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총사』(1~3권) 통합 리뷰 | 알렉상드르 뒤마 지음 | 민음사
『삼총사』는 어린 시절 세계명작소설로 읽었던 기억이 강하다. 책이 귀했던 시절이어서 친구 집에(당시에는 동네 도서관도 없었다.) 가서 암기하다시피 읽었다. 책을 구걸해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더 집중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때 읽었던 책들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기억력은 간절함의 차이에서 오는 게 아닐까.
P.S. : 나는 줄거리 요약은 하지 않는다. 글이든 영상이든 요약본은 잘 보지 않는다. 주제나 작가의 의도는 요약으로 알 수 없다. 그러면 왜곡이 생기고 오해를 불러온다. 꼭! 원문을 읽거나 보기를 추천한다. 인간의 모습을 단면만 보고 알 수 없듯이 모든 글과 영상도 전체를 봐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은 모르겠고 나는 그렇다.
이번 리뷰에는 스포가 있으니 『삼총사』를 읽을 계획이라면 이 글은 잠시 보류하기 바란다.
아무튼 『삼총사』를 세 명의 친구 정도로 짐작하고 읽으면 안 된다. 여기서 ‘삼’은 세 명을 얘기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총사銃士’는 다른 뜻이다. 사전에서 찾아보면 ‘총사銃士’는 ‘머스켓(프랑스어, 머스켓티어musketeer=보병)으로 무장한 근세의 보병, 근대의 소총수(라이플맨)로 계승되었다.’라고 나온다. 즉 총사는 당시에 근위병, 지금으로 말하면 군인을 말한다. 세 명의 프랑스 군인 아토스, 포르토스, 아라미스.
그리고 작품의 주인공 다르타냥.(어릴 때 읽었던 책에서는 달타냥으로 번역, 아직도 기억남.)
또 한 가지 배경지식으로 찾아봤던 것은 당시 프랑스 계급이다. 봉건 시대인데다 종교혁명이 일어난 후였지만 여전히 종교적 위치가 강력했던 시대였다. 서유럽 소설을 읽을 때 알아두면 좋다.
먼저 중세 시대 유럽의 계층은 ‘왕, 귀족, 기사, 평민, 농노’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서 귀족 계급의 작위를 알아야 작품을 읽을 때 이해가 잘 된다. ‘왕-공작-후작-백작-자작-남작-준남작-훈작사’ 중에서 남작 이후로는 작품에 잘 나오지 않는다. 자작도 다른 작품들을 살펴봐도 많이 나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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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낭만주의가 주류였던 서유럽에서 『삼총사』는 새로운 형식이었다고 생각한다. 낭만주의 소설들을 보면 환상이나 공포, 개인의 감정을 내밀하게 그리는 편이어서 묘사나 비유가 많다.(낭만주의 소설은 좋아하는 편이다.) 하지만 『삼총사』는 대화 위주다.
이 작품이 고전 명작이고, 원문 번역이고, 작품 배경이 17세기 프랑스의 역사와 연결된 작품이어서 속도감이나 몰입에 걱정한 게 사실이다. 거기에 세 권이나 되는 장편소설이었다.
그런데 모든 배경지식을 모르더라도 인간에 대한 사랑과 복수, 용기와 충성, 우정과 신뢰 등을 다루고 있다. 1권을 잡는 순간 3권까지 연달아 읽게 된다. 시대적 배경을 나타내는 단어들을 찾아야 했지만 서사 구조의 속도감이 빠르다. 작가의 문체 덕분이다.
프랑스 소설가 귀욤 뮈소(21세기 작가)의 작품처럼 영화를 한 편 보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 정도다.(알렉상드르 뒤마는 19세기 작가이다.) 영화보다는 연극이나 뮤지컬 쪽이 더 어울리겠지만. 요즘 시대 눈으로 보면 모든 영상매체에서 주는 속도감이 있다. 물론 당시의 관점과 현재의 관점을 고려해서 읽어야 한다는 점은 기억하자.
