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사랑은 이해에서 온다

『리스본행 야간열차』, 파스칼 메르시어 지음, 전은경 옮김, 들녘 출판사

by 데미안에너지

『리스본행 야간열차』 리뷰 내용, 6컷으로 미리보기!

"AI 생성 이미지입니다."

아마데우 프라두를 발견하다


그레고리우스가 아마데우 프라두가 쓴 『언어의 연금술사』를 갖게 되면서 로드무비 같은 형식으로 진행되는 소설이다. 『언어의 연금술사』는 스위스 베른의 키르헨펠트 다리 위에서 뛰어내리려고 했던 여성의 빨간 코트 주머니에 들어 있었다. 여성은 ‘포르투게스(‘포르투갈의’라는 뜻의 영어 단어)’라는 단어를 내뱉고, 그레고리우스 이마에 어떤 전화번호를 적는다. 그레고리우스는 여성이 뱉은 포르투갈어와 다리 위에서 겪은 일을 계기로 스위스 베른을 떠나 포르투갈 리스본으로 향한다.


그레고리우스는 아마데우 프라두가 쓴 『언어의 연금술사』를 읽으면서 포르투갈어에 관심을 갖게 되고 아마데우 프라두라는 사람에 흥미를 느낀다. 그레고리우스도 언어를 평생 연구한 학자(스위스 베른의 김나지움에서 고전 문헌학을 가르침)였기 때문에 아마데우 프라두가 쓴 책의 수준을 이해했을 것으로 짐작한다.


그레고리우스가 충동적으로 스위스를 떠난 것처럼 보이지만 익숙함에 길들여진 그의 내면에는 낯설고 일탈적인 욕망이 무의식에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인간이 어떤 행위를 할 때 그냥 갑자기 하는 경우는 없다. 오랫동안 그런 습관을 가지고 살았고, 오랫동안 그런 생각을 했기 때문에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다만 그 사실을 인정하기 싫은 것뿐이다. 그레고리우스는 리스본으로 아마데우 프라두라는 사람을 찾아가는 여행을 통해 그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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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보다 더 먼 존재, 자기 자신


『언어의 연금술사』에 담긴 내용이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아마데우 프라두는 시인이 되고자 했던 것 같다. 글 속에 담긴 내용은 시를 쓰기 전 사색의 단계와 질문들이 많다. 인생에 대한 깊은 통찰과 고민, 성찰을 통해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세상을 발견하려는 아마데우 프라두의 마음이 전해졌다. 개인적으로 책 내용이 나를 끌어들인 게 맞다. 그레고리우스도 그런 마음이지 않았을까?


그레고리우스는 『언어의 연금술사』를 출간한 사람이 아마데우 프라두의 여동생 아드리아나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오빠를 존경하고 사랑한 아드리아나는 어릴 때 자기 목숨을 살려준 오빠를 동경하고 오빠가 죽은 후 박제된 채 인생을 살아간다.


그레고리우스는 아마데우의 막내 여동생 멜로디, 아마데우의 친구 마리아 주앙, 조르지 오켈리, 에사 주앙, 아마데우가 다닌 중등학교 신부 바르톨로메우 등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그레고리우스가 인물들을 만나는 과정은 한 명씩 한 명씩 느리고 더디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 대해 언급하는 식이기 때문이다. 그레고리우스는 아마데우 프라두를 알아가는 동시에 자기의 삶을 들여다보게 된다. 그레고리우스 자신이 외면하려고 했던 기억들, 합리화하려던 생각들, 고집들, 용기 없음 등을 아마데우 프라두라는 사람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거울처럼 마주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아마데우 프라두와 관계를 맺은 모든 사람들이 그레고리우스와 만나면서 과거의 상처에서 벗어나게 된다. 가까웠던 사람들은 상처를 받은 채 살아가고 완전한 타인인 그레고리우스가 아마데우 프라두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되는 역설적 상황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그레고리우스도 자기 주변에 존재했던 사람들을 떠올리며 그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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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다른 이름은?


