬픔은 하늘에게 가 닿고, 하얗게 질린 하늘을 보며 한 신사가 입을 굳게 다문다. 그때 도자기를 만드는 남자가 그곳을 지나가는데, 신사가 입을 열어 모두의 슬픔을 전하자, 이야기를 들은 남자는 모두의 슬픔을 하나하나 모아 멋진 앵무새로 부활시킨다. 


앵무새와 소녀, 소녀와 오렌지, 오렌지와 불꽃, 불꽃과 돌멩이… 언뜻 보기에 서로 연결 고리가 없어 보이는 이 모든 것들을 도미노식으로 이어붙이는 매개는 사랑이다. 다른 이의 아픔에 주의를 기울이는 마음, 함께 나누고자 하는 마음, 이 이야기에서는 모두가 상대를 위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내려놓는다. 앵무새를 되살린 것은 그 진심이다. 


이 글을 쓴 에두아르도 갈레아노는 우루과이의 좌파 지식인으로 라틴아메리카를 수탈하는 강대국의 자본주의를 비판했다. 그 맥락에서 보았을 때 앵무새는 라틴아메리카 민중들에 견주어볼 수 있을 것이다. 중심을 잃고 수프 안으로 떨어져 죽은 약한 존재이지만 “고통 속에서 다시 살아난 앵무새”, 그러나 모두의 사랑을 품고 부활해 “세찬 바람을 타고 하늘을 향해 날갯짓을 시작한” 아름다운 앵무새. 그 앵무새의 모습은 작가의 희망을 상징한다. 라틴아메리카 민중들이 고통에서 벗어나 훨훨 날기를 바라는 희망. 


물론 현실은 이와 다른 경우가 많다. 그리고 실제로 라틴아메리카의 상황은 이와는 달랐다. 관심보다는 무관심이, 보살핌 보다는 학대가, 연민보다는 폭력이 현실을 지배하기도 한다. 또 언제나 도자기를 만드는 남자와 같은 구세주가, 신사와 같은 전달자가 있는 것은 아니다. 부활하지 못하고 슬픔 속에 사라져간 앵무새들이 훨씬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사랑이 존재할 때, 모두가 사랑으로 연결되어 있을 때 어떤 기적이 일어나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바를 시사하고 있다. 


결국 사랑한다는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다. 함께 간다는 뜻이다. 당신의 슬픔이 나라는 존재에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다. 누군가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연민의 감정을 품을 때, 꼭 자신을 내려놓는 일이 아니더라도 상대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때 사랑은 시작되고 세상은 한 뼘 더 밝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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