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개츠비 리뷰 | F. 스콧 피츠제럴드
개츠비는 데이지가 비윤리적이고 물질만능적이며 쾌락주의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녀를 바꾸려고 하지 않고,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그녀를 위해 썼다. 데이지가 죽인 머틀 윌슨의 죄까지 대신 뒤집어쓰면서 말이다.
개츠비가 상류층에 속하긴 했지만 자신을 위해서 돈을 쓰거나 파티를 즐긴 적은 없다. 오직 데이지를 찾기 위해서 파티를 열었고, 데이지를 위해서 그런 궁전 같은 집을 샀던 것이다.
닉의 입장에서 봤을 때 상류층 사이에는 진정한 사랑이 없다. 모두 자신의 권력과 안락과 쾌락을 누릴 수 있게 해주는 사람을 찾아 날아다니는 불나방과 같은 자들이다.
그런데 개츠비만은 아니었다. 닉이 만류할 만큼 썩은 인간이었지만 개츠비는 데이지를 바꾸려고 하지도 않았고 그녀를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 개츠비는 돈이 목적이 아니었지만(돈을 욕망하는 데이지가 목적이었다.) 닉이 본 상류층은 돈과 자신들의 안위만 중요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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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닉이 개츠비를 더욱 위대하다고 생각한 순간이 있었다. 개츠비의 장례를 치르는 과정에서 닉은 개츠비를 연민의 시각으로 바라봤으며, 상류층에 분노한다. 개츠비의 돈으로 흥청망청 놀던 상류층은 개츠비가 죽자 모른 척하고 모두 숨어버렸다. 톰과 데이지가 가장 먼저. 닉은 개츠비의 장례를 치르면서 상류층에 대한 회의와 절망을 느꼈던 것이다.
작가 피츠제럴드는 자본주의 체제 자체가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지 알았던 것 같다. 이스트에그에 사는 상류층은 웨스트에그에 사는 졸부들을 인정하지 않는다. 상류층 내에도 서열이 있다. 또한 당시 상류층들이 누리는 권력은 모두 돈과 힘, 사기에서 나온다. 누군가의 것을 빼앗아 키운 자본으로 가난한 자들을 조종한다. 닉은 증권업계에서 일을 하면서 1920년대 미국 사회가 몰락으로 흐르고 있다는 점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상류층은 자신들의 권력을 내려놓지 않는다.(전부 그런 건 아니다. 책에 등장하는 비뚤어진 상류층을 말하는 것이다.) 절대로. 사람의 생명을 죽이고, 국가를 팔고 역사를 소멸시키더라도 당장 자기의 이익만을 위해, 자신과 자신의 자식들만 배불리 먹고 잘 살면 된다는 의식을 갖고 있다. 그것을 위해서는 악마가 되더라도 상관없다. 기득권 세력들은 그렇게 권력을 유지해 왔으며 그 모습은 미국의 1920년대와 닮아있다. 욕망은 멈출 수 없다. 돈에 대한 욕망은 더더욱.
영국에서 자본주의가 시작되었지만 그 정점은 미국이었다. 자본을 선택한 모든 체제의 국가들은 미국의 시대적 모습을 답습하고 있을 뿐이다. 미국이 걸은 길을 그대로 따라간다. 잘못된 것만 골라서. 상류층의 사고방식은 모두 같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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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츠비는 위대하다. 1920년대 사회에서, 닉 캐러웨이의 관점으로 판단했을 때 말이다. 그런데 닉 캐러웨이의 시선에서만 위대할까? 21세기를 사는 우리의 모습을 비교해 보면 상류층도 아닌데 얼마나 물질만능주의적으로 살고 있는가? 사랑해서 결혼했다고 하지만 개츠비처럼 어떤 조건도 계산하지 않고 자기의 것을 전부 줄 수 있는가? 그런 사람이 있다면 순진하다면서 혀를 찰 것이 자명하다.
현대를 사는 우리는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에서 벗어날 수 없다. 『위대한 개츠비』에 등장하는 상류층은 여전히 기득권을 가지고 천세만세千歲萬歲 살고 있다. 친일파들의 후손들을 보라. 재벌들의 후손들을 보라. 그리고 악의 평범성이 그들을 어떻게 보호하는지 보라.
피츠제럴드는 작품에서 미국 사회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1929년 대공황은 예견되어 있었다. 그래서 작품을 읽는 내내 무거운 분위기와 허무주의가 느껴졌다. 화려한 집과 파티가 묘사되지만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위태로움이 작품 전반에 흐르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 느낌은 21세기의 모습을 예언하는 듯한 기시감을 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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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자본주의는 근대시대 사람이었던 베버의 논리를 따른다. 여전히 근대사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21세기 미래를 크게 나누는 기준점이 코로나와 AI라고 생각한다.
예전의 상류층(세습귀족)은 현재 지구를 벗어나 우주로 향하고 있다. 가난한 자와 노동자는 지구에 남을 수밖에 없다. 상류층은 신기술을 장악할 수 있는 자본을 가지고 세상을 지배하려 한다. 근대부터 누려온 권력을 그대로 간직하되 가면만 바꿔 쓰는 것이다. 《오징어 게임》에 나오는 VIP처럼. 그리고 호스트와 프런트맨의 역할을 하는 자들이 또 생겨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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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민주주의를 이루어내고, 개별자로서 주체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국민, 시민을 지나 ‘주체자’로서 자리를 잡은 ‘개별자’들이 공동체를 이루는 사회가 미래를 말한다고 생각한다.
자본에 흔들리지 않고, 권력이나 기술에 얽매이지 않는 독립적인 주체자로서 그들을 도구로 사용하되 주체성과 공동체적 사랑을 실천하는 신인류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위대한 개츠비』 이후 미국 사회와 같은 모습은 예견된 것이다. 아니, 그때보다 더 심각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진화의 방향을 선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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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 작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책 제목은 피츠제럴드의 아내와 편집자가 정했다고 한다. 이 선택은 탁월했다.
✍ 다음 연재 - 영화《추락의 해부》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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