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처럼 아픈 기억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詩』 초판본 - 「소년」과 「눈 오는 지도」

by 데미안에너지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詩』 초판본, 세 번째 시

03소년.jpg “AI생성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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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한 마음이 만든 별빛


이렇게 파랗고 순수한 소년이 어떻게 저항 시인이 되었을까? 여리고 섬세한 소년이 자라 부끄러움을 알고 내면을 강하게 길러 철저한 자기 성찰을 하기까지 그에 인생에 어떤 일들이 벌어졌던 것일까?


나는 이 시가 한마디로 슬프다. 분명히 이 시는 윤동주 시인의 다른 시들과는 다르다. 우리가 시대적 상황을 함께 해석해서 바라보는 시들과 달리 순수한 감성이 살아 있는 시이기 때문에 다른 게 아니다. 또한 윤동주 시인의 일생이 함께 따라 올라와서 슬픈 것도 아니다.

투명하고 파란, 순수한 소년이 ‘아름다운 순이’ 얼굴을 강물처럼 추억하고 ‘어리는’ 상황이 슬프다. 이 시가 21세기를 사는 청년들이 포기한 것들과(3포 : 연애, 결혼, 출산/이제는 7포까지 존재한다니!) 왜 맞물리는지 모르겠다. 내가 같은 시대를 살아가기 때문인가? 잘 모르겠다.

그냥 내 단상들에 감수성 파란 소년이 슬픈 얼굴로 지나가서 슬프다.

제대로 웃지도 울지도 못하고 모든 감정을 과장해서 내뱉는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슬픈 얼굴이 지나간다.

웃음을 잃어버린 어른들에 얼굴도 지나간다.

모든 감정을 짜증으로 배출하는 우리들의 목소리가 슬프다.

이 시가 슬픈지도 모르는 우리들의 얼굴을 떠오르게 해서 아프다.(시적으로 낯선 표현들이나 이미지, 상징들은 넘어간다. 전문 평론가가 아니고 이건 나에 단상들이니까.)


나는 이 시가 아프다. ‘눈썹’과 ‘손바닥’에 파란 물감이 묻어있는 순수한 소년이 ‘아름다운 순이’ 얼굴을 ‘슬프게’ 추억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강물은 사랑처럼’ 흘러 ‘아름다운 순이’를 ‘어린다’. 윤동주 시인은 소년의 눈으로 당시 소녀들을 바라본 것일까? 강물처럼 시간은 흐르고 ‘단풍잎 같은 슬픈 가을이 뚝뚝 떨어’질 것이고 다시 ‘단풍잎 떨어져 나온 자리마다 봄을 마련해 놓고 나뭇가지 우에 하늘이 펼쳐’질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슬픈얼골’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래서 ‘가만히 하늘을 들여다’보고 파랗게 물든 ‘아름다운 순이’를 담은 것일까. 잃어버린 조국에서 삶을 이어가야 하는 순수한 소년과 소녀들은 어떻게 변할까? 자본주의의 끝물에 살고 있는 현재의 소년, 소녀들은 어떻게 변할까?

이 시는 나에게 질문만 던졌다. 모든 것이 파랗게 물든 하늘색과 맑은 강물 색이 파란색을 잃어버린 내 마음에 슬픈 얼굴로 물음표를 던진다.

내 마음속 강물에도 사랑처럼 슬픈 얼굴이 어리냐고.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詩』 초판본, 네 번째 시

04눈오는지도.jpg “AI생성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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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은 눈발이 흩날리듯이


나는 왜 이 시를 읽고 백석 시인의 <흰 바람벽이 있어>와 <팔원>이 떠올랐을까? 백석 시인은 ‘흰 바람벽’ 덕분에 살 수 있었다. 그리고 여행을 떠나 ‘팔원’에서 조선의 어린 소녀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보게 된다. 이 시에서 ‘순이’가 떠나는 ‘지도위에’ 눈이 깔린다. 그렇게 ‘순이’에 ‘발자욱’을 찾아 나선다. 백석 시인의 ‘팔원’에서는 새 ‘진진초록 저고리’를 입었으나 ‘손등이 밭고랑같이 터진’ 소녀를 화자는 눈물 흘리며 지켜본다.


이 시에서는 ‘텅 빈 방 안에까지 눈이’ 내릴 만큼, ‘벽’과 ‘천정’까지 하얗게 만들 만큼 눈이 내린다. ‘순이’가 걸어간 길에 빠짐없이 눈이 내린다. 시인의 정서적인 나이가 <소년>에서 드러났다면 이 시는 시인 내면에 있는 여성적 정서를 담은 게 아닐까? 당시 조선 소녀들의 삶을 보며 ‘눈이 녹고 꽃이 피’어도 ‘일 년 열두 달 하냥 내 마음에는 눈이 나리리라’는 지식인의 눈물이 아니었을까? 모르겠다. 시대적인 걸 무시할 수 없다. 시를 읽을 때 자꾸 시대가 따라온다. 2016년 개봉됐던 영화 《귀향》이 자꾸 떠오른다. ‘순이’가 그 영화에 있을 것만 같다.

떠나는 ‘순이’를 ‘말못할 마음으로’ 눈이 되어 따라가는 시인의 마음에 자꾸 이끌린다. 이제 눈이 내리면 이 시가 떠오를 것만 같다. 어떡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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