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그의 공간은 없었다

영화 《브루탈리스트》 | 감독 브래디 코벳

by 데미안에너지

영화 《브루탈리스트》리뷰 내용, 6컷으로 미리보기!

“AI생성 이미지입니다.”

건축이 아닌 철학으로 접근한다


브루탈리스트Brutalist는 건축에서 출발해 이후 디자인, 타이포그래피, 웹디자인, 철학과 미학적 태도까지 확장된 하나의 양식이자 정신이라고 한다. 노출 콘크리트를 뜻하는 건축양식으로 꾸미지 않는 미학을 보였다.

하지만 나는 어쩔 수 없이 건축보다는 철학 쪽으로 사유를 펼칠 수밖에 없었다. 건축을 몰라도 이해가 잘 되는, 오히려 철학적 사유가 필요한 작품이었다.

《콘클라베》를 먼저 본 상태였기 때문에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은 당연히 랄프 파인즈가 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브루탈리스트》를 보고 나서는 애드리언 브로디의 연기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단 《콘클라베》에서는 모든 배우들이 조화를 이루는 놀라운 연기력을 보여주었다면, 《브루탈리스트》에서는 다른 배우들도 연기를 못한 건 아니지만 애드리언 브로디가 압도적이었다. 혼자 튀었다고 할 수도, 혼자 영화를 이끌어갔다고 할 수 있다. 나는 그렇게 느꼈다.

인터미션을 영화 속에 삽입시킨 영화였지만 오히려 나는 흐름이 끊겼다. 아직 세 시간 넘는 집중력은 가능한 것 같다. 나중에 OTT로 끊지 않고 다시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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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라는 정체성


영화의 첫 장면이 어찌나 강렬한지, 영화 시간을 길게 느끼지 않았다. 미국에 도착한 건축가 라슬로 토스와 뒤집힌 자유의 여신상은 그의 삶을 짐작하게 했다. 강력한 첫 장면이었다.

1947년 부헨발트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헝가리계 유대인 건축가 라슬로 토스가 자유를 찾아 탈출한 곳이 미국이었지만 미국은 부헨발트 수용소의 연장선이었다. 이민족으로 도착한 미국에서 라슬로 토스는 이방인일 수밖에 없었다.

겉모습의 미국은 자유와 예술의 나라 같지만, 그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진정한 자유는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 만들어진다는 진리를 깨닫게 된다.

감독은 첫 장면부터 영화를 볼 때 기준을 던지면서 시작한다. 자유와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얼굴이 숨기고 있는 폭력성, 이민자를 대하는 미국의 시선을 사진예술처럼 보여준다.

결국 첫 장면을 보고 주인공 라슬로 토스의 탈출이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출발점으로 되돌아가겠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그의 삶에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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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슬로 토스의 인생을 따라가다


영화에서는 라슬로 토스의 인생을 세 시기로 나눠서 보여준다.

1947년 부헨발트 수용소 탈출과 미국 이주

1953~1960년 건축 프로젝트와 갈등, 고통의 시기

1980년 에필로그 베네치아 건축 비엔날레에 초청된 노년의 라슬로 토스

영화는 미국 이주 생활과 건축 프로젝트와 갈등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사촌 아틸라의 집에 머물면서 가구점 일을 하다 부자 해리슨 리 밴 뷰런의 집에 서재를 리모델링한다. 영화 속 서재를 넋을 잃고 봤다. 정말 마음에 드는 서재였다. 솔직히 나중에 미완으로 남았던 해리슨 프로젝트 건축은 안도 타다오의 대표작 ‘빛의 교회’를 생각나게 해서 참신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서재가 내 마음을 설레게 만들었다.

밴 뷰런의 프로젝트를 성공시키려고 했지만 좌절하게 된 라슬로 토스의 갈등과 고통, 자본에 타협하는 모습을 보면서 무너지는 그의 심리가 느껴졌다. 자신이 설계한 건물이 자본에 방해를 받으면서 예술가의 정신을 잃어가는 모습과 라슬로 토스의 내면 붕괴 과정이 겹치면서 긴장감을 만든다.

에필로그에서 라슬로 토스는 비엔날레에 초청받는다. 노년의 모습으로 등장한 그는 그림자처럼 보였다. 콘크리트의 침묵처럼 자기 공간을 갖지 못한 자의 모습으로 보였다.

밴 뷰런이 라슬로 토스에게 자꾸 개인적인 자기 얘기를 하는 장면에서 연애하려고 하는 것인가?라는 의심이 들었다. 일반적으로 처음 만난 사람에게 자기의 개인적인 가족사는 얘기하지 않는다. 그건 연애 중, 상대방이 마음에 들었을 때만 하는 얘기다. 특히 남자는 자기 가족 얘기는 쉽게 꺼내지 않는다. 그런 불안한 마음을 갖고 영화를 봤는데, 아니다 다를까. 밴 뷰런이 대리석장에서 라슬로 토스에게 가한 폭력은 끔찍했다. 한 인간의, 건축가의, 예술가의 정신을 붕괴로 몰아간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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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와 자본 권력


라슬로 토스와 대척점에 있는 밴 뷰런은 예술가와 자본 권력을 상징한다.

