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그러나 손목을 잡고 반드시 가는 길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詩』초판본-「새로운 길」과 「간판 없는 거리」

by 데미안에너지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詩』 초판본, 일곱 번째 시

07새로운길.jpg “AI생성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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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걸음의 공간, 내일의 시간


어찌 보면 동요 같은 느낌이 강한 시다. 시인의 고향마을이 떠오를 정도로 ‘내’, ‘숲’, ‘고개’, ‘마을’ 같은 정겨운 시어들이 나온다. 하지만 나는 2연과 4연에 주목했다. 시인은 2연에서 ‘어제도 갔고 오늘도 가는’이라고 쓰지 않고,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이라고 썼다. 과거와 현재를 미래로 묶어서 ‘나의 길 새로운 길’을 간다. 자신에 일상은 늘 ‘새로운 길’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일상을 지루하고 다람쥐 쳇바퀴 돌 듯한 인생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바로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고 오직 그때만을 사는 인생이 어떤 미래를 가져올 것인지 시인은 이미 깨닫고 있었다.

바로 4연에서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오늘도…… 내일도……’라는 내용 때문이다. 현재에 집중하면 그 오늘이 내일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 그 사람의 인생은 늘 새로울 수밖에 없다.


미하엘 엔데가 『모모』에서 현재에 집중하기 위해서 시간적 개념을 강조한 게 아니라 공간적 개념을 말했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란다. 호라 박사가 사는 공간에서 회색 신사들은 시간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사라진다. 거북이 카시오페이아가 한발 한발 느리게 걷지만 회색 신사들이 그를 따라잡지 못한 것도 공간적 개념이다. 시간은 공간적 개념이 인식되어야 가능하다. ‘모모’라는 이름도 ‘지금’(이탈리아어)이라는 뜻이다. ‘지금’은 시간이 아니라 공간이다. 자신이 있는 공간에서 살아 있는 것!

윤동주 시인은 ‘길’을 통해 자신이 걸어야 할 공간을 인식했고, 자신이 내딛는 한걸음에 집중하는 시간만큼 자신의 인생이 ‘언제나 새로운 길’이 될 것이라는 점을 깨닫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인간이어서 미완성이고 불완전하다. 그러니 괜찮다. 무엇을 하든 부족할 테니까! 부족한 만큼 노력할 테니까! 노력한 만큼 공간이 생길 테니까!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詩』 초판본, 여덟 번째 시

08간판없는거리.jpg “AI생성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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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진 손목에 흐르는 역사


제목이 심상치 않다. 현대 사회에서 ‘간판이 없는 거리’가 가능할까? 너무 많은 간판들 때문에 어지러울 정도다. 밤에는 어떠한가? 네온사인으로 간판들은 더욱 화려해진다. 하지만 이 시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다. 간판이 없기 때문이다.

화자는 ‘헌 와사등’이 자애롭게 켜진 모퉁이에서 ‘어진 사람들’의 손목을 잡는다. 새로운 문명이 아니라 ‘헌 와사등’이 비추는 따스한 불빛이다. 가끔 우리가 촛불을 켤 일이 생기면 그 불빛이 만드는 아련함에 빠질 때가 있다. 촛불 가까이에 앉아 도란도란 얼굴을 맞대고 얘기하던 추억 같은 것 말이다.


시인이 ‘자애로운’이라는 시어를 선택한 걸로 봐서 ‘따사롭고 돈독한 사랑을 베푸는 마음’을 강조한 것 같다. ‘어진 사람들의 손목을 잡으면’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순서대로 돌아’든다고 했으니 말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은 무엇일까? 시간적 흐름이니까 우리의 역사가 아닐까? 윤동주 시인이 살았던 시기까지 이어져 내려온 우리의 역사가 ‘어진 사람들 손목’을 통해 흐르는 게 아닐까! 또한 그 손목이 윤동주 시인의 손목에도, 지금 우리들의 손목에도 흐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우리의 역사가 ‘자애롭게 어진 사람들의 손목’으로 흐르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역사의 경험이 현재의 우리에게 ‘자애로운 어진 사람들의 손목’으로 흐르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손목으로 흐르는 어진 마음을 어떻게 전할 것인지는 현재를 사는 우리들의 몫이다. 윤동주 시인이 잡았던 ‘어진 사람들의 손목’을 우리는 어떻게 잡을 것인가? 나에게 숙제를 하나 안겨주는 시였다.

현재 대한민국의 ‘어진 사람들’은 ‘자애로운 손목’으로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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