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신이라는 이름의 폭력

영화《콘클라베》 | 감독 에드워드 버거

by 데미안에너지

콘클라베란 무엇인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를 먼저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주연 배우가 랄프 파인즈(로렌스 추기경 역)라고 해서 기대하며 봤다. 《해리 포터 시리즈》에서 볼드모트 역할을 했다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변신이었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서도 랄프 파인즈에게 반했지만.

일단 제목부터 찾아봤다. 콘클라베Conclave는 라틴어에서 유래한 말이라고 나온다. 뜻은 ‘열쇠로 잠근 방’이다. 가톨릭 교회에서 교황 선출을 위해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에 도착한 추기경단이 완전한 밀실 회의를 한다. 회의 참가자는 외부와 모든 연락이 금지된다. 선출 정족수는 3분의 2이상이 찬성해야 한다고 한다. 굴뚝으로 볼 수 있는 흰 연기는 교황 선출시에, 검은 연기는 선출 불발 시에 올리는 색이다.

2025년 4월에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을 이어 로버트 프레보스트 추기경이 레오 14세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영화를 먼저 봤기 때문에 콘클라베가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간접적으로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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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에서 수녀는 어디에 있는가


영화에서 콘클라베 진행 과정을 보면서 나를 놀라게 했던 장면이 바로 수녀들의 위치였다. 콘클라베가 시작되자 수녀들이 모두 부엌에서 일을 하며 추기경들의 식사 수발을 들고 있었다.

수녀는 콘클라베 자체에 참여할 수 없고, 추기경 자체도 될 수 없는 중세시대 계급체제 아닌가? 왜 수녀는 교황이 될 수 없는가? (가톨릭을 믿는 분들에게 욕을 먹어도 할 수 없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구조다.)

시대가 아무리 바뀌어도 남성중심적이고 가부장적이고 계급적인 모습은 바뀌지 않는 것인가? 실제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영화 장면을 보고 씁쓸한 분노를 간직한 채 관람했다.

감독은 그런 의문을 화면에 담은 게 아닐까 생각했다. 영화 전반에 흐르는 주제가 종교적 권위와 인간적 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물들의 심리와 선택을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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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신이라는 폭력


영화 《콘클라베》를 보면서 영화의 핵심이라고 생각했던 장면이 있다. 로렌스 추기경이 확신을 의심하라고 말하는 장면이다. 로렌스 추기경은 자기의 기도와 신에 대한 믿음을 의심한다. 의심하지 않는 마음, 맹목적인 확신에 찬 믿음이 어떤 폭력을 일으킬 수 있는지 우리는 역사를 통해 배웠다. 세계사에 기록된 모든 전쟁은 소수의 이익에 기반하긴 하지만 그들을 지지한 다수의 맹목성에 있었다. 폭력은 자신이 옳다는 강력한 확신에서 기인한다.

로렌스 추기경이 말한 “의심하라”는 말은 결국 자기 자신의 확신을 의심하라는 뜻일 수 있다. 진짜 폭력은 신의 이름으로, 신의 뜻으로 확신하는 순간 시작된다는 메시지를 보낸다. 중세 때 십자군 전쟁을 떠올려 보면 충분하지 않을까. 마녀를 만들어낸 권력층의 확신까지.


확신을 의심하면 답을 하는 게 아니라 질문을 하게 된다. 끊임없는 질문은 성찰로 우리를 이끈다. 빠른 답을 선호하면 맹목을 불러온다. 인간의 삶은 다층적이고 복잡하며 단정지을 수 없다. 그래서 사람 하나를 제대로 아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다. 반대로 사람을 얻는다는 것은 엄청난 선물이라는 말이 될 것이다.

잘못된 신념과 올바른 신념이 부딪혔을 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역사가 알려준다. 모두 각자의 신념이 있지만 그 신념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의심하고 질문하며 확인할 필요는 있다.

교황은 신이 아니다. 신을 대신하는 자리도 아니다. 교황은 인간이다. 신의 위치에 있는 게 아니라 종교를 믿는 신자들을 위한 도구로 충실해야 하는 게 아닐까. 종교 지도자나 대통령, 기업의 CEO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영화를 보면서 종교를 벗어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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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도하는 배우들의 연기력


교황의 자리를 권력의 자리로 인식하는 순간 추기경들은 정치가가 된다. 권력에 대한 욕망과 다툼, 신념의 갈등이 긴장감 있게 연출되었다고 생각했다. 엄청난 사건이 있는 것도 아닌데 끝까지 긴장하고 영화를 보게 된다.

