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 서』, 페르난두 페소아 지음, 배수아 옮김, 봄날의 책
김수영 시인이 말했다. “시인은 산문도 시처럼 써야 한다”고. 페르난두 페소아의 산문집이 바로 그렇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시간이 오래 걸렸다. 멈추고 사색했다. 한 글자 한 글자 시처럼 감상했다.
“온몸으로 글을 쓴 것”(김수영, 『시여 침을 뱉어라』) 같은 작품이었다. 물론 이 작품을 읽고 나서 불안과 허무한 내용뿐이라고, 희망이 없고 어둡다고 말할 수도 있다.
이 책은 시인 페르난두 페소아가 쓴 일기 모음집이기 때문에 시보다 더 내밀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1914~1935년까지 20년 동안 쓴 글을 담고 있다. 이 시기 포르투갈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전세계적으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안다면 이 작품의 내용을 충분히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전쟁과 탐욕, 생명 파괴의 세상에서 시인은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회계사로 리스본에 있는 5층짜리 건물에서 계산만 하는 시인을 고독에서 꺼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을 것이다. 불안과 고독에 깊이 침잠하는 일 밖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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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시인은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간다. 현실은 꿈이고 꿈은 현실이라고 믿으며 하루하루를 견뎌내고 있었다. 그 속에서 삶에 대한 지독한 고찰을 해내고 있었다.
인간의 불안과 고독, 삶의 의미에 대한 끊임없는 고찰을 따라가면서 책을 읽다 보면 시 한 편을 오롯이 감상한 느낌을 받는다. 물론 지금의 사회와 다른 가치관들이나 이해할 수 없는 생각들을 만날 수도 있다. 시인이 견디고 있던 사회와 시대를 기억해야 한다. 우리 또한 우리가 사는 시대가 어떻게 기록될 것인지 모른다. 현재를 사는 우리를 후대 사람들은 어처구니없어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시인이 살았던 시대나 현대사회나 인간의 내면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형식만 달라졌을 뿐, 폭력과 생명 파괴는 비일비재하다.
시인은 환상, 상상, 꿈, 비 같은 단어를 많이 사용한다. 시인의 내면이 사유를 깊이 있게 가져갈 때 시인은 현실을 견뎌내고 있었던 것이다. 불면과 불안에 시달리면서도 골목을 지나는 이름 없는 사람의 고귀함을 깨닫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자신도 어느 날 사라질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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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고유명사이면서 보통명사다. 시인은 사물의 고유명사를 찾고 발견하려 노력한다. 이 책에는 시인이 발견한 사소한 일상의 고유명사가 가득했다. 그래서 글을 빨리 읽을 수 없었다. 내가 소설보다 시를 읽는 속도가 훨씬 느린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는 깊은 사유를 하게 만든다.
생각을 지나, 사색을 넘어 사유로!
나는 이 사유의 시간을 좋아한다. 시인도 그랬던 것 같다. 보통에서 고유명사를 발견하는 능력을 시인은 갖고 있었다. 또한 내면의 다양한 자아를 인식하며 삶을 고찰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시인의 시집보다 이 산문집이 훨씬 시적으로 다가왔고 감동을 주었다. 그의 사유와 나의 사유가 꿈에서 잠시 연결되어 흐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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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불안해했던 것. 인간에 대한, 세상에 대한, 제국주의에 대한 혐오와 슬픔을 느낄 수 있는 책이다. 고독과 자아에 대한 사유를 견뎌냈던 시간. 시인이 리스본 도시 어딘가에서 바라보았을 비가 지금 글을 쓰는 이곳에도 내린다. 이 비가 나에게는 고유명사가 될 듯하다.
페르난두 페소아가 일했던 리스본, 그가 사랑했던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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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42쪽, ‘12’
나는 사실 없는 내 자서전, 삶 없는 내 인생을 담담하게 털어놓는다. 이것은 내 고백이다. 내가 고백 속에서 아무것도 털어놓지 않는다면, 그건 털어놓을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P. 752쪽, ‘455, 1933년 12월 23일’
우리는 이 세계의 여행자다.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우리는 무와 무 사이를 혹은 전체와 전체 사이를 여행하고 있다. 우리는 어차피 길 위에 있는 것이니 도중에 만나게 되는 이런저런 불편, 혹은 고르지 않은 길바닥에 대해서 너무 신경 쓰지 말아야 한다. 이런 생각을 하면 나는 마음이 편안해진다. 생각 자체가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일이기도 하지만 그저 나 자신이 의도적으로 그렇게 생각함으로써 스스로를 위로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 한들 마음이 편하면 되는 것이다. 나는 너무 따지지 않는다.
✍ 다음 연재 –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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