당시는 계급사회였기 때문에 귀족들의 이야기가 중심을 이룬다. 지방색이나 프랑스와 영국의 관계 같은 정치적인 부분들도 관심을 갖고 읽게 된다. 거대 담론의 역사가 아니라 사생활의 역사로 이야기가 진행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인의 자유와 삶에 대한 고민을 하게 만든다. 더불어 거대 담론이 개인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는지도 생각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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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가 되고 싶은 다르타냥은 시골 귀족이다. 처음에는 다르타냥이 기사 아토스, 포르토스, 아라미스의 리더처럼 행세하게 되지만 점점 그들은 다르타냥에게 부재한 아버지 같은 존재로 변한다는 느낌을 준다. 총사대장 트레빌과 아토스는 아버지와 같은 존재들이다. 또한 삼 총사 모두 다르타냥을 친구이자 아들처럼 대한다. 그 속에서 다르타냥은 용기를 내고 충성과 신뢰를 배우며 성장한다.
그런데 사랑(개인적으로 작품에 나오는 사랑을 진정한 사랑으로 보지 않는다.)에 엮이게 되자 다르타냥은 어린아이처럼 퇴행해 버린다. 사랑을 통해 성숙해지는 게 아니라, 인생을 확장하는 게 아니라 편협해지고 유치해지며 오만해진다.
젊은 다르타냥이기 때문에 이해되는 부분이다. 10대나 20대의 내 모습을 생각해 보면 어리석고 거친 면이 많았다. 다르타냥이 지혜로운 기사 삼 총사의 영향을 받아 성장한 것처럼 각자의 주변에도 어른이라 부를 만한 사람이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사람을 보는 눈이 생기려면 자기 자신을 제대로 마주하는 연습부터 해야 한다. 눈을 감은 상태로는 앞을 볼 수 없다. 자기 자신을 똑바로 마주하지 않으면 타인을 보는 눈도 뜰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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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유럽에서 여성의 위치는 현재와 엄청난 차이가 있었기 때문에 자주 마녀나 악녀로 설정되었다. 반대 여성 이미지는 순결과 정절을 지키는 존재이다.
물론 밀레디가 악한 사람인 건 맞다. 하지만 작품 속 남자들의 행태를 보면 악인들의 모습이 더 많다. 그런데 유독 밀레디만 희대의 악녀로, 모든 악의 근원으로 그린다.
초기에는 추기경이 왕과 대립하며 왕비를 모함에 빠뜨리는 존재로 등장하지만 후반부에서는 모든 악의 근원이 밀레디로 종결된다. 그리고 다르타냥은 추기경의 사람이 된다. 띠용!
추기경의 신복이고 초반에 다르타냥의 원수였던 로슈포르와는 친구가 된다. 띠용!
선과 악을 중요한 바탕으로 작품이 흐르기 때문에 남자들의 행동들에는 띠용!할 만한 부분이 꽤 발견된다.(여기서 ‘띠용!’은 ‘헐’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개인적인 내 말투다.)
작가의 능력이 뛰어난 것은 맞다. 작품에서 밀레디가 악행을 저지를 때는 정말 꼴보기 싫다는 마음을 갖고 읽게 된다. 그런데 나는 답답함이 더 컸던 것 같다.
페미니스트의 관점이 아니라 여성의 역사를 놓고 보면 남자를 유혹한 밀레디만 악의 근원으로 표현된다. 남자들이 여자의 외모에 반해서 온갖 추태를 부리는 것은 호탕함으로 포장된다.
그런 면에서 밀레디의 능력은 실로 대단하다. 마음을 먹으면 목소리까지 바꿀 수 있는 배우이다. 남자를 완벽하게 움직인다. 엄청난 능력이다. 어떤 능력이 있어도 시도조차 할 수 없는 계급과 차별의 시대였다. 밀레디의 생존력이 대단하면서 씁쓸했다.