그레고리우스의 여정을 좇으면서 과연 나 자신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타인을 얼마나 이해하려고 했는지 되물었다. 자기 자신을, 자기 주변에 있는 타인을 그레고리우스처럼 알려고 노력했는가? 그레고리우스가 아마데우 프라두를 이해하려고 자신의 익숙한 삶을 집어던지는 행위를 할 수 있는가? 누군가를 진심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그 사람과 오랫동안 같은 공간에서 살았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과 평생을 함께 살아가는데 자기 자신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가?


본문 309쪽 :
‘과거의 나’가 ‘현재의 나’를 잊을 수 있을까? ‘현재의 나’가 ‘과거의 나’의 드라마를 상연하는 무대 역할을 한다고 해도?


‘과거의 나’가 ‘현재의 나’를 잊는다면 그 사람은 누구란 말인가? 과거, 현재, 미래는 동시에 일어나는 일이다. 어쩌면 시간은 무의미할지도 모른다. 시간이라는 프레임에 갇혀버리면 공간을 잊게 된다. 우리가 시간에 얽매이는 동안 공간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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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신과 대화하기


자기 자신과 먼저 깊은 대화가 있어야 이해가 가능하다. 물론 이 작품은 ‘내가 아는 나보다 타인이 아는 나가 더 정확할지 모른다’고 말한다. 그러나 결국 ‘자기를 찾을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뿐이다.’라고 얘기한다. 앞 문장은 아마데우 프라두의 주변 인물들을 통해 그를 이해하는 과정이다. 뒷 문장은 아마데우 프라두나 그레고리우스 모두 결국 자기 자신으로 돌아온다는 의미다.


아마데우 프라두가 자기의 내면으로 여행을 떠나게 할 수 있었던 단 한 사람은 에스테파니아 에스피노자였다. 마리아 주앙이 아마데우의 평생 친구이기는 했어도 아마데우의 내면 깊은 곳을 이해하고 사실을 말했던 단 한 사람은 에스테파니아 에스피노자뿐이었다. 진정한 사랑이나 이해는 시간의 길이로 얻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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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삶이다


이해는 사랑의 유의어라고 생각한다. 자기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진심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그 과정을 이 작품이 보여준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이해(사랑)한다는 것은 존재가 살았던 시대와 삶과 고통과 정신까지 포함하는 적극적인 행위다. 이것이 가능한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밖에는 없다.

그런데 타인을 진심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많지는 않지만 더러 있다. 세상은 그들을 성인이나 군자라고 부른다. 나는 그들을 성찰한 사람과 성숙한 사람으로 부른다.(영웅이나 신격화하는 걸 지양하는 성향이라. 평범한 사람 누구나 성찰과 성숙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아마데우 프라두는 자기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 타인들의 인정을 중요하게 여겼던 사람이다. 부모에게, 가족에게, 친구에게, 연인에게 인정받고 자신을 이해시키면 자기의 삶을 살 수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의 내면에서는 기차를 타고 여행을 떠나는 주체가 자기 자신이며 그 여행은 혼자만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용기가 없었을 뿐이다.


진심으로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 자기 자신을 이해할 수 없을 때는 타인을 통해 자신을 들여다볼 수도 있어야 한다. 자신이든 타인이든 결국 선택은 스스로의 몫이다. 어느 쪽을 보든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져야 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갈등과 고통에 놓이겠지만 어떻게 해결하는지도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져야 한다. 그것이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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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행 야간열차 안에서


『리스본행 야간열차』는 진심으로 이해받고 싶었던 한 천재가 자기 자신조차 이해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삶의 과정을 자기를 이해하고자 했던 한 학자가 찾아 나서는 이야기다.

그레고리우스는 리스본으로 향했고, 아마데우 프라두는 언어와 내면으로 향했다. 자기 자신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자기 자신과 어떤 대화를 하고 있는지, 자기 자신을 진심으로 이해하려고 했는지 고민하게 만드는 이야기다.

자기 자신과 마주하는 여행, 리스본행 야간열차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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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 《리스본행 야간열차Night Train to Lisbon》는 영화도 있다. 아마데우 프라두의 글이 어려운 분들은 2013년 공개된 영화를 함께 보길 추천한다. 책을 좋아하는 나는 영화가 약하게 느껴지긴 했지만 원작과 영화를 비교하는 즐거움이 있었다.


✍ 다음 연재 – 도서 『불안의 서』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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