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詩』 초판본―「바다」와 「비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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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시인의 시 가운데 파랑파랑 느낌이 깨끗하게 전해오는, 밝은 미소가 퍼지는 풍경화 같은 시다. 그러다 5연에서 ‘섧어진다’라는 시어에 정말이지 서러워졌다.
‘섧어진다’의 기본형은 ‘섧다’이고, 사전적 의미는 ‘(처지나 일의 형편이)원통하고 억울하여 슬픈 느낌이 마음에 차 있다.’이다. 시대적인 상황이 시인을 이토록 괴롭혔겠지.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괴로워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윤동주 시인은 어디를 가나 이 현실을 끌어안고 살았던 것 같다.
파랑파랑 시원한 바다에서도 ‘섧어지’는 자신을 발견하고 ‘돌아보고 돌아보는’ 그 애틋한 모습이 눈에 어린다. 나는 바다를 볼 때 시각적으로 보기도 하지만 조용히 청각적으로 느끼는 편이다. 파도 소리에 집중하다 보면 바다 속을 마음에 그려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심상뿐이지만! 윤동주 시인은 어딜 가나 오직 시만 생각했던 것 같다.
조지 워싱턴 커버가 한 말이 떠오른다.
“무엇이든 당신이 그걸 아주 사랑한다면 그것이 당신에게 말을 걸 것이다.”
윤동주 시인이 시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 수 있다. 시가 말을 걸어오는 걸 시인이 어떻게 참을 수 있었겠는가! 나는 시를 아주 사랑하는가?? 시가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가! 내가 시에게 말을 걸고 있는가! 나는 무엇을 하는 중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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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화(白樺)’는 자작나무를 뜻하고, ‘칩다’는 ‘춥다’의 방언(강원, 경상, 함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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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가 바로 비로봉(해발 1,639m)이다. 그래서 최고봉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윤동주 시인이 비로봉에 올랐는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비로봉에 오르면 만상(萬象)을 볼 수 있나보다. 1만2천봉을 모두 볼 수 있는 곳이 비로봉일테니 말이다. 그러니 ‘무릎이 오들오들 떨릴’ 수밖에. 그 높이에서는 무엇을 보든 모두 작게 보일 게 분명하다. ‘새가 나비가 된다’고 할 정도가 아닌가!
나는 4연에서 뭔가 죽비를 맞은 느낌이다. 시인도 머리로만 알았던 사실을 깨달음으로 확인한 순간일까? ‘정말 구름이 비가 된다’는 건 자신의 형태를 바꾼 것이다. 새로운 탄생. 하지만 자신의 본질은 존재한다. 강물이 바다로 흘러 바닷물이 되지만 물이라는 근원은 잊지 않는 것처럼! 평범한, 모두가 아는 말인데 나에게는 이렇게 다가왔다.
갑자기 ‘비로’라는 뜻이 궁금하다. ‘비로’는 ‘비로자나’ 또는 ‘비로사나’라고 하는 불교용어에서 비롯되었다. ‘절대 진리’를 상징하는 비로자나는 고대 인디아어로 ‘큰 해’라는 뜻을 가진다고 한다.
박목월 시인이 쓴 <산도화>라는 시는 시를 옆으로 돌려 행에 선을 그으면 산모양이 나온다. 그래서 초판본 <비로봉>도 선을 그려보았다. 초판본 시집을 뒤집어서 선을 그어보라. 잠시 글자 ‘비로봉’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음, 이건 순전히 나만의 생각이다.^^
시는 글자에 심상을 심어 회화와 입체적 구조를 만드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정중동(靜中動)이 강한 작품이 시라고 생각한다. 짧은 언어로 찰나를 잡아서 진리를 전해야 하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시대적 상황에서 벗어나 서정시 한 편을 읽은 것 같아 편안하다. 내용은 심오하지만 금강산을 상상하며 자연을 만끽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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