압도적인 무지의 희생양으로 마녀가 되어 사라졌던 여성들의 삶을 발견하려는 마음이 생겼다. 역사의 기록은 남성들의 몫이었기에 세계사나 인류사에도 여성은 기록에서 배제되어 있다. 지구에서 인간이라는 종족은 남자와 여자로 나뉘는데 힘이 한쪽으로만 기울었던 시대가 지독할 정도로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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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의 세계를 그리는 소설이기 때문에, 요즘으로 말하면 최종 빌런이 필요했기 때문이긴 하지만 남자의 미래를 망치는 모든 원흉이 여성인 것처럼 나오는 건 인간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알 수 있다.
높은 계급을 가진 여성에게는 남자들이 접근해서 돈을 받아낸다. 기혼자여도 상관없이 유혹하여 불륜을 저지르고 그것을 사랑이라고 말한다.(어이없다!) 또 신분이 높은 남자들은 기본 20년 이상 어린 여자들과 결혼한다.(띠용!이다.)
시대적 계급과 차별에 억압된 삶을 살아야 했던 초절정의 미녀 밀레디가 낮은 신분으로 추기경을 위한 밀정을 완벽하게 해내는 걸 보면 시대를 잘못 타고났다는 생각이 든다.
당시 여성에게 능력이라는 것은 오히려 저주였을지도 모른다. 무슨 짓을 해도 신분 상승을 자력으로 할 수 없는 시대였다. 기회조차 없었다. 조선시대처럼 여성은 과거 자체를 볼 수 없었으니까. 단 한 가지 방법이 있다. 높은 귀족 남자의 여자가 되는 것, 순결을 지키고 정절을 지키는 것!(순결과 정절의 역사가 길지만 여기서는 생략한다.) 여성 스스로 자기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원천 봉쇄해 버린 시대였다.
과연 17세기 프랑스 사회의 단면이기만 했을까? 그 당시에는 세계의식 수준이 그 정도였던 것 같다. 지금은 달라지긴 했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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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을 읽으면서 신기했던 점은 삼 총사와 다르타냥 사이에 보이는 무조건적인 신뢰와 우정이다. 귀족 부인의 돈을 받아내는 행동을 보면 어이없다가도 돈이 생기면 친구들에게 조건 없이 베푼다. 기꺼이 준다. 어떤 설명을 하지 않아도 목숨을 걸고 함께 한다. 술이나 도박, 여자 문제로 친구의 재산을 써도 화내지 않는다. 친구를 위해 모든 걸 바친다.
또 한 가지는 하인들의 태도였다. 처음에는 노예의 개념으로 읽었는데 약간 달랐다. 휴식 시간을 요구할 수도 있었고, 월급처럼 돈을 요구했다. 또한 신분이 상승할 수 있는 기회도 있었다. 하인이 주인에게 충고를 할 수도 있었다.
목숨을 걸고 무조건적인 신뢰로 모인 삼 총사와 다르타냥의 관계는 과거나 현대를 사는 모든 사람이 원하는 모습이다. 그래서 SNS에 중독되거나 동호회를 만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가족 같은 단위가 아니라 나는 공동체적 관점으로 사회가 진화하기를 바란다. 가족 이기주의로 변질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사회가 그렇지 않은가! 개인이냐 전체냐 같은 이분법이 아니라 개인도 타인도 함께 돕고 발전하는 공동체가 중요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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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지금 시대에 『삼총사』를 극이나 영상매체로 만든다면 현대적인 가치관이 포함되어야 하지 않을까? 실제로 『삼총사』가 이본異本이 많은 건 그만큼 인간의 가치관이나 태도를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작가 알렉상드르 뒤마의 서사적 힘이 아직도 느껴진다.
작가의 문체에서 오는 몰입감과 속도감, 간결함과 스릴이 눈을 뗄 수 없게 하는 작품이다. 작가의 다른 작품 『몬테크리스토 백작』 원문은 다섯 권이나 되어서 잠시 보류 중이다. 다른 일을 하고 밤새 읽는 즐거움을 갖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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