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견디는 시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詩』 초판본 -새벽이 올 때까지, 무서운 시간

by 데미안에너지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詩』 초판본, 열한 번째 시

“AI생성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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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


삶과 죽음은 공존한다. ‘한 침실’에서 ‘가지런히 잠을 잔’다. 삶과 죽음이 동시에 움직이니 새벽이 온다. 조용히 ‘새벽’을 기다리는 인생이 있다. 빛이 완연한 낮이 아니라 ‘새벽’을 기다리는 것이다. 내면에서 들리는 소리를 알아차릴 수 있는 ‘새벽’을 말이다.


그때 들리는 ‘나팔소리’를 듣지 못하면 삶은 깨어나지 못할 것이다. 계속 잠들어 있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항상 같은 장소에 존재하는 삶과 죽음 가운데 우리는 늘 삶 쪽만 바라본다. 죽음이 존재하기에 삶이 소중한 것인데! 우리는 왜 항상 한쪽 면만 바라보고 착각하는 어리석음을 가지고 사는 것일까?


끊임없이 어리석음을 경험하고 반복하며 처절하게 자신을 마주 봐야 ‘새벽’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일까? ‘새벽’이 오면 ‘나팔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 바로 한밤 내내 준비한 사람들! 그래서 제목이 <새벽이 올 때까지>다. ‘새벽이 오면’이 아니라!

‘새벽이 올 때까지’ 우리는 움직여야 한다. ‘새벽’을 맞을 준비를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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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詩』 초판본, 열두 번째 시

“AI생성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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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이름을 부를 때


시인은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고 있었을까. 자신이 죽기 4년 전 이런 시를 남기다니!

시인은 죽음을 무서운 시간으로 인식했다. 당연하지 않은가! 스무 살 초반에 죽음을 상상하다니! 생각 없이 행복해야 할 시간이 20대 아닌가? 세상에 불만도 있어야 하고 객기도 부릴 줄 아는 나이! 20대에 무엇을 향해 몸을 움직여 살았는지 가만히 떠올려 지금 자기 모습과 비교해 보라. 젊음과 늙음이 동시에 진행된다. 어쩌면 인생은 시간의 예술일지도 모른다. 영화가 그렇듯. 그래서 영화를 그렇게 좋아하는 것일까?


누군가 자신을 계속 부른다면 그건 자기 내면의 소리일 것이다. 그 소리를 외면한다면 겉은 살아있으나 내면은 죽은 사람일 것이다.

3연과 4연은 시인이 처한 상황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일제 강점기에 어떤 하늘을 보며 숨을 쉴 수가 있었을까! 하지만 21세기 우리들은 스스로 자본에 갇혀 숨을 쉬지 못하고 있으니 우리는 제발 자기의 진짜 모습을 불러보아야 하지 않을까!

자신을 잃어버린 채 찾지 못하고 인식도 못하는 현재가 가장 무서운 시간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제 우리는 자신을 불러야 한다. 조용하지만 담대하게 자기 이름을 가슴으로 부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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