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6년 초판본 지킬 박사와 하이드 |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지음
이 작품이 출간된 시기가 1886년이다. 시대를 앞선 작품이다. 21세기에 유행 중인 마블적 능력처럼 약물을 통해 인간의 선과 악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이 작품은 지킬과 하이드가 누구인지 이미 알고 있어도 몰입도가 높은 작품이었다. 그만큼 작가의 문체가 좋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19세기 영국을 배경으로 진행되는 소설은 항상 안개가 자욱하다. 작가는 배경을 일부러 더 음산하게 설정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작품의 감각적 흐름은 지킬 박사 보다는 악을 상징하는 하이드 쪽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헨리 지킬과 에드워드 하이드는 같은 사람이다. 모두 우리 안의 모습이다. 어느 한쪽을 지나치게 억압하면 반대쪽이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19세기 영국의 삶이 어떠했는지 떠올려 보면 현대 우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자본주의 사회가 가져오는 문제점들이 선과 악으로 드러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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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는 이분법적이다. 빈부, 자본가와 노동자, 성공과 실패 등.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 자본주의가 얼굴을 여러 번 바꿔서 살아남았고 현재는 선한 자본주의가 살아남는다는 이론까지 나왔다. 선한 것만 강조해도 문제는 일어난다.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이룰 수 있을 때 편안한 상태가 된다.
인간의 본성과 자본주의는 잘 맞는다. 『티벳 사자의 서』에서 인간이 사후에 보는 모든 형상은 인간이 만든 허상이라고 나온다. 자신의 욕망과 내면이 그대로 투영되는 것이다. 이 작품의 작가는 당시 자본주의 사회를 꿰뚫어 본 것이 아닐까.
지나치게 선한 지킬과 지나치게 악한 하이드만을 강조하는 모습이 자본주의 사회구조와 닮았다고 생각한다. 생명의 소중함보다 자본이 강조되는 세상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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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킬 박사나 하이드 씨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선한 사람이다’라고 단정지으면 안 된다. 우리는 선량한 모습으로 엄청난 차별과 상처를 저지르며 사는 존재들이다. 누구든 ‘선량한 차별주의자’(저자 김지혜의 작품 제목)에서 벗어날 수 없다.
작가가 실험을 통해 지킬 박사와 하이드의 차이를 보여줬지만 하이드의 진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지킬 박사는 후회한다. 결국 지킬 박사는 자기 내면에 있는 마음 중에서 악에게 먹이를 주었던 셈이다. 우리 안에 선한 늑대와 악한 늑대가 공존하고 있으며, 어느 쪽에 먹이를 줄 것인지는 자신이 선택하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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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킬 박사는 마지막 양심을 변호사 친구 어터슨에게 고백하고 자살을 선택한다. 나는 이 책이 한 개인의 삶이 아니라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구조를 극대화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내면에는 선과 악이 공존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선한 사람도 처음부터 끝까지 악한 사람도 없다. 조금씩 선하고 조금씩 악하다. 하지만 구조화된 사회나 국가의 체계로 들어가면 달라진다. 개인적인 성향이 아니라 어느 한쪽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게 된다. 세계사나 역사를 보더라도 그렇다.
다른 나라를 침략하지 않았던 한국의 역사를 보면 사실 놀랍다. 그리고 침략당했을 때 끝까지 저항하는 역사는 더 놀랍다. 물론 얼마나 많은 선한 분들의 생명이 지금의 우리를 존재하게 만들었는지 선명하게 알고 있다. 어떤 생명도 과거에 빚지지 않은 삶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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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의 상징을 사회로 확장시킨 내 생각이 과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당시 영국이라는 사회를 생각해 보면 충분히 가능한 작품이다. 한국은 자본주의가 늦게 시작되었기 때문에 자본주의의 문제점이 최근에 많이 드러날 뿐이다.
이 작품은 길지 않다. 하지만 읽을 때마다 새로운 생각의 확장을 열어준다고 믿는다. 나는 이 책을 여러 번 읽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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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킬박사와하이드 #로버트스티븐슨 #19세기영국
✍ 다음 연재 – 도서 『해저 2만리』 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