라슬로 토스는 공간을 짓고 공간의 예술을 만드는 사람이지만 자기만의 공간은 없다. 인생은 역설이라고 생각하는 나에게 라슬로의 삶이 그대로 적용되었다. 아파트를 세우는 수많은 노동자들이 자기 아파트를 갖고 살기는 힘들고, 수많은 사람들의 집을 설계하는 건축가들이 자기 집을 설계하기 힘든 세상이다.

라슬로 토스의 브루탈리즘은 그의 정체성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민자인 가난한 라슬로 토스는 자본이라는 권력 앞에 주저앉게 된다.

반대로 밴 뷰런은 권력과 자본의 상징이다. 그의 미학은 돈이다. 예술을 사유화하고 공간을 지배하는 구조를 선호하는 대표적 인물이다. 상류층들이 미술관을 운영하거나 미술작품을 사들이는 행위가 사치품을 소비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예술을 사유화하는 행위에서 권력을 느끼는 것이다. 예술이 자본에서 독립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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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과 수용의 이면


2025년에 트럼프가 이민자들을 대하는 태도가 걱정스럽다. 왜 퇴행으로 가는 것인지. 영화 속 라슬로 토스가 이민자로 미국에 정착할 수 없었던 폭력과 차별이 미국에서 자행되고 있다.

미국은 영국의 식민지로 이주한 영국인들이 독립을 선언하면서 탄생한 나라다. 아메리카 대륙에 살고 있던 원주민들을 잔인하게 살해하고 몰아낸 이주 영국인들이 미국이라는 땅을 갖게 된 이유 중에 하나는 수많은 이민자들의 희생을 전제로 한다. 인디언이라 불리는 원주민들의 희생은 말할 것도 없다. 아이러니한 것은 미국을 탄생시킨 영국인들도 이주민이었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미국의 정체성이다.

따라서 미국은 ‘다양성과 수용’이라는 이념으로 빠르게 성장했다. 하지만 라슬로 토스는 차별과 억압 속에 놓인다. 그는 건축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을 건물에 담았던 것이다. 정체성을 거부당하고 통제당한 라슬로 토스는 미국인이 되지 못한다. ‘미국인’이라고 말할 때 정체성은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 영화는 근본적인 미국의 정체성을 묻고 있는 것이 아닐까.

어릴 때는 서부 개척(이 단어도 미국인들의 시선에서 쓴 말이다.) 영화를 멋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어른이 된 어느 시점부터는 침략과 폭력성으로 보였다. 일본인들이 조선의 땅을 빼앗아 지주로 행세했던 시절과 닮아 있다. 잊으면 안 된다. 제국주의는 자본주의에서 시작되었다. 탐험가(국가) + 선교사(종교) + 자본가(경제)들이 제국주의 전쟁을 일으킨 것이다. 희생자들이 식민지 국민이었다.

역사에 적용된 용어들이 누구의 시선에서 만들어진 것인지 의심하고 질문하고 확인해야 한다. 어떤 어휘를 사용하는지 들여다보면 그 사람의 가치관과 인격이 드러난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이면의 기록도 반드시 살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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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으로 돌아가다


영화에는 시오니즘을 정면으로 거론하지는 않지만 시대적 배경을 알기 때문에 세계사 지식을 이입해서 보게 되어 그냥 넘길 수 없었다.(여기서 시오니즘의 배경과 형성과정을 길게 말할 수는 없다. 개인적으로 꼭 찾아보길.)

라슬로 토스는 유대인이지만 시오니스트는 아니다. 그는 개인의 예술과 자유, 인간의 존재에 집중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하지만 그의 아내와 조카 조피아는 시오니트다. 라슬로 토스가 미국에서 좌절하고 결국은 이스라엘로 돌아가는 것은 시오니스트였기 때문이 아니다.

현재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향한 폭력은 영화에서 라슬로 토스가 겪은 인생을 재생하는 느낌이다. 물론 시오니즘에도 영국인들의 역할?이 상당 부분 작용했지만. 나는 이상하게 어릴 때부터 서유럽에 대한 환상이 없었다. 그건 나도 의아한데, 어른이 되어 서양사를 공부한 후로는 더 많이 분노했다.

어쨌든 라슬로 토스는 시오니스트적 민족주의나 정치 이데올로기와는 무관한 사람으로 인간을 위한 공간을 창조하고자 했던 예술가였다. 그런 한 인간의 내면이 붕괴되어 이스라엘로 돌아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나는 무척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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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개인이 국가와 자본, 이념에 어떻게 해체되는지 보여주는 기록이 《브루탈리스트》다. 이 영화를 불편하게 느끼는 것은 한 사람의 몰락 때문은 아닐 것이다. 우리 안에서 라슬로 토스의 모습을 봤기 때문 아닐까. 영화가 끝나고 한참을 앉아 있었다.(원래 크래딧이 다 올라간 다음에 일어난다.) 너무 많은 질문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라슬로 토스가 남긴 미완의 이름 없는 건축물이 묻는다. 인생에 무엇을 지어 올리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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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탈리스트 #브래디코벳 #애드리언브로디 #아카데미남우주연상

✍ 다음 연재 – 도서 『티벳 사자의 서』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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