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詩』 초판본―「유언」와 「창」
-
아버지가 아들을 찾는 마음이 전해진다. 누군가의 죽음이 있었던 것인지 화자는 ‘평생 외롭든’ 어떤 ‘아버지’의 죽음을 곁에서 지켜본다. 맏아들을 기다리던 아버지는 슬픔을 머금고 세상과 작별한다.
시인은 유언을 ‘소리 없는 입놀림’이라고 표현했다. 말이 아니라 ‘입놀림’이라고 했다. 나도 엄마가 돌아가실 때 주무시듯이 가셨기 때문에 눈을 보고 말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서 ‘입놀림’도 없었다. 엄마는 돌아가시기 1년 전에 이미 자기의 죽음을 예견이라도 한 듯 모든 것을 정리해 놓으셨다. 아버지도 병원에서 돌아가셨기 때문에 입놀림을 마주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소리 없는 입놀림’이 어떤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시에서 실제로 아들의 이야기를 한 것일 수도 있고 살아 있는 사람이 그렇다고 이해한 내용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유언조차 남길 수 없었던 시대를 살다 간 사람들이 많다. 인간의 탄생과 함께 영원히 반복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죽음일 것이다. 이제는 결혼식보다 장례식을 더 찾아야 하는 나이가 되었다. 누군가의 죽음이 자기의 죽음으로 다가온다면 우리들은 매 순간을 진심으로 살 수 있을 텐데!
죽음을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조용히 자기의 죽음은 어떠할지 ‘소리 없는 입놀림’을 해 본다면 바로 지금 이 순간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될 것이다. ‘죽음’이라는 단어를 통해 자기의 삶이 살아나는 역설적 상황을 경험해 보기 바란다.
---
-
‘창(窓)옄으로’는 ‘창가, 창문 쪽’과 비슷한 말이라고 한다. 북쪽 지역 사투리라는 설명이 얼핏 기억난다. ‘상학종(上學鐘)’은 ‘학교에서 그날의 공부 시작을 알리는 종’이라는 뜻이라고 사전에 나온다.
학교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딴 생각을 했던 시절이 떠오른다. 하지만 윤동주 시인의 시에서 소녀들의 공상적인 면은 찾지 못했다. 시인은 차고 싸늘한 유리창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인은 ‘창(窓)’이 ‘살아있는 가르침’이라고 했다. 창(窓)은 우리를 단절시키기도 하지만 밖을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이중성을 가진다. 외부의 소리와 바람을 차단하기 때문에 감각 가운데 단 하나 시각만을 남겨둔다. 그러나 시각은 착각을 일으키기도 하기 때문에 현상을 왜곡할 가능성도 있다. 그래서 창(窓)가는 매력적이다.
창(窓)은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통로다. 시인은 창을 통해 바깥세상을 관찰하고 세상 속으로 뛰어들 준비를 했을 것이다. 창을 통해 우리는 다양한 풍경화를 본다. 밤이 되면 모든 회화들을 거꾸로 자신에게 돌려주는 것이 바로 창(窓)이다. 하지만 창(窓)에 비치는 것은 실체가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과 제대로 조화를 이루지는 못한다.
마음에 벽을 쌓는 것보다 창(窓)이 서 있는 게 낫기는 하지만 부족하다. 창(窓)도 또 다른 형태의 프레임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창(窓)의 이중성처럼 우리 마음에도 선과 악이 존재한다. 이 틀을 깨지 않는 한 우리는 자유로울 수 없다.
‘상학종(上學鐘)’처럼 자신의 의식을 깨워주는 매개체가 있을 것이다. 그 선택도 바로 자신만 할 수 있다! 우리는 그런 존재들이다. 그러니 미루지 말고 이제 움직일 때가 되었다!
#윤동주시인 #유언 #창 #하늘과바람과별과시 #초판본 #시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