스릴의 흐름을 이어주는 힘은 배우들이었다. 한 명을 꼽을 수 없는 그들의 연기력에 놀랄 수밖에 없다. 당연히 랄프 파인즈의 카리스마와 내면연기는 압도적이었다. 클로즈업되었을 때 그의 연기력이 더 돋보였다. 눈빛과 표정, 대사 톤까지 긴장하면서 보았다. 다른 추기경들의 연기도 조화를 이루면서 추기경들의 갈등과 권력관계, 심리 묘사를 보여주었다.

수녀 아그네스 역의 이사벨라 로셀리니의 연기가 나에게는 엄청나게 다가왔다. 몇 장면 등장하지도 않고 대사도 적은 편이다. 그런데 배우가 화면에 서 있는 그 태도에서 존재감이 크게 느껴졌다. 영화 전체의 축을 전환하는 장면의 중심에 서 있었고, 섬세해서 수녀 아그네스만 등장하면 숨을 죽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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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백을 만드는 감독의 연출력 : 침묵과 색채 그리고 공간의 미학


한정된 공간 그것도 밀실처럼 차단된 공간을 시각적으로 연출한 감독도 놀랍다. 배우들의 연기력이 긴장감을 끌고 가는 이유 중의 하나다. 거기에 더해 감독의 연출이 시각과 청각을 강조하면서 긴장을 만들어낸다.

검은 사제복과 흰 제의의 대비와 붉은 사제복은 종교에 대한 신념과 순수성을 상징하는 듯했다. 성당의 캄캄한 내부와 창으로 비치는 자연 빛은 폐쇄와 성스러움을 대비시킨다고 보았다. 또한 영화에서는 대사만큼이나 침묵이 긴장감을 새롭게 만든다. 로렌스 추기경의 움직임이 침묵 속에서 만들어질 때 여백이 만드는 사유의 깊은 흐름을 일으킨다. 그래서 관객은 집중을 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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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하고 질문하는 자, 깨어 있는 인간


리뷰 처음에 밝힌 대로 콘클라베에서 여성은 왜 교황이 될 수 없을까 궁금했다. 감독도 그런 생각을 한 듯했다.

선종한 교황이 숨긴 진실들이 하나씩 드러나면서 베니테즈 추기경이 교황으로 선출된다. 빈민 선교사 출신으로 평화와 사랑, 관용을 말하는 추기경이다. 선종한 교황이 베니테즈 추기경의 비밀을 지켜주었고 로렌스 추기경도 진실을 알게 되지만 그를 교황으로 인정한다.

테데스코는 이슬람에 대한 강경 대응을 주장하고 전통적인 교회의 회복을 강력하게 피력한다. 반면 베니테즈는 폭력에 사랑과 관용을 말하며, 평화를 위한 갈등 해결 메시지를 주장한다. 변화에 대한 용기를 강조하는 베니테즈의 연설은 추기경들의 마음을 움직여 교황으로 선출된다.


현재까지는 수녀가 교황이 될 수 없는 구조지만 감독은 여성성을 영화 속에 녹여내고 싶었던 것 같다. 언젠가는 교황에 남녀 구분이 사라지는 날이 오길 바란다.

베니테즈는 여성과 남성의 생식기를 모두 갖고 태어난 사람(인터섹스, 간성間性이라고 한다.)이다. 남녀한몸 또는 자웅동체라고도 한다. 베니테즈는 선종한 교황한테 이 사실을 알렸고 성전환 수술을 하려고 했지만 취소한 기록이 있었다.

자연의 순리는 차별하지 않는다. 인간만 자연의 순리를 거부한다. 한국은 아직도 차별 금지법이 통과되지 않았다. 2007년에 발의한 법안인데 아직도 갈등 중이다. 나와 다르면 받아들이지 않는 편협한 사고를 확신하면 폭력이 된다. 스스로 선량하다고 말하지만 차별주의자가 되어 살고 있다.

그 점에서 영화는 인권을 넘어 생명 존중으로 나아간다고 생각한다. 지금보다는 미래가 조금 나아지길. 그러면 지금 우리가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 영화는 말한다. 의심하고 질문하고 관용과 사랑을 펼치라고. 포용의 힘이 우리의 미래가 될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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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연재 – 도서 『인간의 대지』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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